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대학 캠퍼스에 '5학년 1학기생'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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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대학 캠퍼스에 '5학년 1학기생' 넘쳐난다
  • 취재기자 조나리
  • 승인 2014.03.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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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 위해 졸업유예... 소정의 등록금 내고 토익 등 열공

3월 둘째 주, 전국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개강했다. 고요히 얼어있던 대학가에는 새학기를 맞은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14학번 새내기들은 지도를 찾아가며 캠퍼스를 누볐고, 2, 3, 4학년 재학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 여기저기 반가운 인사말을 나눴다. 그 가운데 묵묵히 도서관, 독서실을 꿰차고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4학년을 넘어 5학년 1학기생으로 불리는 소위 '졸업유예생'들이다.

졸업유예제란 자격증 획득토익점수 향상 등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연장하는 제도다. 소정의 졸업학정을 다 마치고도 재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의 장점으로 꼽힌다. 졸업유예생들은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1과목 이상을 수강해야 하며, 그에 따른 수강료는 학점 당 3 5000원에서 대학 등록금의 1/6까지학교마다 다양하다

부산 동아대 김민영(가명, 24) 씨는 4학년을 마치고 졸업유예생으로 새학기를 맞았다민영 씨의 삶은 매우 단조롭다. 그의 본격적인 하루는 오전 10시 토익학원에서 시작된다. 민영 씨는 3 15일과 30일에 있는 토익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토익 공부에 열심이다. 중국어 전공인 민영 씨는 22일 중국어 스피킹 시험도 칠 예정이다. 이번 달에 치는 시험만 3개라 민영 씨는 어학 공부를 하는 데 하루 시간을 다 보낸다. 1시간의 토익학원 수업 후, 민영 씨의 발걸음은 집 근처 독서실로 향한다.

다른 대학의 졸업유예생 이재호(가명, 26) 씨의 일과도 비슷하다. 이 씨는 전공 관련 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지만 출석부도 없고, 홀로 공부를 하다 없다 보니 마음이 해이해질 때가 종종 있다.

졸업이냐, 졸업유예냐.’ 선택의 기로 앞에 졸업유예 쪽으로 기우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졸업유예 신청자는 부산대가 697, 부경대가 817, 동아대가 1,030, 경성대가 108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부산대 전체 졸업생 2,880명 중 30% 가량인 888명이 졸업유예를 신청했다. 다른 학교의 경우, 예민한 사안이라 숫자를 밝힐 수 없다며 공개에 불응했지만 매년 졸업유예생 수가 늘고 있다고 담당자들은 전했다.

학생들이 졸업유예를 신청하는 이유는 더 배우고자 하는 학구열 때문이 아니므로 대부분의 졸업유예생들은 최소 학적 유지 학점인 3학점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졸업유예생 김민영 씨는 그마저 듣는 3학점짜리 수업이 패스 학점 수업이라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의를 틀어놓고 다른 공부를 한다.

제대로 듣지도 않는 수업에 학생들이 형식적인 돈을 내면서까지 졸업을 미루는 이유는 계속 학생 신분이 유지되는 데 있다. 졸업생 신분보다 재학생 신분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이 더 많고, 기업 인턴의 경우에도 그 대상이 재학생들에게만 한정되는 경우가 있어, 졸업유예생이 졸업생보다 취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부산 소재 대학교에서 졸업을 유예하고 서울에서 취업준비생 교육을 받고 있는 김모(26) 씨는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못 하면 기업에서 싫어한다고 들었다. 졸업 후 무엇 했냐는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럽다 보니 졸업유예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재학생들처럼 학교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각 대학마다 있는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졸업유예의 큰 이점이다. 이재호 씨는 졸업을 앞두고 당장 취업할 생각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교수님께서 먼저 졸업 유예를 권유하셨다. 과에서 주는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대학들이 각종 교육부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미취업 졸업예정자들에게 졸업유예를 권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취업 졸업예정자들이 졸업유예제를 통해 재학생 신분이 유지되면 통계상 미취업자들이 졸업자수에서 제외돼  해당 대학 취업률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졸업유예가 취업 자체에 도움이 안된다는 반응도 있다. ‘졸업=백수가 되는 불투명한 취업 시장에서, 학교에 속해 있다는 심리적 안정과 소속감을 느끼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청년일자리센터의 박미경 수석 매니저는 기업에서 졸업 예정자를 선호하는 것은 맞지만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기업에서는 입학에서 졸업까지의 총 기간을 보기 때문에 재학생이라고 취업에 마냥 유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졸업 유예생들이 토익 공부만 하는 등 목적 없는 스펙을 쌓고 있다. 졸업을 유예한다면 학교 프로그램을 참여하거나 분명히 얻는 게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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