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의 신 스틸러, ‘인면조’를 대박 한류 아이템으로 성장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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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의 신 스틸러, ‘인면조’를 대박 한류 아이템으로 성장시키자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8.02.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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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영화나 연극, 드라머에서 맛깔나는 연기로 주연 이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조연이 있다. 전문 용어로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 한다.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연처럼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에선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는 캐릭터라 할수 있다. “그리스 로마시대 연극 이후 주연보다 뛰어난 조연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멀티 캐스팅이 보편화된 요즘의 신 스틸러는 기존의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을 뛰어넘는 활약을 하기도 한다”고 한 영화 평론가는 말한 바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신 스틸러가 다수 등장했다. 대표적인 신 스틸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그의 특사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다. 2박 3일 짧은 일정 동안 국내외의 모든 신문 방송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표정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관심 대상이었다. 올림픽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는 스포츠 스타들은 물론, 개막식의 주인공인 마지막 성화 봉송자 김연아도 김여정 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9일 오전부터 다시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간 11일 밤까지 모든 TV의 카메라는 그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쫓아다녔다.

평창 올림픽에 자신의 피붙이를 출연시켜 세계의 시선을 ‘하이재킹’한 김정은은 어떤 면에선 뛰어난 연출가라 할 수 있다. 외신은 올림픽을 외교 게임의 무대라고 치부한다면 김정은은 압도적인 금메달리스트라고 평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비롯한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9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역에 도착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덕인 기자. 더 팩트 제공)..

또하나 이번 평창 올림픽의 신 스틸러는 개막식에 등장한 ‘인면조(人面鳥)’라 할 수 있다. 9일밤 메인 스타디움에 사람 얼굴에 새의 몸체를 가진 기이한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며 나타난 인면조 캐릭터.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긴 목을 주체 못한 채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개막식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과 TV를 통해 이를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그 캐릭터 주변에서 노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대비되면서 공포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즉각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맨 상단에 ‘인면조’가 랭크됐고 “꿈에 나올까 무섭다”, “조잡하고 혐오스럽다”는 댓글이 달렸다. 백면서생의 표정 때문에 ‘유교 드래곤’, ‘선비 드래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일본풍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오나시’와 흡사하다는 말도 돌았다. 실제 이 캐릭터가 등장한 직후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자판의 검색어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인면조(사진: KBS 개막식 중계 화면 캡처).

‘사람 얼굴에 새의 몸체’라는 기본 컨셉 때문에 부처님 세계의 ‘가릉빈가(迦陵頻加)’가 아닐까 하는 분석도 나왔다. 산스크리트어로 칼라빙카로 불리는 가릉빈가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새의 형상을 가진 상상 속의 동물이다. 아미타 경 등 불경에는 공명조(共鳴鳥)와 함께 극락정토에 사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우는 소리가 대단히 아름답고 부처님 소리를 형용한다고 한다. 묘음조(妙音鳥), 또는 호성조(好聲鳥)로 한역된다. 주로 티베트 등 서역에서 숭상되는데 돈황 벽화에선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불교의 상상 속 동물이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평창의 인면조는 순수 우리 것이었다. 평안도 덕흥리 고분, 안악3호분, 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의 널방 천장에 새겨진 벽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사실이 개막식 기획팀의 설명을 통해 밝혀졌다. 덕흥리 고분엔 봉황같은 몸에 긴 모자를 쓴 사람의 머리가 달린 인면조가 그려져 있는데 그 옆엔 천추(千楸), 만세(萬歲)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즉 피장자의 무한한 삶을 기원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인면조는 불교가 아니라 한민족을 주축으로 한 동아시아 민족의 원시 샤머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인면조가 한민족의 전통과 평화를 담아내기 위해 고구려 벽화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평판이 180도 달라졌다. “자꾸 보니 귀엽다”, “우리의 얼이 담긴 것이라 하니 정말 새삼스럽다”, “앞으로 한민족의 새로운 상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인면조 패러디물과 팬아트가 줄이어 등장했다. ‘인면조 닮은꼴’이라는 캐릭터가 인터넷을 달궜고, ‘인면조 이코티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면조 캐릭터를 창조해낸 배일환 평창올림픽 미술감독은 “흔히 한국적인 것을 찾다 보면 조선에만 몰두하게 되는데 다른 역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고구려 벽화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밝혔다. “왜 고구려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백제와 신라는 남쪽이다 보니 강원도와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문화권이 같은 고구려에서 평창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구려 벽화를 통해 전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인면조의 이목구비는 한국의 전통 탈을 참고해 창조해냈다고 한다. 전통탈 가운데 사람 얼굴에 가까운 각시탈 자료를 찾아내 평면적인 벽화 그림을 3D(입체) 형상으로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배 감독은 “인면조가 예상밖으로 인기를 끌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폐막식에도 새로운 인형들이 등장하니 관심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개막식에서 불과 몇분 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이지만 인면조가 관객들에게 남긴 감흥은 깊고 넓다. 인면조 팬아트 공유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오픈 채팅방에는 수백 명이 모여 자신들이 직접 만든 2차 창작물을 뽐내고 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에는 “인면조 굿즈(캐릭터 상품)를 제작할 계획이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도 이 인면조의 폭발적인 인기에 놀라 정부 페이스북 페이지의 프로필 사진을 인면조 캐리커처로 바꿨다.

해외에서의 관심도 뜨겁다. 특히 일본의 경우 개막식을 보도한 각 신문이 인면조에 관한 해설을 붙였는데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인면조 사이트가 개설돼 평창의 인면조 캐릭터를 메인으로 걸어놓고 네트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인면조가 새로운 한류 아이템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엿보이는 대목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주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모았던 TV드라머 <대장금>은 당시 MBC 이영학 PD가 조선 중종 실록에서 찾아냈던 ‘장금’이란 키워드 하나가 발화점이었다.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해 스토리를 입히면서 그런 폭발적인 인기 드라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신 스틸러 ‘인면조’도 한 미술감독의 머리 속에서 태어났다. 배 감독은 인면조를 ‘내 아이“라 표현한다. 이 아이를 무럭무럭 키워 세계를 진감시킬 또 하나의 대박 한류 아이템으로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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