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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저질러 놓은 ‘위안부 정책 파탄’, 엉거주춤 덮었지만..../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이어령 교수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석학이다. 20여 년 전 그가 저술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일본인론’이었다. 일본 강점기 어렸을 때 배운 일본어를 바탕으로 일본 문화를 깊이 천착한 끝에 일본인의 특성을 ‘축소지향’으로 설파한 이 책은 당시 일본 및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고 그의 탁월한 분석력에 무릎을 치며 탄복한 적 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생각나는 대목을 정리해보면.

“일본인은 뭐든지 줄이는데 선수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한다. 중국에서, 한국에서, 또 서양에서 전수받은 것을 모조리 축소, 압축, 간소화해 일본적인 것으로 만든다. 한여름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부채가 일본에 들어가면 고센스(小扇子)가 된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비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정원은 나무를 분재하고 화분을 곳곳에 전개하고 잔 모래를 바닥에 깔아 강의 모형을 만들어 조성된다. 자연을 살리는 게 아니라 축소하여 흉내내는 것이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손에 들고 다닐수 있는 라디오를 처음 만든 것은 일본의 대표적 전자회사 소니였다. 라디오와 카세트를 합성한 ‘라지카세’를 고안해낸 것도 일본 기업이었다. 레디메이드 콘크리트를 줄여 ‘레미콘’이란 용어를 세계적으로 통용시킨 것 역시 일본 사람들이다.”

2013년 1월 18일 한 강연장의 이어령 교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처럼 태생적으로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이 본성을 거스르고 확대지향으로 나갈 때 주변국에 큰 아픔을 주고 그들 자신들도 큰 불행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어령 교수와 필자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고교 시절 그가 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고 인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으며 운명처럼 그가 졸업한 대학 국문과에 진학했다. 학과에 비치된 그의 대학 졸업 논문 ‘상상력 비판’을 읽고 감탄한 나머지 그 논문을 많이 인용한 유사한 졸업 논문을 썼고,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그에 대한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그가 저술한 책은 거의 빠짐없이 사서 읽었고, 한 조찬회에서 초청 강사로 초빙된 이 교수를 소개하는 영광을 갖기도 했다.

한 2년 전, KBS에서 <이어령의 100년 서재>라는 제목으로 60분짜리 그의 강연 특집을 10차례 방영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그의 개인 서재 ‘영인문학관’에서 젊은 학생 등 청중 10여 명을 상대로 한 노변담화 형식의 강연이었다. 그 첫방송 주제가 ‘광복’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이것 역시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생각나는 대목을 재구성해보면.

“얼마 전 일본에서 초청이 와서 특강을 했지요. 주제는 최근에 내가 저술한 한중일 비교문화론  <가위바위보 문명론>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도 얘기하게 됐어요. 강연장에 가득찬 청중을 상대로 한참 열띤 강의를 하던 도중, 머리를 짧게 깎은, 한눈에 봐도 우익이 틀림없어 보이는 젊은 남자 서너 명이 일어나 돌발 질문을 던졌어요. ‘당시 일본 정부 문서나 미 군정의 문서 등을 봐도 종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데 왜 그런 얘기를 지금 하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내 누이가 바로 위안부 피해자다. 당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급급했던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기록을 믿느냐, 아니면 지금 여러분 앞에 선 나를 믿느냐.’ 갑자기 강연장 안이 조용해졌지요. 그래도 한국의 석학 중 한 명으로 알아주는 내 누이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하니 다들 놀랐다는 표정들이었어요. 물론 내 누이가 직접 위안부에 끌려 간 것은 아니죠. 당시 조선의 여인들은 다들 이른바 ‘정신대’에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었어요. 그런데 유부녀는 정신대 차출에 제외된다는 것을 알고 부모들은 딸들을 서둘러 시집보내는 풍습이 생겼지요. 내 누이도 16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시집가는 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이 초등학생 어린 내 기억에 생생했어요. ‘소녀의 꿈을 포기하고 낯선 남자에게 시집 간 내 누이 역시 위안부의 피해자다’ 이런 얘기를 들려줬지요.”

1944년 8월 버마 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구출된 위안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러자 그 깍두기 머리의 남자들이 또 반문했어요. 왜 전쟁이 끝난 뒤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40여 년이 지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이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저 이국만리에서 위안부로 시달리다 귀국한 뒤 남편을 얻고 자식을 낳고 살아 온 여인이 자신을 일본군의 성욕받이였다고 고백하는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40여 년의 세월도 차차리 모자랐던 것’이라고요. (위안부 할머니가 처음 성노예 문제를 제기한 것은 1991년 8월 14일이었다. 이 날을 위안부 대책협에서는 ‘기림일’로 부른다.)”

“그러고 나서 말했어요. ‘일본인들은 원래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하이쿠(단가) <잠자리 잡으러 너 어디까지 갔느냐>를 보자. 아들을 잃어버린 모성을 이처럼 절제됐지만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일본 여인들이다. 그런데 전쟁중 여러분의 어머니들은 어떠했나. 천황 폐하를 위해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라고 자식들을 종용하지 않았던가. 군국주의의 집단 최면술에 다들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있는 곳에 여인들의 성폭행 피해는 예사롭다. 개인적으로 매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제도적으로 여인을 배급하듯 성노예로 전장에 배치하는 것은 동서고금 역사에 전무후무한 반인륜적 범죄 행위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애꿎은 여인을 배급품으로 전장에 배치한 그 죄상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반성하는 것이 한일관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첫걸음이다’라고요. 열렬한 박수 속에 강연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는데, 수백 명의 청중들이 일렬로 늘어서 나늘 향해 두 손을 모아 절하며 ‘스미마셍’을 거듭하곤 했지요.”

2년 전 박근혜 정부가 저질러 놓았던 ‘위안부 정책 파탄’이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덮어질 모양이다. 강경화 외무장관은 지난 9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이른바 12.28 합의)에 대해 “위안부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했다”고 선언하고 “그러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어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화해치유재단 운영에 관해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을 예고했다.

사실상 12.28 합의 이행 중단을 선언한 셈이다. 다만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 그리고 10억 엔 반환 등의 강경 조치는 자제했다. 피해자를 소외시킨 합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일본과의 외교적 파행을 회피하기 위한 고뇌의 절충안으로 읽힌다. 물론 당장은 위안부 대책협 측이나 일본 측 양쪽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차분히 시간을 갖고 설득해나가면 양측 모두를 진정시킬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일본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더라도 10억 엔을 내던지듯 돌려주고 할머니들의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책임있는 당국자로서, 더욱이 북핵 긴장이 고조된 현재 한반도 정세의 운전자론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으로서 주변 4강의 한 축인 일본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소장 아우구수투스 황제 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옛날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은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였다. 말 자체가 모순되는 이른바 ‘형용모순’이지만 아우구스투스는 32세에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77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45년 간 이 좌우명을 기반으로 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전략을 세워 로마를 재구축, 200여 년 탄탄한 팍스 로마나의 기반을 만들었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불가역적 해결과 대일본 관계의 탄탄한 구축을 위해 문재인 정부 역시 천천히 서두르기를 권하고 싶다. 그 심모원려의 전략 속에는 이어령 교수가 일찍이 시행한바 있는 일본인 저변을 향한 감성적 접근법도 한 번 시도해봄 직하다고 생각된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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