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현’과 ‘혼밥’ 논란 물리친 ‘따바오’...문 대통령 방중 성과 공방전, 지방선거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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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과 ‘혼밥’ 논란 물리친 ‘따바오’...문 대통령 방중 성과 공방전, 지방선거 전초전?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7.12.18 21: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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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중국 권력 체제의 한 단면을 어렴풋하게나마 엿본 것은 20년 전이었다. 첫 민선시장이던 문정수 부산시장이 지역의 상공인들과 함께 자매도시인 상하이 시를 방문할 당시 취재기자로 동행했다. 상하이에서 이틀째 일정을 보내던 날이었다. 호텔 숙소에서 로비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호텔방에 다시 들어가 서툰 영어로 프론트에 전화해 상황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기다리라”는 대답 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복도로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봤지만 1층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20분이나 지났을까. 그제서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가 호텔을 방문하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이 전면 중단됐다는 것이다. 당시 사실 여부를 확인을 할 재간은 없었지만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중국도 많이 변했겠지만, 근본적인 사고는 바뀌지 않은 듯하다. 이를테면 누가 뭐라 해도 공산당 지배 체제나 당정 관계에서 당(黨) 우선주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활용하는 자유시장 경제는 인민을 먹여 살리려고 도입했지만 이 또한 당이 허용하는 울타리 안에서의 시스템일 따름이다. 우리와 같은 시장경제로 여기면 오산이다. ‘사드 보복’이란 당의 한 마디가 민간 부문에 일사천리로 전달되고 전광석화처럼 실행되는 과정을 우리 국민들도 목격한 바다. 이웃이지만 문화가 다른 만큼 사귀기도 더 어려운 나라가 바로 중국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우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성과를 두고 국내에서 벌어진 논란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짚어보는 냉정하고 치밀한 분석은 찾기 어렵다.

어느 날 덜컥 사드를 들여와 중국의 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우리로서는 어떻게든 이번에 관계를 회복하는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외교는 그 나라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 또한 이번 방중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어야 얼어붙은 관계가 풀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중국에서 유학했던 어느 후배를 만났더니 “중국인 친구들이 ‘이번에 문 대통령의 ‘따바오’에 감동했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내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잘 남겨두지 않고 포장해서 가는데 이게 ‘따바오(打包)’다. 문 대통령이 중국 서민식당에서 중국 만두 ‘빠오즈(包子)’를 시켜 먹고는 남은 몇 개를 포장해간 것에 대해 중국인들의 호평이 잇따랐다는 것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식 만두 빠오즈(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국내에서의 논란은 궤를 달리한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홀대’와 ‘알현’ 같은 프레임을 내세워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중국인들이 감동했다는 ‘따바오’는 ‘혼밥’으로 낙인찍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부부 동반해서 문화 공연까지 관람한 것을 들어 보기 드문 ‘환대’라고 강조했지만, 야당은 ‘홀대’로 몰아갔다. ‘알현’ 논란은 제1야당 대표가 아베 일본총리 앞에서 고개를 숙인 사진 한 장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도 했다. 역시 우리나라 외교의 가장 큰 난관은 당사국이 아니라 국내에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방중행사 때 청와대 사진기자가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한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이유야 어쨌든 중국 영토에서 취재 중인 한국의 기자가 폭행당한 사건인 만큼 중국 당국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 자유’라는 낯선 용어 앞에서 중국이 과도하게 대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언론 또한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에서 우리의 취재 방식을 고수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은 우리 또한 이 사건에 몰입한 나머지 정작 한중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드 보복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아직도 미국과 일본만 가까이하면 중국과의 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는 무책임한 주장이 먹혀드는 곳이 대한민국 정치권이다.

어쨌거나 이번 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은 두 가지를 예고하고 있다. 하나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또 하나는 내년 6월 지방선거의 치열함이 이번 공방전처럼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공방전의 구도가 눈길을 끈다. 야당과 메이저 언론이 공격을 했다면, SNS를 중심으로 뭉친 시민들이 반격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도 이런 구도로 진행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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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2017-12-18 23:17:36
이 시국에 꼭 필요한 기사군요. 감동적이네요. 이처문 편집위원님의 다른 글도 많이 읽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