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개막식, 애국심, 그리고 선진국민 행복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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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개막식, 애국심, 그리고 선진국민 행복의 변증법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8.02.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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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미국 미주리 주에서 공부 중일 때, 미스 USA에 미주리 출신 여성이 뽑혔다. 이를 미국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는 “Good for her”라고 대답했다. “그 애한테는 좋은 거겠지. 나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대강 이런 의미로 들렸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연고주의는 별 의미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미국도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꽤 있다. 하바드와 예일 대학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당시 내 지도교수의 자제가 수재여서 고3 때 두 대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때 미주리 작은 도시의 두 동창회가 총출동해서 서로 자기 모교로 오라고 지도교수 댁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홍보전을 펼쳤다고 한다. 한국 대학들의 지역별 지부 동창들이 우수 후배 유치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사실 야구 월드 시리즈 최고의 흥행 카드는 아메리칸 리그의 뉴욕 양키즈와 내셔널 리그의 LA다저스가 맞붙는 거라고 한다. 미국도 동서 간 지역감정이 꽤 강하기 때문이다. 작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시리즈에서 휴스턴와 뉴욕 양키즈가 붙었는데, 휴스턴이 이겨 다저스와 월드시리즈를 가져 우승까지 했다. 양키즈가 이겼다면 양키즈와 다저스의 최고 흥행 시리즈가 될 뻔했다. 

우리 연고전처럼, 미주리 대학은 옆 캔자스 대학을 앙숙으로 여기고 농구든 미식축구든 붙으면 기를 쓰고 이기려 한다. 우리나라가 한일전을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터키 사람들에게 우리의 반일 감정을 얘기했더니, 터키도 그리스와의 스포츠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숙명의 대결이라고 했다. 그리스와 터키도 바로 이웃하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막 끝내고 미주리 대학에 방문교수로 갔을 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태리 출신 스페인어과 교수를 만났다. 8강전에서 한국이 이태리를 꺾은 것을 자랑했더니, 그는 패널티 킥을 한국에 준 것은 명백한 오심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그 친구는 수십만 명이 모였던 한국의 길거리 응원을 흥미롭게 봤다며 한국의 대단한 애국심에 엄지를 척 내보였다. 이태리는 월드컵 때 어땠냐고 물으니, 이태리 사람의 애국심은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자기들은 통일되기 전 수많은 지방국가로 분열된 역사 때문에 민족적 일체감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였다.

이처럼 국가별 민족적 일체성은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세계 위정자들은 민족주의를 국민단합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유럽의 제국주의도 민족주의적 경쟁이 근저에 있었고, 미소 냉전을 미국의 앵글로색슨 족과 소련의 슬라브 족 간의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풀이한 논문도 있었다. 히틀러도 게르만 민족주의를 전체주의의 원동력으로 삼았고,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올림픽은 이런 민족주의의 경연장이었다. 히틀러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전후 일본 부흥의 전기를 노린 1964년 토쿄 올림픽, 개발도상국 탈출의 신호를 알린 서울 올림픽, 중화 민족주의 대국 굴기를 과시한 베이징 올림픽 등이 그랬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스태디움에 입장하는 히틀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가만히 보니, ‘America First’라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이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이민자 제한 정책 등도 결국은 미국의 애국심에 호소한 정책들이다. 그게 잘 먹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2001년 9.11 사태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공격당하자, 미국 대통령들은 이를 철저히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후세인과 빈라덴을 주적(主敵)으로 상정했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서 후세인을 제거했다. 2011년 빈라덴 참수작전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TV에 나와서 “We’ve got him(그놈을 잡았습니다)”이라고 외친 것은 그 속 시원한 성과를 국민들의 애국심과 연결시키려는 의도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9.11 이후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하루 일과 시작 전 모든 학생이 기립해서 애국심을 갖자는 미국판 국기에 대한 맹세문(‘Pledge to the Flag’, 성조기에 대한 맹세)을 다 같이 낭송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도 안하는 이런 노골적인 애국심 교육을 정말 했을까? 2002년 내가 미국에 방문교수로 갔을 때 미국 초등학교를 1년간 다녔던 내 딸이 직접 들려준 실화다.

미국 영화도 우리의 ‘국뽕’ 영화 못지않은 애국 영화들이 많다. 무명 복서의 성공기를 다룬 1976년 <록키>는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의도를 담았고, 1987년 <록키4>는 록키가 냉전 시대 소련 선수와 싸워 이기는 스토리를 그렸다. 이 영화를 보면, 전 세계에서 국가는 미국과 소련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외계인 침공에 맞서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 조종사로 직접 나서서 지구를 구한다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도 만만찮은 미국 우월주의 영화다.

영화 <록키>의 주인공 록키 발보아의 동상이 필라델피아에 서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미국 기업들도 올림픽 때는 애국심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이런 TV광고가 있었다. 올림픽 복싱 경기에서 미국 선수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 성조기 게양과 함께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자, 선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이 장면을 술집에서 TV 중계로 보고 있는 한 미국 젊은이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버드와이저 맥주가 들려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경험한 한국 사람이라면 그 당시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몇 주간 한국 사람들은 하늘을 붕붕 떠다니는 황홀감을 느꼈다. 나도 그랬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스포츠를 애국심 고취의 호기로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약소국가로 외침에 시달렸고, 일본에 국권까지 빼앗긴 서러운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세계 1등에 집착한다. 런던 히드로 공항 카트에 붙은 삼성 광고, 이스탄불 거리에 나부끼는 LG 깃발, 그리고 정현 선수가 선전했던 호주 오픈 테니스 코트의 기아자동차 로고를 보면 왠지 가슴이 뿌듯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화려하고 장엄하면서 세련된 한국의 긍지가 풀풀 뿜어 나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랑스런 신고식 같았다. 성화 점화대에서 피켜 스케이팅 춤을 추는 김연아는 세계를 제패한 여왕의 기품을 나비처럼 펼쳤다. 올림픽이 위정자들의 전략이든, 기업들의 마케팅이든, 대한민국 선수가 메달 따고, 시상대 높은 곳에 태극기가 게양되면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기분이 좋다. 촌스런 구시대적 애국심 기반의 ‘인정 본능’이라고 해도 좋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인증 본능’이라 해도 좋다. 인증(certification)은 공적인 증명이란 뜻이므로 인정(recognition)보다 훨씬 강력한 본능이다. 진천선수촌이 비민주적이며 구소련식 국가 중심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별 선수들의 성취욕과 워낙 독특한 한국인의 애국심이 동시에 채워진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6일 오전 강원도 강릉영동대학교 빙상장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남윤호 기자, 더 팩트 제공).

원래 스포츠를 관람할 때, 승부를 보면 하수(下手),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중간수(中間手), 전략을 보면 상수(上手)라고 한다. 하수라고 놀려도 좋다. 우리 선수들이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 대형 사고도 많았고, 괴물 시인도 등장해서 웃을 일 없는 마당에, 평양에서 온 손님들도 있으니, 게재에 우리 젊은이들이 평창에서 펄펄 날아서 국민 우울증을 날려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선진국 국민으로서 세상사는 행복을 평창올림픽에서 맘껏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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