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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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 부산광역시 김다빈
  • 승인 2014.03.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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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라며 혼란스럽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폴리아모리(polyamory)’란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모르(amor)’의 변형태인 ‘아모리(amory)’의 합성어로, 서로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多者間) 사랑, 즉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정확하게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몰라 친구의 고민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책과 인터넷, 영화 등을 통해 ‘폴리아모리(polyamory)’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폴리아모리(polyamory)’의 뜻만 보고 떠올렸던 단어는 ‘어장관리’였다. ‘어장관리’는 실제로 사귀지는 않지만 마치 사귈 것처럼 친한 척하면서 자신 주변의 이성들을 동시에 만나는 행태를 의미하는 신종 연애 용어이다. 나는 동시에 둘 이상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장관리라는 용어가 별로 좋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영화는 자유연애를 지향하는 여성과 평범한 남성이 출연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둘은 사랑하게 되어 연애를 시작한다. 주인공 여자는 남자 주인공과 사귀고 있었지만,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난다. 남자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에 둘만의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이때, 그가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그녀를 막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결혼하면 그녀를 자신의 옆에만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오랜 시간 설득한 끝에, 둘은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된다.

둘은 그렇게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그리고 그에게 그 사람과도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남자는 두 집 살림 하겠다는 부인에게 “사랑이 나눠지니?”라는 질문한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를 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게 아닐까?”라고 대답한다. 이와 같은 그녀의 대답은 일처다부제가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영국, 미국, 서구에서는 동거, 내연 관계 등의 관습혼이 점점 사회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일처다부제를 일각에서는 조용히 묻어두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작가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을 들 수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에 반하여 둘만의 계약 결혼을 한다. 이들의 계약 결혼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에 행해졌다. 둘의 계약은 마치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처다부제가 인정되지 않는 것처럼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아주 파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내용은 서로가 다른 사랑을 해도 되며, 거짓말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성(性) 전문가 카렌 스튜어트 박사는 “폴리아모리스트가 성생활이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들은 오랫동안 지속해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오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가치관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질투’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인해 이런 관계는 빨리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폴리아모리스트들은 모임을 만들어 그 안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단다. 최근 독일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거부하는 폴리아모리 ‘커밍아웃’이 행해지고 있고, 미국에서는 부인·애인과 함께 사는 ‘폴리아모리 가족’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한 사람이 죽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노쇠한 사르트르가 병실에 누워 임종을 맞을 때,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여인은 사르트르의 수많은 여인이 아닌 보부아르 단 한 명이었다고 한다. 나는 사실 일부일처제라는 관습 속에 살아온 사람이라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도 진심이었고 깊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작게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전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을 어찌 완전히 이해하겠는가.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법을 어기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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