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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롤링과 쪽지예산, 그리고 카톡예산 ... 결국 올해도 국회에서 세금 도둑들이 설쳤다/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로그롤링(logrolling)’이라는 스포츠가 있다. 물에 띄워 놓은 통나무 양쪽 끝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균형을 잡고 있는 가운데, 각자 두발로 통나무를 굴려 상대방을 물속에 빠뜨리게 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상대의 균형을 빼앗는 방법으로 통나무의 회전을 갑자기 멈추게 하거나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돌리거나 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여러 주와 캐나다 동부 지역 벌목공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스포츠였다. 봄철 벌채한 목재를 뗏목으로 만들어 강물에 띄워 보낸 것이 기원이다. 그후 서쪽의 오대호 연안을 거쳐 태평양 북서부 지역까지 퍼졌다. 1898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 박람회 때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로그롤링’은 정치학 용어이기도 하다. 벌목공들이 벌채한 나무를 서로 보조를 맞춰 굴려가며 목적지까지 이동하던 것에서 유래되어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 담합을 통해 대안(alternative)에 투표하는 정치 거래를 말한다. 공식 용어로는 투표거래(vote trade)라 한다. 로그롤링은 명시적 로그롤링, 암묵적 로그롤링으로 구분된다. ‘명시적’은 별개의 입법안에 대해 서로 투표를 교환하는 것이다. 한 의원, 또는 한 정당이 A 법안의 입법을 추진할 때, 다른 의원, 또는 다른 정당이 “A 법안에 찬성해 줄테니 내가(우리가) 추진하는 B 법안에 대해서도 찬성해 달라”고 요청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암묵적 로그롤링은 서로 다른 집단들이 각자 제안한 내용을 하나의 꾸러미로 묶어 투표하는 것이다.

미국의 위스콘신 주 한 호수에서 열린 여성 로그롤링 대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정치적 로그롤링은 거의가 물밑에서 이뤄져 과정이 불투명하고 내용도 음습하다. 의원 사이, 또는 정당간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 대의(大義)가 외면당하고 국익이 훼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쪽지예산’을 대표적인 로그롤링으로 꼽는다. 정당의 영향력 있는 자들이 심의위원들의 예산 심의 과정 막판에 쪽지를 내려 보내 자신의 지역구에 유리한 예산을 따내는 것을 말한다. 정부 예산이나 법안이 특정 지역구나 집단에게 유리한 쪽으로 배분되면 국가 전체 이익은 당연히 훼손된다. 국민만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한국의 로그롤링, 쪽지예산은 또 현금이나 특혜를 통한 매수 등 부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5일 밤늦게 가까스로 통과된 2018년도 예산에서도 국회의 ‘쪽지’ 관행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여야의원들은 기초연금 및 아동수당 지급 시기가 늦춰지면서 발생한 감액 예산을 지역 SOC예산으로 돌렸다. 예산안을 분석해보면, 예산 결산 특별위원을 비롯해 여야 지도부 및 실세 의원들이 협상 막판에 엄청난 규모의 지역구 예산을 때낸 것으로 분석됐다. 우선 예결위 간사들 지역구 예산이 대폭 늘었다. 위원장 백재현(경기 광명갑) 의원은 광명 아동보호 전문기관 신규설치 예산 4억 4000여 만 원, 광명 전수교육관 설립 예산 1억 원을 증액했다. 경기도 광명을 관통하는 목감천 정비를 위해 26억 원도 새로 편성됐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 윤후덕(경기 파주갑) 의원은 정부안에 없던 파주 출판 단지 세계문화클러터 육성 예산 7억 원을 비롯, 약 20억 원의 지역 예산을 챙겼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예결위 간사 황주홍(고흥, 보성, 장흥, 강진) 의원은 특히 자신의 지역구 예산 따기에 유별난 욕심을 나타냈다. 강진천 하천 정비 예산 5억 원, 고흥~봉래 국도건설사업 예산 30억 원 등 무려 100억 원이 넘는 지역 예산을 챙겼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늘리기 정책을 구실삼아 이번 예산안에 반대했던 한국당 역시 겉으로는 표결에 참석조차 하지 않는 등 반발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당 예결위 간사 김도읍(부산 북구 강서을) 의원은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 진입도로 예산으로 24억 원을 확보했고,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내 석동~소사간 도로 개설 사업 예산도 정부안보다 43억 원을 더 늘렸다.

