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부산이 민주주의 본향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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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부산이 민주주의 본향이라는 것을"
  • 취재기자 안건욱
  • 승인 2014.05.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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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동 민주공원서 돌아본 대한민국 민주화 반세기

 

▲ 2013 공익광고제 인쇄부분 금상 작(출처: kobaco)

이 광고는 2013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인쇄 부분에서 금상을 받은 광고이다. 이 광고는 아마도 3.1, 8.15, 6.25 등의 의미를 적으라는 역사 문제에 어느 학생이 단순 수학식 덧셈을 해서 오답을 적은 답안지를 희화화한 듯이 보인다. 이 광고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역사인식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교육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를 지켜나가는 곳이 부산에 있다. 그곳은 바로 부산 중구 영주동 산 정상에 위치한 민주공원이다. 민주공원이 5공화국의 군부에 맞선 지역인 광주도 아닌 부산에 왜 있을까? 이런 질문이 부산의 젊은 시민들이나 청소년들에게서 나온다면, 민주공원은 바로 그 정답을 보여주려는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산은 민주화의 구심점이었다. 1979년, 박정희 유신 정부 시절 8월에 YH라는 당시 생소한 영어 이니셜을 회사 이름으로 쓰던 어느 악덕 기업주가 가냘픈 여공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중노동을 시키고 있었다. 노동쟁의 자체가 불법이었던 당시 여공들은 그래도 안전할 것 같은 신민당사로 경찰에 쫓겨 들어 왔고, 경찰은 야당 당사를 성역으로 여기지 않고 무자비하게 강제 연행에 들어갔다. 이를 육탄으로 방어하던 야당 국회의원들 중에는 부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았던 야당 당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었다. 여공 진압에 성공한 여당은 곧바로 국회를 열고 김영삼 신민당 대표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를 본 부산과 마산 시민들이 이 정부의 폭거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게 유신정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던 부마항쟁이었다.

부마항쟁의 시작은 부산대생들의 시위로 시작했다. “학우들이여! 형제의 피를 요구하는 자유와 민주의 깃발을 우리가 잡고 불의의 무리를 향해 외치며 나아가자!”는 깃발을 들고 부산대생들이 거리로 나가자 곧 동아대생들이 합류했다. 5000여 대학생 시위대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남포동 거리에 이르자, 시민들은 경찰들에게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했고, 빵, 음료수 등을 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이 시위는 곧 마산과 창원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민주공원은 199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일을 맞아 개관했다. 부산민주공원은 부마항쟁의 정신을 기린다는 취지를 이어받아 건립된 것이다. 부산 민주공원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부산시 간의 조율을 통해 공동으로 건립을 추진했으며, 현재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시로부터 민주공원의 운영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4・19혁명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져온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을 정리하고 그 정신을 기념, 계승하는 사업을 주관하는 단체다. 원래는 1989년에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로 창립됐으며, 1997년에 지금의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로 개칭됐다.

원래 영주동 일대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형성해서 살던 곳을 휴식처로 바꾸기 위해 중앙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민주공원은 바로 이 중앙공원 부지를 확대해서 자리 잡았고, 이제는 중앙공원이란 이름은 없어지고 민주화 관련 시설이 들어 서면서 민주공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 민주공원 광장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건욱)

민주공원은 크게 광복기념관, 4・19광장, 민주항쟁기념관, 충혼탑으로 나뉜다. 민주공원의 중간에 위치한 광복기념관은 2000년 8월 15일에 개관됐으며,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에 대한 부산지역 독립 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공판 속기록 번역서(사본)가 있으며, 부산의 3ㆍ1 독립운동, 동래장터 독립만세운동, 구포장터 독립만세 운동, 부산의 독립운동사 등에 대한 기록물을 테마별로 전시해 놓고 있다. 광복기념관 2층에는 특별히 부산지역 독립투사 426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4・19광장은 부산 지역 4・19혁명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으며, 특히 광장 한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위령탑은 부산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세워졌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 1960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이승만 정부는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이 영구집권을 노리며 1960년 4월 3일 실시한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기승을 부리자, 대구, 부산, 마산 등지서 투표 당일부터 격렬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시위 때 실종됐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의 사체가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최루탄이 직격으로 박힌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산 시민들은 이에 격노하여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곧이어 부산에서는 동래고교생 등 1,000여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부산은 4ㆍ19혁명의 핵심 진원지 중 한 곳이기도 했던 것이다.

4ㆍ19광장 옆에는 민주항쟁기념관이 있다. 이곳 2층 전시실에는 부산 지역 민주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전시물과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원형으로 모아 놓은 신발들을 볼 수 있다. 이 신발들은 한진중공업 사태 때 노동자들이 신었던 신발을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일어난 노동운동으로 부산의 영도조선소를 운영하던 한진중공업이 4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면서 1년간 지속된 시건이었다.

전시실 안에는 민주열사들이 투옥되었던 감옥을 본뜬 모형감옥이 있다. 관람객들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서 투옥된 민주열사들의 고통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모형감옥을 체험하고 나온 김모(21) 씨는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체험해보니까, 어둡고 좁아 무서웠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개의치 않았던 민주열사 분들을 생각하니 존경스러워요”라고 말했다.

부산 문현동에 사는 관람객 이모(44) 씨는 아이들에게 부산의 민주화 운동을 가르치려고 방문했다. 이 씨는 “단순하게 책으로만 민주주의를 배운다면 아이들이 따분해 할 것 같아서 직접 애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쉽게 부산의 민주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항쟁기념관에는 독특한 조형물인 민주횃불이 있다. 민주횃불은 기둥 내부에 수많은 반사재질의 작은 조각들이 있어서 조명을 받을 때마다 그 조각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름 없는 많은 별들을 형상화하고 있단다.

▲ 민주항쟁기념관 전경(사진: 취재기자 안건욱) ▲ 민주항쟁기념관 전시실 내부에 자리 잡은, 한진중공업 사태 때 노동자들이 신었던 신발들 (사진: 취재기자 안건욱)

민주공원은 민주주의 역사 관련 전시뿐만 아니라, 판소리 한마당, 인형극, 비보잉, 어린이 영화, 민속놀이, 요리체험 등 민주주위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공연이나 체험행사가 연중 열리고 있다.

민주 공원에는 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 이는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민주공원의 전신인 중앙공원 터에 조성됐는데, 그 높이가 70m나 된다. 부산 주례동에 사는 이대겸(24) 씨는 “충혼탑을 보니까 그 크기에 놀랐다. 또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생각하니 감사하면서도 잊고 지냈다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민주공원은 부산 앞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어 부산 경관을 보기 위해 찾는 시민들이 많다. 이 점이 민주공원에 대한 아쉬움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실 민주공원 전시실이나 기념관을 찾는 사람보다도 부산항 경치를 보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민주공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공원 전망이 좋다보니 그냥 놀러 오는 분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민주공원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시민들이 쉽게 들러서 민주주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딱딱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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