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와 책 이야기
상태바
대학의 위기와 책 이야기
  • 편집위원 장동범
  • 승인 2014.04.11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디가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인도를 독립시킨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인이 쓴 책 때문이라면 아마도 놀랄 것이다. 1908년 남아공에서 ‘아시아인 등록법(인종차별법)'에 반대해 간디 주도로 수천 명의 인도인들이 등록증을 불태워 촉발된 비폭력 저항운동(Satyagraha)은 간디가 영국 유학 시절 읽었던 책에서 비롯됐다. 후에 간디 스스로 “나는 큰 즐거움을 가지고 <월든>을 읽었으며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 날 세계적인 명저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월든>은 미국 초월주의자로 에머슨과 친구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가 쓴 일종의 수필집으로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호수 옆 숲속에서 보낸 2년 간의 생활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소로우가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인두세 내기를 거부하다 감옥살이까지 한 뒤 쓴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국가기관의 폭력에 비폭력 불복종으로 맞서는 시민의 저항정신을 강조하고 있어, 간디는 아마 이 부분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소로우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사람으로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얼마 전 입적한 한국의 법정 스님 등이 있다.

필자는 70년 초 한 출판사가 <월든>의 한 부분을 발췌해 문고판으로 만든 <숲속의 생활>과 그 후에 나온 소책자 <시민불복종>을 읽고서 소로우의 정신세계를 접할 수 있었으며, 비록 독립 국가로써 역사가 짧은 미국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의 원천이 소로우와 같은 사상가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었다. <숲속의 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목은 소로우가 텃밭에 파종을 하면서 다람쥐나 들짐승 몫까지 넉넉하게 씨를 뿌려 더불어 살려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과, <시민불복종>에서는 세금을 받으러 숲 속 통나무집을 찾은 관리에게 “나는 콩코드 호수 멀리 지나는 기차 기적 소리 들은 것밖에 세금을 낼 일이 없다”며 돌려보내는 내용이다.

이밖에 또 다른 존경할 만한 미국인으로는 스콧 니어링(1883~1983)을 들 수 있다. 니어링 역시 반전 운동가이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강연 등을 통해 고발해 한 때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하기도 했으며 21세 연하의 헬렌 니어링(1904~1995)을 만나 1932년 뉴욕 생활을 그만두고 버몬트 시골로 들어가 살았던 스무 해를 기록한 <조화로운 삶(Continuing the Good Life)>을 펴냈다. 헬렌은 스콧이 100세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자, 8년 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라는 책을 펴냈다. 두 저서 모두 문명에 저항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산 두 사람의 조화로운 삶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의 시카고 대학은 처음부터 일류대학이 아니었다. 이 학교가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약관 30세로 총장에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1899~1977) 때부터이다. 허친스 총장은 대공황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던 미국 사회에서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젊은 대학생들이 공부는커녕 술에 취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서 관련 전공과목의 고전을 달달 외울 정도가 아닌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시카고 플랜’, 일명 ‘대저서 프로그램’(The Great Book Program)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시카고 대학은 허친스 총장이 취임한 1929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8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내는 명문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전이 상상력과 창의력, 사고력과 논리적 표현력, 그리고 통찰력을 키우는 데 매우 훌륭한 교육 자료임과 동시에 인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는 오늘 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16년 간 시카고 대학 재직을 마친 허친스는 1947년 허친스 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주의 이론을 강조하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Free and Responsible Press)>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오늘 날 언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읽히고 있기도 하다.

필자의 빈약한 서가에는 잡지 <신동아>가 1968년 1월호 부록으로 펴낸 <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이 누렇게 탈색해 꽂혀있다. 요즘은 필요한 책 정보는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교양 필독서로 일목요연하게 분류해놓은 이 같은 책 안내서는 매우 유익한 자료여서 소중한 마음에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책 말미 세계 명저 목록에는 앞서 소개한 허친스 등이 주도한 미국시민이 9년 간 읽을 ‘그레이트 북스’ 144권을 소개하고 있는데 첫 1년에 제일 먼저 읽어야 할 것으로 <미합중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이 또 위기라 한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사람만이 유일한 자원이기에 자식들은 무조건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은 오늘의 경제 부흥을 가져온 원동력으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감탄하게 했지만, 이제 한국의 대학은 졸업만 해서는 제 앞 가름도 하기 어려운 실업자 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학생들은 졸업을 미루고 개인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대학교수들은 학생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취직시키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21세기 정보사회에 불어 닥친 한국 대학들의 위기를 타개할 대책은 없는가? 단기적인 처방은 백인백색으로 다양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대학의 역할이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그 답을 앞서 소개한 시카고 대학을 일류로 바꿔놓은 허친스의 ‘고전읽기’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 웬 아날로그적인 책읽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의 위기를 거론할 때마다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바로 인문학의 위기이다. 오로지 대학을 취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대학생활 내내 전공과 관련해 반듯한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강의실이나 찻집에서 스마트폰이나 뒤적거리다 졸업하는 얄팍한 교양에 어떤 창의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학부 수강 과목만이라도 관련 고전 텍스트를 1권 이상 읽게 하고 담당 과목 교수들로 하여금 독서지도를 받도록 하여 상식을 갖춘 대학 졸업자를 양성하는 것이 대학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필자가 받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이 ‘책읽기’와 관련해 상당히 유의미한 글이 있어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읽고, 읽고, 또 읽어라. 독서가 역량 개발에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독서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단군 신화 스토리를 떠올려보자. 곰과 호랑이에게 미션이 주어지는데 호랑이는 중간에 포기해 버린다. 곰은 마침내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게 된다. 만약 쑥과 마늘을 먹을 때마다 하루하루 몸의 일부분이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 호랑이도 꾹 참았을 것이다. 책읽기는 쑥과 마늘과 같다. 책이라는 게 오늘 한 권 읽고, 일주일에 몇 권을 읽어도 도통 느껴지는 변화가 없다. 그런데 100일 때 곰이 사람으로 변했던 것처럼 책읽기가 쌓이는 어느 ‘100일’이 되었을 때, ‘책읽은 사람’과 ‘책 읽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김정태의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