여야 지도부 실세 의원들의 지역 예산 챙기기도 종래에 비해 강도가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극성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이춘석 사무총장 지역구인 전북 익산갑에서는 정부안에 없던 익산 엔지니어링 설계지원센터 예산이 3억 원 새롭게 편성됐고, 익산시 방음벽 예산 16억 원, 익산~대야 복선전철 예산 15억 원이 각각 증액됐다.

한국당 정우택(충북 청주시 상당구)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청주에서 추진하는 2018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사업 예산 18억 원을 새로 챙겼고 청주시 청주, 미원 하수관로 정비사업 예산에서 정부안보다 5억 원을 더 늘렸다. 정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국민의당이 합심해 예산안을 심야 통과시킨데 대해 비장한 표정으로 유감을 표명했지만 속으로는 회심의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부터)가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우 원내대표 의원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회동을 마친 뒤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한국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의 지역구인 경북 안동에도 엄청난 예산 증액이 이뤄졌다. 안동대 도시가스 인입배관 설치 예산 15억 원, 안동 민속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 예산으로 3억 원을 새로 확보했으며, 경북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예산도 정부안보다 36억 원을 더 늘렸다. 이뿐 아니다. 김 의장은 포항 안동 일반국도 건설 사업비와 안동 영덕 일반국도 건설 사업비도 정부안보다 15억 원, 60억 원을 각각 따로 챙겼다.

428조 8339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은 당초 정부안보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서 1조 3000억 원 가량 늘어났다. 정부가 올해 예산 대비 20% 줄여 잡았던 SOC 예산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결국 예년 수준인 19조 원으로 책정된 것이다. 이 새로 추가된 SOC 예산 1조 3000억 원은 모두 쪽지예산으로 보는 게 맞다. 그뿐 아니라 SOC 예산은 아니지만 다른 항목에 숨은 거의 비슷한 액수의 예산이 의원들의 민원과 쪽지에 의해 새롭게 편성됐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벌어지는 이같은 쪽지예산, 카톡예산(요즘은 쪽지보다 카톡으로 압력을 넣는 경우가 많아 ‘카톡예산’으로 불린다) 관행은 적폐 중의 적폐로 지적된다. 행정부에 의해 편성된 예산 분배가 왜곡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와 낭비가 초래되기 마련이다.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 밀실에서 비공개로 협상하며 날림 심사를 거듭하는 국회의원들의 이같은 적폐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히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이다. 나라 예산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는 국회의원들의 이같은 못된 행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의원들이 쪽지예산 당사자로 언론에서 거세게 비판받는 것을 되레 환영한다는 점이다. 신문과 방송에 이름이 나면, 지역을 위해 예산 따오기에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결과를 가져와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계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쪽지예산 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 의장은 4일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재부 담당 예산국장이 힘들다고 고개를 흔들기에 제가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글을 올렸다. 지역구인 전북 순창 밤재 터널 건설사업과 임실 수변도로 건설 예산 확보가 자신이 예산담당관과 싸워 얻어낸 것임을 지역구민들에게 마치 승전보처럼 자랑한 것이다.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김정우 의원은 경부선 급행열차 사업을 당초 정부안보다 100억 원 늘린 것을,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은 안천발 KTX 사업비 100억 원을 더 따낸 사실을 각각 SNS를 통해 자랑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부터)가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관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이에 언론은 딜레마에 빠진다. 이 쪽지예산 민원 의원들을 날선 언어로 비판하면 할수록 이들의 재선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지경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시빅뉴스에 이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의 딜레마를 겪는다. 저들 국민 분노 유발자들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싶은데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벌목공들이 펼치는 로그롤링 경기의 관람객처럼 그냥 구경하면서 박수치고 즐길 수밖에 없을 것인가. 그러기에는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인다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수 없는 오늘이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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