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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구속적부심 잇단 석방 판결과 ‘법관의 독립’, 양심에 따른 판결의 참뜻은?/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미국 사법부의 독립성은 의회와 행정부 모두를 견제하는 사법심사권(위헌법률심사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미 연방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외국인)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무효화시킨 것도 사법부의 힘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과 아프리카 7개국 국민에 대해 비자발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뒤 공항에서 해당 국가 여행객들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연방법원이 일시적 입국 허용을 내려 혼란 사태를 막은 것이다.

미국의 사법부가 독립성을 확보한 계기가 된 사건은 19세기로 거슬러 간다. 당시 미국은 각 주의 이익보다는 연방의 이익을 우선하던 연방주의자와 반 연방주의자 간의 정권 다툼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1800년 연방주의자인 존 애덤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반 연방주의자인 토마스 제퍼슨에게 패배하자, 퇴임 전 자신의 정치 이념을 관철시키려고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는 이른바 ‘말뚝박기’에 나섰다. 기존의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판사 정원을 늘려 다수의 연방주의자 판사들을 임명시키고자 한 것이다.

존 애덤스 미국 2대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과정에서 애덤스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 윌리엄 마버리의 임명을 둘러싸고 마찰이 빚어졌다. 제퍼슨 대통령이 상원에서 인준안이 통과된 마버리에 대한 임명장을 전달하지 말라고 제임스 매디슨 국무장관에게 명령한 것이다. 이에 마버리가 행정집행명령으로 자신을 임명해달라며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연방대법원장인 존 마셜의 고민이 깊어졌다. 만약 연방 대법원이 마버리의 편을 들어주면, 매디슨은 계속해서 임명장 전달을 거부할 것이고, 의회는 명령을 강제할 아무런 수단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반면 마버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면, 제퍼슨 지지자들이 합법적으로 직위를 받은 마버리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에게 사법권을 넘겨주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존 마셜 미국 4대 대법원장(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때 존 마셜의 ‘신의 한수’가 나온다. 이 사건에 대해 연방 대법원이 어떠한 조치도 취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마셜 대법원장은 연방 대법원에 행정집행명령권을 부여한 법원조직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연방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판결하지 않음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낸 셈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신뢰 위에서 나오고, 신뢰는 판결을 통해 쌓이게 마련이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튼튼해도 사법부의 독립은 결국 법관 개개인의 판결이 얼마나 법 정신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미국의 명판관 피오렐로 라과디아의 일화는 양심의 따른 판결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는 1930년 뉴욕에서 굶어 죽어가는 손주를 위해 빵을 훔친 노인에게 “사정은 딱하지만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며 10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는 “노인을 돌보지 못한 뉴욕 시민들도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나도 10달러의 벌금을 내겠다. 법정의 방청객들도 50센트씩 벌금에 동참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판시했다. 그렇게 해선 모은 돈 57달러 50센트로 벌금과 빵값을 치른 뒤 나머지 돈을 노인에게 주면서 “어서 가서 손주를 돌보라”고 했다. 방청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피오렐로 라과디아 미국 법조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소신 판결’로 맞섰던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10주기 추념식이 지난 주 대법원에서 열렸다. 이 전 대법원장은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대법원이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릴 당시 13명의 법관 중 유일하게 ‘사형 반대’의 소수의견을 냈던 인물이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유신정권의 용공조작 사건이란 오명을 남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판결을 가장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2007년 1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이미 사형이 집행된 도예종 씨 등 8명에게 전원 무죄가 선고되자, 그는 “당시 대법원의 잘못을 인정한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추념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맞닥뜨린 ‘법관의 독립’이란 개혁 과제를 언급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 같은 호소는 최근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 등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법원이 잇따라 석방 결정을 내린 것을 둘러싸고 사법부 일각에서 불거진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논쟁에 불을 붙인 사람은 김동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그는 김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를 향해 “서울시 전체 구속 실무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또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왜 정치 행위라는 식으로 폄훼돼야 하는가”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건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이념에 어긋난다...재판의 독립을 지켜가는 게 법관이 갖춰야 할 직업적 미덕”이라며 재판부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서 과연 ‘법관의 독립’은 무엇이며, ‘법관의 양심’은 또 무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특정 판결을 놓고 법관 개인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판결에 대한 비판까지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다. 법관의 독립이 비판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본다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이 발언 속에는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묻어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은 곧 정치 행위’라는 등식은 비판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억압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법관의 독립은 비단 법관의 자유만을 보장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사법부라는 헌법제도를 이용하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 헌법은 이런 정신을 충실히 담고 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관은 재판과 관련해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판결을 할 자유가 있지만, 오직 법률에 엄격히 구속된다는 것이 ‘법관 독립’의 지향점이다. 재판을 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권력은 당연히 법에 구속을 받아야 한다. 제어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대목은 조금 애매하다. 이를테면 판사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을 결정할 때에는 어떤 이유로 어떤 법률 해석을 거쳐 그런 판결을 하게 됐는지 그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른바 논증 의무이다. 판결의 근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번 경우처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붙잡아둘 필요가 없다’며 석방하는 경우 오락가락한 판결에 국민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법관의 독립은 비판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적 헌법국가에서 사법부라고 해서 비판의 성역으로 남겨둘 이유는 없다. 법관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특정 재판의 결과에 대한 비판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가 결코 아닐 것이다.

양심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어서 그 개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상식에 어긋난 판결에 대해서도 양심에 따라서 했다고 강변하더라도 대응할 수단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새로운 민주적 헌법을 제정하면서 법관의 독립에 관한 규정을 "법률과 양심에 따라"라고 했다가 "법과 법률에 따라"라고 바꿨다. 지극히 애매모호한 ‘양심’에 의지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양심은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법학 교육이나 법률가 양성 제도가 법률 지식만 파고드는 ‘전공 바보’를 양산하는 시스템에서 머문다면 법관의 양심과 법관의 독립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칼 아래에 있는 것처럼 권력자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그리스 교훈을 담은 '다모클레스의 칼' 그림. 1812년에 그려진 것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대법원이 추구하는 ‘법관의 독립’은 지혜로운 법관을 키워내는 시스템 아래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법관의 권한이 비록 칼처럼 강해도 언제 자신의 머리로 떨어질지 모르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다름없다. 사법부가 비판에 귀를 열어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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