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藍)빛 서점 '인디고,' 인문서 판매 고집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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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藍)빛 서점 '인디고,' 인문서 판매 고집하는 까닭은?
  • 취재기자 이정은
  • 승인 2014.05.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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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적 범용 세태 안타까워..." 제대로 된 책방 하나는 있어야"
▲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에 위치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 인디고 서원의 전경. (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요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고등학생은 EBS 수능 특강 교재, 대학생은 토익 책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보다 대학생들에게 ‘해커스토익’이 더 많이 팔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아무리 대형서점이라도 참고서나 문제집 없이는 운영이 힘들다. 하지만 그 흔한 문제집도, 참고서도 없이 인문학 책만을 파는 서점이 부산에 있다. 바로 ‘인디고 서원’이다.

회색빛 파벽돌과 초록색 지붕에 푸른 잔디가 있는 작은 정원..

마치 동화에서 나올 법한 모습을 가진 ‘인디고 서원’은 부산 지하철 2호선 남천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1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책방 입구에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글귀가 시선을 끈다. 

인디고 서원은 물론 일반 영리 서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 동네 서점과는 좀 다르다. 인디고 서원은 인문학 책만 판다. 또한,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모여 인문학 책을 같이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지적 활동 공간이기도 하다.

부산교육대학에 재학 중인 김경진(22) 씨는 가끔씩 책이 생각이 날 때 이곳을 들린다. 그녀는 “인문학 책을 고르고 싶을 때 이곳을 와요”라고 말했다. 멀리서 인디고 서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우혁(27) 씨는 2년 전 부산 여행을 왔다가 인디고 서원을 알게 됐다. 그는 부산 여행 장소를 검색하던 중 인문학 책만 파는 서점이 있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흥미를 느껴 인디고 서원을 찾았다. 그는 “특이한 건물 외관 때문에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인디고 서원은 2004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10주년이 된다. 서원 실장인 이윤영 씨에 따르면, 인디고 서원의 ‘인디고’는 영어로 쪽빛을 띠는 염료(indigo)인데, 설립자인 허아람 씨의 뒷 글자 ‘람’에서 연유된 것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람’ 자를 뜻한다. 이윤영 씨는 “인디고 서원에서 배우는 청소년들이 더 푸르고, 더 순수하고, 더 정의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디고’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설립자인 허아람 씨는 인디고 서원의 창립 전부터 청소년들과 단행본을 읽고 토론하는 문학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학 책을 멀리했다. 서점 또한 좋은 책보다는 문제집을 파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허 대표가 인문학 책도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도 여는 인디고 서원을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

일반 서점들은 대형 출판사들의 주도로 베스트셀러를 선정한다. 그래서 작은 출판사들이 펴낸 좋은 책들은 빛을 보기 힘들다. 이윤영 씨에 따르면, 인디고 서원은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빛을 보지 못한 인문학 책을 매달 선정하고 이 책에 관한 사람들의 토론과 세미나 활동을 진행한다.

▲ 인디고 서원의 2층 서점 입구 모습이다. 1층은 초등학생 도서를 판매하고, 2층은 청소년 도서부터 일반 도서를 판매한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인디고 서원은 ‘수요 독서회’와 ‘주제와 변주’라는 문화활동을 주관한다. 수요 독서회는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수요일에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정해진 책을 읽고 저녁에 모여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고 이윤영 씨는 설명했다. 주제와 변주는 책의 저자를 초청하는 자리다. 하지만 다른 대형 서점처럼 이벤트성 저자 사인회나 책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적 대화와 토론의 자리이다.

인디고 서원에서 주최하는 문화 활동에 7년째 참여하고 있는 김상원(22) 씨는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인디고 서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녀는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인디고잉>에서 기자 활동도 했으며, 인디고 서원에서 하는 인문학 수업도 들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아 이런 활동들이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은 책을 읽는 시간들이 기다려져요. 이제는 단지 책에서 내 인생을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내 인생이 책의 일부가 되었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인디고 서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모임 ‘인빅터스’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디고 서원은 비정기적으로 부산시교육청과 함께 ‘창의캠프’를 주최한다. ‘창의캠프’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요 토론회와 주제와 변주에서 다루었던 주제에 대해 2박 3일간 합숙하면서 학생들에게 강연회를 제공하는 캠프다. 이윤영 씨는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캠프에서 서로의 생각을 일깨우고, 같이 고민하며,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디고 서원도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사회 현실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다. 이윤영 씨에 따르면, 인디고 서원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으로서는 운영이 적자 상태다. 인디고는 문제집을 안 팔고 도서 정가제를 실행한다. 돈이 모이는 구조가 아니다. 그녀는 “구매자들이 제값 주고 사는 것을 꺼려 좀 더 사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2년 전 만하더라도 인디고는 대표인 허아람 씨의 개인 자금으로 운영됐다. 그후 재정이 어려워졌고, 현재 인디고 서원은 인문학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법인이 되어 국가에서 시행하는 인문학 지원 사업 등 외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인디고 서원은 책 구매자들에게 서원에서 진행하는 여러 인문학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나름대로 재정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인디고 서원에는 인문학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좋은 인문학 책을 찾아 판매하는 이곳은 인디고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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