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0) 씨는 얼마 전 친언니의 결혼식에서 이상한 여성을 봤다. 온 결혼식장을 누비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 언니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형부의 지인인 줄 알았는데, 형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사진 업체 관계자도 아니었다. 그 여성은 예식 후 피로연에서도, 폐백에서도 손에 핸드폰을 쥔 채 계속 따라다녔다.
이어 뷔페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여성은 음식, 뷔페 조명, 하객들이 앉아 있는 식탁까지 주야장천 사진을 찍어댔다. 하객들 사이에서 불편하다는 항의가 이어졌다. 이쯤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 싶어 그를 붙잡아 추궁하자, 나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여기서 결혼하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그의 휴대폰에서는 다른 사람의 결혼식 사진도 한 뭉텅이 발견됐다.
예식장 사전 답사를 위해 일면식도 없는 개인의 결혼식장에 무단으로 침입해 사진을 찍는 일명 ‘결혼식 파파라치’들이 극성이다. 본인의 결혼 당일 날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를 걱정해 이같이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이니 크게 신경 쓸 것도 없고, 분위기를 살핀다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니 결혼식에는 방해가 되든지 말든지 안하무인식의 태도를 보인다는 게 피해자들의 중론.
조용히 살피고 가면 문제가 없지만, 상당수 파파라치들은 결혼식에 방해가 될 정도로 민폐를 끼친다는 게 문제다. 특히 결혼식 스냅 사진을 촬영할 때 이들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한다.
올해 초 결혼식을 올린 이모(31) 씨도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사진 촬영에 홀로 심취한 이상한 여성을 만났다. 왠지 찜찜해 친구에게 그 여성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신랑 신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그 여성의 휴대폰에 있던 사진은 삭제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혼식 한 달 후 받아든 스냅 사진에 온통 그 여성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부터 퇴장, 폐백하는 모습을 담은 모든 사진에 그 여성이 찍혀있었다.
이 씨는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든 스냅 사진에 그 여자가 들어있다. 화촉 점화하는 장면에도 카메라 든 옆 모습이 찍혀 있는데 진짜 소름 끼쳤다”며 “누군지 모르니 항의할 수도 없고 결혼사진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웨딩업체가 예식장을 홍보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웨딩업체에게 원고료를 받은 파워블로거들이 ‘자연스럽게’ 예식장을 소개하기 위해 몰래 사진을 찍는다는 것.
8일 웨딩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웨딩업체에서는 블로거를 고용해 결혼식장, 결혼 준비 서비스 업체 등에 대한 광고성 후기를 게재한다고 한다. 고용된 블로거들에게는 ‘최대한 자연스럽게’라는 미션이 떨어진다. 광고성 후기인 것처럼 보이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업체들이 하도 많아서 서로 어떻게 광고하면 효과적일지를 머리 싸매고 고민한다”며 “광고처럼 보이면 신뢰가 떨어지니 아마추어 블로거들을 고용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몰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같은 행위는 초상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찍었더라도 그 사진을 사용하면 초상권 침해가 된다. 또 다른 사람의 신상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글을 당사자 동의 없이 게재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에 의한 형사처분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나 이름을 도용한 경우처럼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힌 게 아니라면 사후 신고하기도 쉽지 않다. 블로그에 올린 경우에도 신랑 신부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뒤 올리면 마땅한 법적 대응 방법이 없다고 한다. 사진이 많이 유포된 경우, 최초 게시자를 찾기도 어렵다. 아직까지는 조심하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모 변호사는 “일반인의 초상권은 유명 연예인들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증명보다 피해를 따져 묻는 게 까다로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얼마든지 청구 가능하다. 모자이크를 했지만 그 사람의 지인들이 알아볼 수 있는 정도면 초상권 침해라고 판시한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