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대기 택시들이 버스정류장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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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대기 택시들이 버스정류장 '점령'
  • 취재기자 도근구
  • 승인 2014.01.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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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혼잡 가중, 승객 안전위협.. 당국은 "단속 어렵다" 방치
▲ 부산시 지하철 동래역 앞 버스정류장을 점령한 택시 사이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도근구).
“거기 택시기사 양반, 여기 차를 세우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버스정류장으로 버스를 대려는 버스기사가 ‘빵빵’ 크락션을 울리면서 버스정류장 한쪽에 걸쳐 정차해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향해 소리치지만, 택시들은 창문을 닫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버스는 택시를 피해 인도에서 떨어진 차도 중간에 버스를 세운다. 내리는 버스 승객들이나 타려는 버스 승객들은 모두 택시를 향해 눈을 흘기며 한마디 씩 던진다. “이런 경우 없는 택시를 봤나.”

부산시 동래 지하철역 2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늘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동래역 지하철 2번 출구부터 4번 출구까지 100m가 넘는 버스정류장을 택시 수십 대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 위에는 'BUS'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지만, 택시기사들은 아랑곳 않는다. 이 때문에 버스를 타는 차선은 수시로 막혀있고, 버스를 타려고 2차선 차도로 종종 걸음을 하는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출발하거나 달리는 택시들 탓에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에 거주하는 박모(25) 씨도 택시가 버스정류장을 점령하고 있어서 늘 버스 타는 데 불편을 느끼고 있다. 그는 “분명 여기가 버스 정류장인데 내 앞에 있는 건 택시밖에 없다. 이 때문에 멀리 정차하는 버스를 타러 내가 2차선까지 나가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버스기사들 불만은 시민들 이상으로 크다. 경력 8년차 버스기사 박모(42) 씨는 택시기사들 때문에 정류장에 제대로 정차할 수 없어 시민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그는 “손님들은 왜 버스를 차도에 세우냐고 항의하지만, 택시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 나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택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 거주하는 이모(28) 씨는 자주 이런 상황 때문에 불안하다. 이 씨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인도가 아니라 차도에 내려야 하기 때문에 뒤에 차량이 온다면 정말 위험하다. 아찔한 순간을 한두 번 겪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버스에서 내리던 승객이 택시에 치여 다쳤다는 기사가 종종 언론에 실리기도 한다.
 
택시기사들도 나름대로 항변할 이유가 있었다. 가뜩이나 뜸한 손님을 태우는 데 버스정류장만큼 목 좋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택시를 모는 최모(52) 씨는 “버스정류장에 택시를 대는 것은 택시 기사들에게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생계를 위해 손님들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목좋은 버스정류장이 어디라는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최 씨는 “동래역 근처나 경성대 앞, 또 서면 같이 번화한 거리 버스정류장에는 손님이 많으니 요령껏 차를 버스정류장에 대고 줄을 서면 손님을 태울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다른 동료 택시기사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 김모(48) 씨는 “요새 경기가 워낙 어려우니 택시기사들도 사람이 많은 곳을 찾다가 버스정류장에 모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 택시를 주차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32조에 의하면, ‘버스여객자동차의 정류를 표시하는 기둥이나 판 또는 선이 설치된 곳으로부터 10m 이내'를 일반 차량 주차, 정차 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버스정류장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택시들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당국이단속에 나섰지만, 택시들이 교묘하게 법규의 허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부산의 한 교통순찰대원은 “주차나 정차는 차가 멈춰 있는 상태라고 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택시 기사들은 경찰이 다가가면 조금씩 앞으로 차를 움직이면서 정차 중이 아니니 불법이 아니니 단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 택시가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바람에 버스와 택시가 엉켜 교통혼잡을 일으키는 것도 큰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버스정류장에 버스와 택시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국도 중재에 나서기가 만만찮다. 경찰과 공동으로 이 문제를 담당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 택시기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한다. 이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쉽지 않아 대개는 강제로 이동시키는 선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그러나 잠시 후면 다시 택시가 모이는 것은 뻔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지자체들은 택시베이(bay), 즉 택시승강장을 마련하여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택시들을 택시베이로 갈 것을 유도하고 있지만,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사람이 모여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택시 베이는 거들떠보지 않아 텅 비어 있다(시빅뉴스 “택시 정류장에 택시가 없다” 기사 참조). 부산 시민 백모(29) 씨는 “분명히 잘못된 상황인데 경찰이나 구청이나 담당자들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단속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서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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