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황무지 부산에 오페라 대중화 꿈 영근다
상태바
문화 황무지 부산에 오페라 대중화 꿈 영근다
  • 취재기자 조소영
  • 승인 2014.03.05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돈키오테' 아지무스 오페라단 손욱 대표의 열정과 패기

‘이태리 오페라’란 말이 있다. 일생 동안 30여 편의 화려하고 웅장한 오페라를 쓴 베르디가 이태리 사람이기에 이태리 오페라는 전 세계 오페라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코리안 오페라’는 없다. 한 편에 억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오페라를 국내에서는 자주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급 클래식 문화 오페라를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좀 더 대중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문화 황무지 부산에서 오페라 대중화를 외치는 ‘돈키호테’는 손욱(59)이다. 손욱의 ‘부산 오페라’ 꿈은 지방에서 흔치 않은 오페라 전문 아지무스 오페라단에 의해 영글고 있다.

▲ 아지무스 오페라단 손욱 단장(사진제공: 손욱 단장)

아지무스 오페라단의 사무실은 부산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북구 덕천동 한 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해 있다. 아지무스는 이탈리아어 ‘아소치아지알레 지오바닐레 무지칼레(Associaziale Giovanile Musicale)’의 줄인 말로, 풀이하면 ‘젊은 음악가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아지무스 오페라단이 이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손욱의 영원히 샘솟는 젊음 같은 음악을 향한 끝없는 열정과 패기를 상징한다.

손욱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0년 동아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뒤늦게 음악의 재미를 알게 되어 1995년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동아대학교 음악학과 3학년에 학사편입해서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음악이 너무 좋았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의 길을 장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손욱은 음악인으로 살기로 일생일대의 비장한 결심을 하고 음악대학과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1999년 이태리 유학을 감행한다. 2년을 더 이태리에서 목을 가다듬은 손욱은 2000년 이탈리아에서 귀국하고 약 2년간 동아대, 고신대 등에 외래교수로 출강했다. 그가 여러 대학을 보따리 강의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대한민국에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수많은 음악가들이 설 무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젊고 유능한 음악가들을 찾지 않는 부산의 낮은 문화 수준도 손욱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무언가 부조리하다는 느낌이 그의 목을 누르고 있을 때, 그의 해결책은 음악 무대를 본인이 직접 만들어 부산 사람들에게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게 2002년 창단된 아지뮤스 오페라단이었다.

▲ 아지무스 오페라단 사무실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시작은 창대했으나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아지무스 오페라단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부산 지역 22명의 젊은 음악가들이 회원으로 모여 출발했지만, 곧 재정과 주위 무관심이라는 풍토에 부딪혔다. 그러나 회원들의 주머닛돈을 털어 아지무스는 창단 공연으로 오페라 <돈 죠반니>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 한 편에 적게는 수천만 원대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것이 오페라지만 단원들이 개런티 없이 참여해주고 연출가도 무료로 재능기부를 해 준 덕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감격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그러나 부산 시민들은 한 번 보는데 몇 만원이 드는 오페라 공연을 외면했다. 손욱은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무대에 올라가 봐야 텅 빈 객석뿐이었고, 수익도 나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기만 했죠.”

아지무스는 어차피 수익을 기대하지 못할 바에는 의미 있는 음악회를 열자고 결의하게 된다. 그 결과가 2003년 백혈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였다. 역시 노개런티와 재능기부로 이뤄진 희생과 눈물의 공연이 생각지도 못한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아지무스는 개런티는 고사하고 회원들이 몸소 뛰어다니며 티켓을 판매해 얻은 공연수익금 전액을 백혈병소아암협회 부산지회에 기증했다. 음악의 힘으로 작은 생명을 살려보자는 취지의 이 일이 있은 후, 아지무스는 화승그룹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손욱은 화승그룹의 고영립 회장을 만났다. 고 회장으로부터 손욱은 “형편이 어려운 음악가들이 공연 수입으로 백혈병 어린이를 후원한 것을 보고 감사한 마음에서 앞으로 아지무스를 돕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고 회장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부산지회 후원회장이었다. 손욱은 “고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아지무스는 벌써 넘어졌죠. 오늘까지 고 회장님은 우리 아지무스의 든든한 후원자십니다”라고 말했다.

손욱의 아지무스는 재정적 후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여 2010년 부산시로부터 전문예술법인으로 승인받게 됐다.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전문예술법인으로 인정받은 오페라단은 전국에 31개가 있고, 그 중 부산에는 세 개가 있다. 전문예술법인은 국가가 인정하는 지정 기부금 단체가 되어 이곳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기부할 시 기부자는 세금을 감면받게 된다. 아지무스는 그때부터 기업의 후원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지무스는 안정된 재정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돈 죠반니>,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등 정기적으로 연 1회 오페라를 공연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갈라 콘서트 같은 미니 오페라는 물론, 시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음악회 등 매년 60회 이상의 크고 작은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많은 인원과 1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오페라 공연은 손해를 무릅쓰고 연 1회 무대에 올려왔다. 손욱은 “아지무스의 존재 이유가 질 높은 공연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오페라를 포기할 수 없었죠”라고 말했다. 아지무스는 학교, 직장, 군대를 방문해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마다 않고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제는 부산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

▲ 아지무스 오페라단의 이번 겨울 공연 포스터(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현재의 아지무스 오페라단은 제법 규모가 커졌다. 아지무스는 손욱 단장을 비롯한 7명의 상임단원과 필요시 공연에 투입되는 35명의 비상임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법인이사 6명, 자문위원 3명이 아지무스를 돕고 있다. 아지무스는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 공연 수입, 후원 협찬금 등 연 약 2억 원의 수익으로 운영된다. 보다 많은 음악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신입 단원 오디션도 실시한다.

무엇보다도 아지무스의 장기는 미니 오페라다. 미니 오페라는 한 번 공연에 두세 시간이 소요되는 오페라를 각색해 한 시간 내외로 축약한 것으로, 이는 손욱이 고안한 오페라 대중화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손욱은 “요즘 오페라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낯섦과 지루함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세 시간 동안 외국어로 이어지는 공연을 쉽게 보려 하지 않죠.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음악에 집중돼 있어 들을 거리는 풍부하지만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죠”라고 말했다.

손욱은 즉각 미니 오페라 준비에 착수했다. 긴 오페라를 짧게 각색하고, 외국어로 진행돼 이해가 어렵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팜플렛에 대본을 우리말로 적거나 공연 중 자막을 띄워주기도 했다. 어린 관객들 앞에서는 한국어로 오페라 곡을 부르기도 했다.

많은 어려움과 사람들의 무관심을 넘어, 아지무스가 창립된 지도 13년이 흘렀다. 그간 다양한 공연을 펼친 손욱은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의 계획에 더 설렌다. 아지무스는 올해 해외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손욱은 “올해 아지무스의 목표는 국제 교류를 통해 해외에도 발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세계에서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손욱의 야심처럼 아지무스는 더 커질 것이다. 아지무스는 부산을 감동시켰으니, 세계인들도 그들의 음악에 감동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