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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미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졸업으로 험난한 사회로 떠나보내며/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지난해 말 대작(代作) 문제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의 그림은 화투가 주요 주제다. “왜 화투만 그리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독특한 소재였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음악은 대가(大家)를 따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미술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독학으로 회화를 시작하고 나서 국내외 화가들의 그림을 살펴보니 이미 거의 모든 주제가 그림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화투를 주요 오브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조영남이 화투패 48장 중 특히 좋아한 그림은 ‘12월 비광’이었다. 한 남자가 개울가에서 우산을 쓴채 개구리 한 마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다. 조영남은 갓을 쓴 이 남자의 얼굴에 자신의 사진을 새겨 넣기도 하고 진시황 병마용의 그림을 합성해 집어넣기도 했다. 때로는 이 ‘비광’을 중심으로 솔광, 삼광, 팔광, 똥광 등 빛광(光)자가 그려진 5장의 그림, 즉 오광을 무지개처럼 펼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조영남이 이 비광 그림을 좋아한 것은 다른 것에 비해 구도가 다채롭다는 점도 있지만 여기에 뜻 깊은 훈화(訓話)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투는 원래 일본으로부터 전래됐다. 18세기 일본인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져온 트럼프 카드를 자신들 문화에 알맞게 48장으로 된 하나후다(花札)를 만들었는데, 일제강점기, 이것이 한국으로 들여와 우리 서민의 대표적 놀이기구 화투가 된 것이다. 따라서 화투는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4장의 패를 갖는 등 하나후다와 기본 얼개가 같다. 다만 몇 가지 그림에서 약간 변용되어 나타난다. 일본색이 짙은 부분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다.

예컨대, 12월 비광의 경우 한국식 화투는 갓을 쓰고 나막신 신은 선비가 개울을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반면 일본식 하나후다엔 버드나무 아래 개구리가 점프 준비 자세로 있고 이를 게다(일본식 나무 신발)를 신은 화복(和服) 차림의 남자가 개구리를 쳐다보는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또 이 그림은 한국식 화투에서는 12월이지만 일본식 하나후다에서는 11월이다. 하나후다의 12월은 오동과 봉황이 그려진 것으로 한국 화투의 11월, 속칭 똥광 그림으로 표현된다.

하나후다의 11월 그림에 등장하는 화복 입은 남자는 실제 인물이다. 헤이안(平安) 시대 중후반 일본 최고의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오노 도후(小野道風, 894~966)다. 그는 전통적인 중국 왕희지 서법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일본식 ‘조다이요(上代樣)’ 서체를 완성했다. 그의 서체는 현대까지도 일본 서예의 전형으로 존숭받고 있다.

도후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대한 재능을 나타냈다. 자신감과 열정이 넘쳤던 그는 매번 “더 잘 쓰도록 하여라”라는 스승의 질책에 실망, 결국 서예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스승에게 인사도 없이 짐과 우산을 챙겨 떠나려는데 대문 앞 버드나무에서 이파리를 잡으려고 수차례 뛰기를 반복하는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무엇 때문에 되지도 않는 짓에 그리도 애를 쓰는지 그 모습이 처량해 더 이상 보기 싫어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개구리는 마침내 이파리를 간신히 부여잡는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버드나무 밑에서 한참을 서 있었고, 자신의 결정이 틀렸음을 후회한다. 그 길로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 필사적으로 서예 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다.

우산을 받쳐 든 사람, 뛰어오르려는 자세의 개구리, 버드나무가 그려진 화투패, 비광의 상황이 바로 오노 도후의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다. 화투패 한 장이 ‘하고 또 하고’, 반복 수련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줌과 동시에 개구리와 같은 미물도 인생의 스승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서예를 포기하려던 서예가가 줄기차게 도약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높은 나무 위 오르기에 성공하는 개구리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 훈화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다음 달 중순 또 한 차례 50여 명의 제자들이 교문을 나선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 역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제자들을 험난한 사회로 떠나보내는 심정이 착찹하다. '보다 야무지게 가르칠 걸' 하는 회한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른다.

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언론문장 연습', '취재보도론', '현장실습' 등의 과목을 맡은 필자는 기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기사쓰기 훈련을 시키는 게 주업무다. 30여 년 언론사 기자 생활의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글쓰기, 특히 기사쓰기의 왕도는 오노 도후처럼 끊임없이 반복 연습하는 것 뿐이다. 소설 등 창작적인 글쓰기에서는 일부 천재적인 작가처럼 타고난 글쟁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정해진 패턴의 문장에 취재한 팩트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쓰는 기사는 얼만큼 그 패턴에 익숙해지느냐 여부가 품질을 결정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한 유명 기자가 있었다. 40여 년 전 그가 모 유력 중앙지에 입사했을 때 그의 훈련을 맡은 선배는 호랑이로 이름난 C모 차장이었다. 학생 시절 학보 기자로 자기나름 기사쓰기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그 기자는 C 차장의 혹독한 훈련 방식에 고통을 겪었다. 밖에서 취재를 열심히 해서 고심 끝에 기사 원고를 제출하면, 그 차장은 “이 따위 글이 무슨 기사냐”라며 원고(당시엔 50자, 또는 200자 원고지에 기사를 썼다)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연합뉴스 기사로 지면을 메우곤 했다. 그러면서 경쟁지 신문에 게재된 같은 아이템 기사를 ‘북-’ 찢어 주면서 집에 가서 “백 번씩 베껴 써와”라고 했다. 몇 차례나 그만둘 생각을 했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하지만 오기가 생겨 그 차장이 시키는 것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러기를 6개월. C 차장은 “이제 됐다”면서 훈련 종료를 선언했다. 그 기자가 그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 경제 기자로 30여 년 간 이름을 날린 것은 물론이다. 이 선배 기자가 필자에게 직접 들려준 실화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 나니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보다 훨씬 순발력 있게, 품질 좋은 기사를 생산할 자신이 생기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방식을 원용해 필자가 훈련시킨 몇몇 학생은 지금 유력 언론사에서 민완 기자로 맹활약 중이다. 그들 역시 필자의 혹독한 훈련 방식을 묵묵히 따라왔기에 그런 활약이 가능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한자로 배울 습(習)자는 ‘깃 우(羽)’자와 ‘일백 백(百)’이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 날기 위해서는 백 번 정도의 날개짓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든 그만큼의 반복 연습과 자기 계발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다음 학기 새로 맞이하게될 학생들에게는 보다 야무지게 글쓰기 기사쓰기 훈련을 시켜야겠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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