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위험
상태바
또 하나의 위험
  • 편집위원 정일형
  • 승인 2014.05.19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호 사건 발생 이후로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오늘 현재 여전히 18명의 실종자가 남았다. 현장의 기자들에 의하면,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자정에 바다로 나와 동시에 울부짖는다고 한다. 익사한 사람들은 가족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미신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미신을 믿으면서라도 남은 가족의 의무를 다하고 싶은 실종자 가족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한 달이 넘은 시점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관련 소식만 들어도 눈물부터 쏟아지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했던 지난 4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는 1978년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고령 원자력발전소로 이미 2007년 설계수명을 다했지만 10년 더 가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면서 수명이 다한 제품을 다시 고쳐 쓰는 관행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한 상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재난 보도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해당 사건이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원전마피아 세력은 여전히 인재를 예감케하며 세월호를 비롯한 각종 대형 참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어 걱정된다.

방사능 사고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단 번에 무시무시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1978년 4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로 설계 수명에 따라 폐지 연도가 30년인 2007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주요 부품에 설계 수명이 정해져 있는데, 기타 다른 부품들은 교체가 간단하지만 주요 부품은 교체가 힘들어 이들 주요 부품의 수명이 결국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인 셈이다. 이렇게 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의 주요 부품에 대해 IAEA 검증과 지역사회 합의 등을 거쳐 2007년 12월 10년 연장안이 발표되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 MBC <PD수첩>은 고리원전의 안전 실태에 대해 취재하고 수명연장의 가장 큰 근거가 된 안전검사 결과 보고서의 문제점 등을 밝히면서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그린피스같은 단체도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현재 건설 중인 원전까지 12개의 원전이 한 지역에 밀집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집도를 가진 원자력발전소로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2년 2월에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의 공급이 끊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에 비상 디젤 발전기마저 작동을 멈추어 발전소 전원이 12분 동안이나 전원 완전 상실 사고(black out)가 발생했지만, 한 달 넘게 은폐해 오다가 보고되어, 발전소 폐쇄 여론에 본격적인 불을 지피게 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마침 그 시점에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등에 부담을 느껴 고리원전본부장과 제1발전소장이 사건 발표 전에 인사 교체되면서 조직적 은폐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방사능 사고는 터지기만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온다. 더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구소련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쓰리마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진 발전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과 달리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원전 사고의 1차 피해지역인 반경 30Km 내에 부산과 울산을 두고 있다. 약 500만을 상회하는 인구가 해당 지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참 끔찍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해 볼수록 세월호와 고리 원자력발전소는 수명을 연장하고 안전성을 해치는 여러 징후들이 많다는 점에서 너무도 닯아 있다. 더 시급한 것은 세월호는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구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가 늘었지만,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터지면 대피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런 사고에 대비하는 훈련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그동안 수많은 대형참사들에서 반복되었던 사후약방문식의 조치에 그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통감했다.

마침 오늘 대통령은 우리가 수출한 원자력발전소 1호기 원자로 설치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랍에미레이트(UAE)로 떠난다고 한다. 이왕이면 원자력발전소 건설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의식수준 또한 높은 나라로 인식되는 것이 그 핵심기술을 수출하는 데 더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전에 대한 중요성과 그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얘기해 온 정부이지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