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시선 이기고 국가대표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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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시선 이기고 국가대표로 ‘우뚝’
  • 취재기자 이현경
  • 승인 2014.02.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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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이동구 씨의 인생 역전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을 때마다, 다리가 절룩거린다. 그러나 그는 걷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다. 자신의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하얗고 큰 눈으로 수줍은 미소를 띠며, 보는 사람마다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젊은이. 그는 바로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이동구(35) 선수다.

이동구 씨는 장애인 수영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파다. 2010년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2011년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4관왕, 2012년 전국 장애인체육대회에서 자유형 50m, 100m, 200m 등을 포함 4관왕을 차지했다.

▲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이동구 선수(사진: 김수연 취재기자)

그는 정신지체와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났다. 어머니 심정화(55) 씨는 이중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동구 씨를 고아원에 맡기라는 주위의 권유도 받았단다. 심 씨는 한 때 키우기가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내 배아파 낳은 아이를 어떻게든 제대로 키우고 싶어 다시금 생각을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으로 특수학교에 다니던 그는 6학년 때 재활치료를 위해 담임선생님을 따라서 스포츠센터에서 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스포츠센터에서 처음 동구 씨를 바라보던 시선은 좋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 몸으로 수영을 어째하겠어?”라고 말하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안 될 것이라는 생각과 시선이 그에게 따갑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인식을 천천히 바꿔나갔다. 그는 스포츠센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연습도 열심히 했다. 이 씨는 “차차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시선이 달라졌다. 나중에는 내 몸의 장애도 별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재미를 들이기 시작한 수영이 그가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전기를 맞게 됐다. 중학교 때 어떤 수영 경기에 우연히 출전했다가 자유형 50m와 100m에서 덜컥 입상하게 됐다. 이 씨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수영 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이동구 씨는 “수영할 때 큰 생각은 없었다. 그냥 막 한 거였다. 그러나 다들 잘한다고 칭찬하고, 그러자 나도 겉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 끌어올라 수영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얀 피부에 큰 눈을 가진 그의 얼굴은 35세답지 않게 한없이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다. 동구 씨는 자신의 체격에 비해 많이 야윈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가 걸을 때마다 쩔뚝이는 이유는 바로 그의 야윈 다리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체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씨가 수영장 출발대에 서면 어느 일반 수영선수보다 늠름했다.

동구 씨 몸에서 언제나 락스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락스 냄새가 피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물속에 오래 머물며 연습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에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총 6시간 정도 수영 연습을 한다. 수영은 동구 씨에게 생활의 한 부분이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 그는 몸을 쓰고 많이 움직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뭍보다 물 속이 더 편할 정도가 됐다. 수영은 그의 일상생활에서까지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이동구 씨가 소속된 부산장애인실업팀 김강인 감독은 동구 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동구는 우리 팀 최고 실력을 갖춘 선수다. 나도 동구로부터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 수영 연습을 위해 출발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이동구(맨왼쪽) 씨(사진: 김수연 취재기자).

자랑스런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선수인 동구 씨에게도 수영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게 그에게 장애인 지도 경험이 없는 지도자가 배정된 것. 장애인 지도 경험이 없는 일반 감독들은 대개 몸이 불편한 선수들에게 버겁고 무리한 정도로 연습을 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당시 지도자는 과도한 훈련과 함께 나라를 대표해서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감을 강조해서, 그의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힘든 훈련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가 다시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구 씨 어머니의 격려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동구 씨를 지켜주었던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항상 수영장에 출퇴근해야 했던 그 때문에, 없던 운전면허를 일부러 따서 어머니가 동구 씨의 발이 되어주었다. 이 씨는 “지금까지 어머니는 나의 최고의 멘토다. 어머니가 계셔서 내가 수영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가 된 동구 씨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 하는 이는 물론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 심정화 씨는 "몸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더욱 멋진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동구가 지금 자리에서 너무 멋있는 선수로 잘하고 있어서 힘들었던 옛날 생각을 하며 너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심 씨는 "동구는 나에게 최고의 존재다. 아빠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동구는 남편보다 나에게 더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35세 동구 씨에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자신과 같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지도자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오랜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 한계가 온 것 같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은퇴 후 바로 공부를 시작해서 장애인들의 좋은 수영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꿈을 전했다.

자신이 수영으로 건강을 지키고 생활의 활력을 찾았듯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수영 지도자 꿈을 간직하고 장애인 수영 영웅 이동구 씨는 또다시 연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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