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 히딩크’에서 ‘베트남 영웅’으로...‘슬기로운 베트남 생활’ 2020 올림픽 출전으로 결실 맺기를
상태바
박항서 ‘베트남 히딩크’에서 ‘베트남 영웅’으로...‘슬기로운 베트남 생활’ 2020 올림픽 출전으로 결실 맺기를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8.01.29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은 지난 주말 치러진 아시아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맞아 분전한 베트남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우즈벡에 비해 체격이 열세인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낯선 강추위 속에 눈보라와 설전(雪戰)을 벌여야 했다. 그것도 3경기 연속 연장전.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베트남 선수들을 보고 놀랐다. 강인한 정신력에 감동했고, 수준 높은 경기력 또한 예상 밖이었다. 사실 전반 8분 선제골을 허용한 뒤 베트남 선수들이 무너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투혼은 식을 줄 몰랐다. 전반 41분, 마침내 베트남의 동점골이 터졌다. 이번 대회의 스타 응우옌 꽝 하이가 그림같은 왼발 프리킥으로 우즈벡의 골망을 갈랐다.

비록 연장전 종료 직전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했지만 그들은 인간 기관차처럼 폭설을 맞으며 뛰었고, 넘어지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우즈벡 공격수들이 문전으로 쇄도할 때면 공은 어느새 베트남 수비수의 발에 걸렸다. ‘빗장수비’의 대명사 이탈리아팀을 보는 듯했다. 우즈벡과 카타르에 연패하며 4위에 그친 한국팀의 무기력한 모습이 비교됐다.

우즈벡이 얻은 두 골 모두 코너킥에 이은 헤딩슛이었고, 베트남은 프리킥이었다. 우즈벡이 장신의 장점을, 베트남은 발을 이용했다. 베트남 선수들이 신장에선 열세인지만 발 재간은 우즈벡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트남 선수들의 투혼을 보면서 문득 호찌민을 여행할 때마다 방문했던 베트남 전쟁의 상징 ‘구찌 터널’이 떠올랐다. 지하 요새였던 구찌 터널은 깊이 3~8m, 길이는 캄보디아 국경까지 무려 250㎞에 이른다. 세로 80cm, 가로 50cm 정도로 몸집이 큰 미군은 통행조차 어려웠다. 이런 터널을 온전히 사람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미군을 상대로 끈질긴 게릴라전을 벌였던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그 때의 정신력이 우즈벡과의 결승전에서 되살아난 듯했다.

베트남 구찌터널(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베트남은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자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일깨운 ‘박항서’라는 이름이 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박항서 리더십’의 진면목은 뭘까. 내가 보기엔 베트남식 고정관념을 꿰뚫은 그의 혜안이야말로 리더십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알렉산더 대왕이 명마 부케팔로스를 자신의 애마로 길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알렉산더가 왕자시절 필립 왕이 부케팔로스라는 명마를 사려고 했다. 그러나 말의 성질이 워낙 사나워 누구도 이를 다루지 못했다. 필립 왕이 말을 물리려 하자 알렉산더가 나서 “말을 못 타게 되면 제가 말 값을 대신 지불하겠다”고 장담했다.

부왕의 허락을 얻은 알렉산더는 말고삐를 쥐고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못 보게 말머리를 태양 쪽으로 돌렸다. 말은 해를 등지고 있을 때 자신의 그림자가 움직이면서 여러 모양으로 변하는데 놀라 겁을 먹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흥분한 말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자 부드럽게 어루만진 뒤 가볍게 말 등에 올라타고 달렸다. 이후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의 곁은 지키는 애마가 됐다. 모든 사람들이 ‘말의 성질이 사납다’고 고개를 저을 때, 알렉산더는 말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며 왜 사납게 구는지 알아챘던 것이다. 고정관념을 깬 신뢰의 리더십에 가깝다.

박 감독은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특유의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선수 한 명 한 명 껴안고 이름을 부르면서 “넌 잘 할 수 있어”라고 속삭여준다. 마치 알렉산더가 부케팔로스를 쓰다듬듯.

박 감독은 베트남이 우승 후보 호주를 1-0으로 꺾었을 때 “그저 선수들과 함께 뒹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승부를 떠나 축구를 즐기게 한 것이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논어 구절처럼 말이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뜻이다.

박 감독은 4개월 전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뒤 몇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베트남 선수들이 키가 큰 선수들을 만나면 주눅이 드는 ‘신장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힘을 쏟았다. 또 자신들이 뛰어난 스피드와 근력, 지구력을 갖추고도 스스로 “체력과 기술이 뒤처진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는데 열중했다. 패스나 슈팅에서도 한국 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갖춘 점을 눈여겨봤다. 오히려 선수들에 대한 충분한 영양공급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박 감독은 알아냈다. 식단을 짰고, 쌀국수를 즐겨 먹던 선수들에게 육류를 자주 먹게 했다. 신장의 열세는 그물수비로 보강하게 했다. 그 결과가 이번 대회에서 드러났다.

2009년 3월 4일 오전 9시 서울 홍은동 힐튼호텔에서 K리그 개막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항서 감독(사진: 더 팩트 이호준 기자, 더 팩트 제공).

사실 박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본 것은 베트남 축구협회와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럽 감독을 데려오라는 베트남 국민들의 요구를 물리친 협회의 결단, 그리고 협회가 결정한 감독을 믿고 따라준 선수들의 팔로어십(follower ship)이 주효했다. 한국이 본받을 만한 대목이다.

‘박항서’라는 이름은 이미 베트남에서 영웅 반열에 올랐다. '베트남 뉴스'에 따르면 베트남 화가 안탕이 그린 풍자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고공비행하는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선수들이 손을 흔들고 있고, 아래 연못에선 다른 동남아 국가 국민들이 울고 있는 그림이다.

베트남 팬들은 박 감독을 가리켜 ‘베트남의 히딩크’라고 하는 것조차 불만이다. 그들은 “히딩크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영웅 박항서 감독님을 함부로 비교하지 마라”고 주문한다. 그래서인지 걱정도 앞선다. 박 감독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라던 사람들이 언제 표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 베트남 축구가 추락하는 순간 박 감독도 화살을 비켜갈 수 없을 터이다.

다행히 박 감독의 발언이 이런 걱정을 물리치게 만든다. 그는 엊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이 4강까지 갔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1년 만에 사라졌다. (지금의 환호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박 감독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던 솔로몬의 경구를 되뇌며 ‘슬기로운 베트남 생활’을 완수하길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