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정으로 마음 정까지 싹 띄우는 부산 서면 ‘청개구리맘밥’ / 손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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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정으로 마음 정까지 싹 띄우는 부산 서면 ‘청개구리맘밥’ / 손은주 기자
  • 취재기자 손은주
  • 승인 2017.12.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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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좋아하는 짜장밥 참치주먹밥 무료 급식 봉사 경험 살려

해가 진 부산의 서면거리는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 찼다. 부산 제일의 번화가라 내놓을 만큼, 이곳에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번잡한 서면 중심을 벗어나 ‘전포 카페거리’ 쪽으로 올라가면, 환한 불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파란색 천막이 있다. 그 천막 안으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간다. “우와 오늘은 짜장밥이다!” 이곳은 오직 청소년들만 손님으로 받는, 청소년 무료 심야식당 ‘청개구리맘밥’이다.

부산의 번화가 서면 거리에서 청소년 무료 심야식당인 ‘청개구리맘밥’이 운영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오후 4시, 청개구리맘밥을 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부산가족상담센터 안선희(53) 소장은 지난 2015년 3월 26일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청개구리맘밥 문을 열었다. 3년 가까이 이어온 청개구리맘밥은 안 소장과 그녀의 지인, 동료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이날도 부산진구 양정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그녀의 친한 언니 구부임 씨의 도움으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이 시간이면 한식당 주방은 구 씨와 안 소장이 차지했다. 구 씨는 큰 냄비를 들고 잘게 자른 각종 채소를 볶기 시작했다. 메뉴를 슬쩍 물어봤더니,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짜장밥이란다.

오후 5시 30분,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던 30인분의 짜장 소스는 안 소장의 차에 실렸다. 차로 서면까지 이동하는 동안 안 소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그런데 왜 하필 목요일이었을까. 기자는 은근슬쩍 물어봤다. 그리고 안 씨는 말했다. “일주일 중에 목요일이 제일 가운데에 있잖아요. 또, 주말을 앞두고 학생들이 제일 지쳐있을 때가 목요일 아니겠어요?” 이런 안 소장의 마음을 옛날에는 알 턱이 없었나 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급식이라는 게 낯설었던 탓에, 학생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3년 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자, 요즘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30인분 음식이 모자랄 때가 있다고 한다. 메뉴는 짜장밥, 참치주먹밥, 카레, 닭볶음 등 매주 다른 메뉴로 한 달 치를 미리 정해둔다.

오후 5시 40분, 서면 놀이 마루 정문 앞에 도착한 안 소장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둘러 밥을 짓는다. 밥 냄새가 폴폴 풍길 때면, 어느새 천막도 모양새를 갖춰갔다. 안 소장의 무료 급식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그녀는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이후에, 그녀는 청소년 무료 급식소 운영을 꿈꿨다. 그녀가 부산가족상담센터에서 청소년 상담을 많이 해왔던 이유가 컸다. 안 씨는 “상담하면서 느낀 거지만, 그냥 애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었다”며 “지금 현대 사회에는 힘든 청소년이 많다.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던가, 혹은 소년원을 다녀왔다던가...”라며 말을 흐렸다.

오후 6시 30분,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다. 이곳에는 안 소장을 비롯해 4명 정도의 청개구리맘들이 있다. 그리고 3명의 고등학생 봉사자도 함께 했다. 여기서 청개구리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밥을 먹으러 오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 청소년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갈팡질팡하는 딱 그 나이, 그 때의 고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를 가기 싫어하고, 친구를 사귀면서 생기는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청개구리맘들은 오로지 들어주면서 스스로 잘 풀어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하루는 대학 입시를 압둔 한 학생에게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청개구리맘밥에서는 사소하지만 청소년들의 진짜 고민들을 들어주고 있었다.

오후 7시, 드디어 청개구리맘밥이 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온다. 학원 마친 학생들도 허기진 배를 채우러 자리를 잡아 앉는다. 김국일(17, 부산 사상구) 군은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밥도 너무 맛있어서 매주 찾아온다”며 웃어보였다. 김국일 학생은 짜장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컵라면 한 컵도 깨끗이 비워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의 밥심을 보여줬다. 청개구리맘밥에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방문한다. 가출 청소년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집에 잘 안 가고 학교를 잘 안 다니는 청소년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안 소장은 “배가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 순간부터 무장해제된다”며 “그래서 밥을 먹으면, 이 순간 그리고 이 공간이 상담 장소가 된다”고 말했다.

3개뿐인 테이블로 공간이 다소 협소하지만, ‘청개구리맘밥’을 찾은 사람들은 이야기꽃을 넓게 피우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오후 8시, 남부경찰서 여성 청소년 담당 임정빈(31) 순경도 청개구리맘들과 함께 했다. 임 순경은 서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이곳에 온 청소년들에게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밖에서는 비속어를 많이 쓰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것. 그만큼 청소년들에게도 이곳은 특별한 장소가 됐다. 그만큼 안 소장도 청소년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소통의 장을 펼치려 노력한다. 안 씨는 “청소년들이 밖으로 겉도는 데에는 분명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오후 9시 30분, 청개구리맘밥이 문 닫을 시간이다. 이날 봉사를 한 최지환(17, 부산남고등학교) 군에게는 매주 목요일이 특별한 날이다. “원래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교우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상담 선생님 추천으로 봉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성격이 바뀌어서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됐어요!” 같이 봉사한 정정훈(17, 기장고등학교) 군도 봉사에 참여한 계기가 특별하다. 정정훈 군은 “오늘 처음 봉사하러 왔는데, 학교에서 징계 받고 개과천선하러 왔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청개구리맘밥은 부산을 비롯해 포항과 부천에서도 열리고 있다. 엄마의 마음이 모여 가능했던 청개구리맘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청소년을 위한 심야식당은 계속 운영된다. 안 소장은 이 공간을 확장해볼 계획도 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청소년들을 맞이하기 위함이 큰 이유다. 그래서 서면 인근에 식당이나 급식차로 청개구리맘밥을 새로 오픈해 보는 게 그녀의 큰 소망이다. 그녀의 바람이 이뤄질 때까지, 청개구리맘들은 다음 주 목요일도 서면 거리의 청개구리맘밥에서 학생들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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