평창올림픽 팀추월 왕따 사건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개인과 집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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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팀추월 왕따 사건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개인과 집단 사이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8.02.2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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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우리는 단 한 그루의 나무만 있는 산보다 여러 나무들이 어울려 있는 숲이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나 숲이 아름답다고 개별 나무들의 존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도 중요하고, 나무들이 모인 숲도 역시 소중하다. 여기서 나무는 개인이고 숲은 사회다.

사람이 살다보면, 나만을 위할 때도 있고,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 나를 희생할 때도 있다. 나와 집단의 이익은 자주 충돌한다. 개발연대 세대는 개인보다는 직장을 우선했다. 그게 당연한 의무인 줄 알았다. 요즘처럼 ‘워라밸(work와 life의 balance를 합성한 신조어로 일과 삶의 균형이란 의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은 다수가 저녁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직장 상사의 퇴근 후 카톡 업무 지시를 금하는 일명 ’카톡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만의 1950년 저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에는 세 개의 인간 유형이 나온다. 사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전통지향형(tradition-oriented), 가정의 가치를 따르는 내부지향형(inner-oriented), 그리고 동료나 이웃 등 남의 눈치를 살피는 외부지향형(other-oriented) 인간이 그것이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흐를수록 사람은 사회보다는 가정을, 그리고 가정보다는 개인화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었다. 산업사회를 넘어 산업 후 사회에 사는 현대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화가 심해진 것은 아닐까?

이와 관련해서,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평창올림픽 팀추월 경기는 3명의 선수가 하나처럼 달리는 단체전이며, 맨 마지막 사람이 들어온 기록으로 승자를 결정한다. 한두 선수가 먼저 들어온들 팀의 최종 기록은 맨 나중 선수 기준이니, 죽어도 세 명은 뭉쳐서 골인해야 한다. 팀추월은 개인은 없고 팀만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노선영 선수를 저 멀리 뒤에 두고 김보람, 박지우 두 선수가 먼저 골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장면은 팀추월 경기에서 보기 힘든 낯선 모습이었다. 이 장면의 후폭풍이 거셌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후반에 힘겨워 하는 노선영 선수를 왕따시켰다는 게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선에서 김보름 박지우(왼쪽)가 노선영을 뒤에 두고 역주를 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 3분 03초 76의 기록으로 8개 팀 중 7위에 그쳤다(사진: 더팩트 임영무 기자, 더팩트 제공).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앞선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자는 청원글이 올라왔고, 하루만에 30만 명의 지지를 받았다. 감독이 인터뷰에 나와서 경기 막바지에는 세 명이 각자 치고 나간다는 작전이 있었다고 했지만, 노선영 선수는 이를 부인했다.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 전설적인 악플러로 통하는 ‘국거박(국민거품박병호)’이란 네티즌은 노선영 선수를 왕따시킨 두 선수의 비집단적 개인행동에 분노하고 악플 전쟁을 선포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에는 이기적인 선수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 팀추월에서는 열 살이나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형님 리더십으로 은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 선수가 있었다. 설움의 눈물을 쏟고 있는 노선영 선수를 옆에서 한참이나 다독이는 장면이 TV카메라에 잡힌 외국인 코치 밥데용은 참으로 인간적으로 보였다.

일본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확보한 여자 컬링팀은 개인과 집단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팀이었다. 이들은 자매와 친구 사이로 경북 의성 시골에서 어렸을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사이라고 한다. 이들은 ‘영미~’와 ‘영미! 영미!’의 차이를 직감적으로 주고받는 신기한 소통력을 자랑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컬링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 시골의 마늘밭 출신 소녀들에 의해 점령당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변의 주역은 팀웍이었다. 개인만 남은 줄 알았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끈끈한 인간 연대가 스포츠 컬링에서 되살아났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1일 오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한국과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들(OAR)의 경기에서 6엔드 11-2로 기권승을 받아 낸 뒤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남윤호 기자, 더 팩트 제공).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팀의 우승도 참 아름다웠다. 특히 경기 중 넘어져 한국팀에게 고의적 방해 반칙이 선언될까봐 노심초사하던 김아랑 선수는 판정을 기다리는 동안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자기 실수 하나로 그동안 동료들이 고생한 보람이 한 순간 날라가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에 따른 통한의 눈물이었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었고, 국민들은 그녀의 애태우는 모습에 박수로 성원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처럼 개인전에서 선전한 것도 대단한 성과지만, 팀워크로 이뤄내는 승리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집단이 화합이 아니라 권력이 되면 역사는 칠흑이 된다. 아시아권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번지고 있는 한국의 미투 운동에서 이윤택 씨의 성권력 행사 뒤에 여성 조력자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극단 대표 김소희라는 여성으로 연출가에게 여성 단원을 “초이스”해 줬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소희는 당번으로 지정된 여성 단원이 거부하면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너만 희생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말했다고 한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말은 사이비 종교의 광신을 연상케 한다.

역사적으로 어두운 집단의 위세는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나치의 600만 유태인 학살을 몰고 온 홀로코스트는 물론, 생체 실험과 자살 특공대도 마다 않은 일본의 군국주의도 집단의 독단성에서 비롯됐다. 1959년 아프리카 가이아나에서 어린이 276명을 포함한 912명이 집단 자살한 사이비 종교 인민사원 사건, 1987년 경기도 용인의 공예품 제조 공장 내에서 사장과 종업원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이비 종교 오대양 사건 등은 집단이란 미명 아래 인간이 저질은 최악의 참상이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부모의 가정에 대한 희생처럼 사회 내 작은 집단 안의 헌신적 소수 때문이다. 1975년 대학 1학년 때, 나는 친구 5명이 뭉쳐서 충남 보령 앞바다 원산도로 여행을 떠났다. 저녁에 바닷가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있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밤새 그칠 줄을 몰랐다. 없던 시절에 작은 텐트밖에 준비 못한 우리 일행 5명은 원래 서로 포개서 잘 작정이었다. 그러나 비가 오니 사태가 달라졌다. 우리는 각자 배낭을 끌어안고 비가 새는 모서리를 피해 텐트 한가운데로 비좁게 모여 새우잠을 잤다. 새벽에 피곤에 겨워 잠을 설친 우리는 친구 하나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없어진 친구는 텐트 밖에서 우산을 붙들고 밤새 쪼그려 앉아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나 한 명 비켜 주면 친구들이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지금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됐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목회자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국민을 설레게 했던 평창올림픽이 끝나간다. 22일 밤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던 김아랑 선수는 물론 다른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이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모두 종료되고 관중들이 다 떠난 텅 빈 경기장을 그날 밤 11시에 다시 찾았다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서로 셀카를 찍으며 그동안의 고생을 서로 격려하고 팀원끼리의 우정을 확인하는 화합의 자리였으리라.

22일 쇼트트랙의 모든 경기가 끝난 후 텅빈 경기장을 찾은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KBS 뉴스 캡처).

인생사는 그렇게 때론 경쟁하고 때론 뭉치면서 사는 것이다. 나무도 아름답고 숲도 아름다운 것처럼, 꽃도 아름답고 꽃다발도 아름다운 것처럼, 개인과 집단도 아름답게 상생해야 한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맹목적 집단주의는 피눈물 흘리는 사람을 많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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