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과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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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과 박찬호
  • 편집위원 우병동
  • 승인 2014.04.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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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팀의 류현진 투수가 아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팀을 상대로 투구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봤다. 7회 까지 단 2안타만 내주는 완벽한 게임을 하면서 2승째 승리를 따내는 것을 보고 정말 통쾌했다. 류 선수는 한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유만만한 자세로 투구를 했다. 직구면 직구, 변화구면 변화구로 거의 완벽한 공을 던져 3진만 여덟 개를 잡아냈다. 타석에도 나서서 비록 플라이였지만 타점까지 올리는 것을 보고 혼자서 신바람을 냈다.

그러다가 문득 30여 년 전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박찬호 선수를 응원하던 생각이 났다. 지난 1980년대 중반 필자는 미국 미주리주의 작은 타운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LA 다저스 팀의 투수로 활약하던 박찬호 선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자부심이요 자랑이었다. 홀홀단신 미국 메이져 리그로 진출해 몇 년째 10승 투수로 승승장구하던 당시의 박찬호선수에게 국내 팬들은 물론 미국에서 살던 교민들과 유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청량제였던 것이다.

어쩌다가 박찬호 선수가 필자가 살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경기를 하러 올라치면 우리 대학의 유학생들과 타운의 교민들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응원을 가곤 했다. 대학이 있는 타운에서 경기가 열리는 세인트 루이스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서 가야하는 거리. 필자의 가족들도 같이 있던 한국외국어대학교 K 교수 가족들과 함께 일찌감치 출발해 경기가 열리는 앤하우져 부시 스태디엄으로 향한다. 무려 5만명이 들어갈 수있는 경기장은 야구에 열광하는 시민들로 언제나 가득차 열광의 도가니였다.

더구나 당시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팀에는 빅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백인 홈런왕 맥그리거 선수가 뛰고 있어서 인기가 최고였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속에서 우리 2가족들은 3층 맨 꼭대기 자리에서 잔뜩 쫄아서 구경을 하곤 했는데,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 녀석과 K교수의 아들만이 겁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박 선수를 응원하면 덩치 큰 미국 사람들이 신기한 눈길로 우리를 처다보곤 했었다.

제 몸보다 훨씬 큰 미국 선수들을 상대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꽂아넣던 박찬호 선수를 보며 얼마나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웠던지. 박찬호 선수는 심각한 표정에 신중한 자세로 공 하나하나를 뿌렸다. 그 진지한 자세를 보면서 구경하던 우리의 몸에도 똑같이 힘이 들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했던지 잘 던지다가도 한번 흐트러지면 걷잡을 수없이 무너져 경기를 잃고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로 안타깝고 걱정스러웠다. 당시 박선수의 모습에는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처럼 비장한 감이 넘쳐 흘렀다.

그러나 지금 경기장에서 보는 류현진 선수의 여유로움이라니. 마치 우리나라 경기장에서 투구를 하듯 위축감 하나없이 자연스럽게 공을 뿌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이만치 성장했구나 하는 뿌듯한 느낌이 가슴 속에 차 올랐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외국 선수들 사이에 섞여서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경기를 하는구나,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메이져리그 경기에서도 조금의 위축감 없이 공을 뿌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의 젊은이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면 좋은 승부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믿음직스러운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경기침체로 취업이 어려워 학생들의 마음이 펀치 않은 요즈음이지만 류현진 선수와 같은 배짱으로, 자신감으로 노력하면 안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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