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난닝구’대전... 보수와의 야합인가, 호남 기득권 투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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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난닝구’대전... 보수와의 야합인가, 호남 기득권 투쟁인가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11.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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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21) 국민의당 내홍으로 되짚어 본 ‘제3의 길’과 안철수의 미래 / 편집국장 강동수

1.

편집국장 강동수

국민의당 내홍이 심상찮다. 일회성 세력다툼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다툼이니 우당탕 치고받는 싸움을 벌이다 갈등이 봉합돼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게 아니라 ‘갈 데까지 가보는’ 화끈한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엔 분당까지 갈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번 내전은 안철수 당대표가 유승민의 바른정당 잔류파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촉발된 거란 것은 다들 아는 대로다. 박지원과 천정배, 정동영 등 이른바 ‘호남 중진’이 이에 극력 반대하면서 전운이 짙어진 것. 호남파는 끝까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할 경우 분당도 불사하겠다는 카드를 내보이면서 안철수 주저앉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반면, 안철수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오불관언 통합을 밀어붙일 기세다.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가 8월 30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코바코 연수원에서 열린 가운데 안철수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양측이 내전을 벌이는 이유는 뻔하다. 가장 큰 계기는 낮은 당 지지율과 내년의 지방선거다. 40여 석의 국회 의석을 보유해 ‘캐스팅 보터’를 자임하는 판에 여론조사마다 당 지지율이 4~5%를 맴돌고 있으니 당 지도부로선 미칠 노릇일 게다. 때로는 원내교섭단체에마저 끼지 못한 정의당에까지 밀리기도 하니 큰일은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시나브로 해체될 게 뻔하다.

문제는 양쪽의 해법이 다르다는 것. 안철수는 ‘외연 확장’이란 이름으로, 온건보수라고 할 유승민의 바른정당 잔류파와 통합해 자유한국당이 채우지 못하는 보수의 진공 지대로 흘러가자는 거다. 좋게 말해 중도와 온건보수의 연대이고, 좀 거칠게 말하자면 마음 줄 데 없는 보수 표를 이삭줍기하자는 것일 테다. 안철수의 계획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주자면,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이념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제3의 길’ 찾기라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지난 ‘장미대선’을 치러본 결과, 호남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각축전을 벌여 우수리 표나 얻어선 대통령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절감한 나머지 나름대로 그랜드 디자인을 했다고 보면 되겠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1월 16일 오전 포항시 흥해읍 홍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를 찾아 지진피해로 대피해 있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어쨌거나, 안철수는 유승민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호남파는 ‘평화개혁연대’란 걸 만들어 격돌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보수의 일각을 공략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안철수와 호남의 현상 유지를 목표로 삼은 호남파들이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걸고 싸우는 내전이니 쉽게 봉합될 리 만무하다. 아마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갈등이 커질 게다. 구경꾼들로선 흥미진진한 한판 격투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정치 안정성을 깨트리고 그 여파로 각종 정치 현안이 표류할 수도 있어 걱정되는 대목이 없지도 않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꼴이 돼선 안 될 일이지 않겠나.박지원, 천정배,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호남 중진’의 셈속을 또 다르다. 그들 역시 당 지지율이 낮아 곤혹스러워 하고는 있지만, 결국 ‘모든 길은 호남으로 통한다’는 거다. 당의 뿌리인 호남을 버리고 영남의 보수와 손을 잡으면 호남의 외면을 자초한다는 것. 미우나 고우나 호남에 읍소해서 당의 비빌 언덕을 마련해야지 안철수 식으로 나가다가는 ‘게도 구럭도 놓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호남에 기반을 둔 그들의 속내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영남의 비주류와 손잡아 봐야 어차피 호남에서 출마할 자신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자칫 호남 유권자의 역린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추풍낙엽이 될 거란 걱정인 거다.

 

2.

안철수는 어찌됐든 우리 정치에선 희귀한 존재다. 이제는 탈색돼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됐지만, 정치에 입문할 때 그의 브랜드는 다들 기억하다시피 ‘새정치’였다. 의대 출신이면서도 IT분야를 개척한 벤처기업가의 이미지는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게다가 군대 가는 날까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입영 열차를 허겁지겁 탔다든가, 벤처 기업의 주식을 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든가, 한글 백신을 공익을 위해 무료로 배포했다든하 하는 그를 둘러싼 ‘신세대형 영웅’ 신화는 이념적 색채가 엷고 지역주의의 족쇄에 묶이지 않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호감을 샀던 터다. 게다가 ‘떼 논 당상’이라 여겨겼던 서울시장 자리를 박원순에게 흔쾌히 넘겨줬을 때 대중들의 환호는 극점까지 치달았던 터다.

안랩 로고(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안철수의 등장은 닳고 닳은 직업 정치꾼의 표리부동에 신물이 날대로 난 국민들에겐 한 줄기 샘물과 같지 않았나. 그가 “보수와 진보로 위장한 낡은 정치꾼들이 주무르는 새로운 판을 맑고 깨끗한 ‘새 정치’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외쳤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과의 야권 단일화 협상이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지지 못했어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재인이 박근혜의 보수 진영에 패했을 때도 일부는 실망감을 표출하긴 했어도 안철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제기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가 민주당에 들어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다시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만들었을 때도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았던 터다.

안철수의 실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5월 치러진 대선 때였다는 게 중론이다. 안철수는 그때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준비’를 모토로 내세우고 문재인, 홍준표와 3각 구도를 형성했다. 한 때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탄핵, 그에 따른 보수의 지리멸렬에 환멸을 느낀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문재인을 턱 밑까지 추격하기도 했지만, 결국 3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건 후보로서의 개인적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토대로 삼은 국민의당 자체의 한계이기도 했던 거다. 재작년 총선에서 기존 야당에 대한 반발 때문에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져준 호남 표심이 지난 대선에선 원점 회귀해 텃밭이라던 호남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면치 못했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로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겼을 터이다.

안철수가 지향하는 정치노선은 거칠게 말해 ‘제3의 길’이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가겠다는 과도한 이념을 벗어던지고 실용의 길을 택하겠다는 게 제3의 길이다. 남북 분단에 아직도 지역주의의 망령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 현실에서 서구형 ‘제3의 길’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나 군부독재와 민중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화 세력의 전쟁의 볼모가 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 ‘제3의 길’이란 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양과 까망으로만 나눠진 한국 정치의 색채를 프리즘으로 분광시켜 ‘빨주노초파남보’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넓혀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자는 것이 아니겠나. 한 두 개의 상품만 내놓고 소비자들에게 고르라고 강요하는 독과점보다야 알록달록 다양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 마음대로 고르게 한다는 게 나쁠 리야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안철수가 지향한다는 ‘제3의길’이란 게 무언지 좀 구체적으로 살펴볼 차례이겠다.

 

3.

서구에서의 ‘제3의 길’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중도파 및 중도좌파의 본질적인 가치를 간직하고 이를 현실에 맞게 변형시켜 새롭게 적용하고자 하는 이념적인 시도.’ 좀 더 풀어서 이렇게도 설명된다. ‘국가가 개인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전통적 사회 민주주의(복지 국가)를 반대하지만, 연대와 평등의 개념이 없는 신자유주의의 개인주의도 반대하는 정치적 태도.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관계를 탄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정치적 방법론.’

글쎄, 뭔가 그럴 듯 해 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당위론에 그친 느낌이다. 어쨌거나, ‘제3의 길’은 1998년 3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프랑스 하원 연설에서 처음 언급한 이후, 2000년대 초반 정체에 빠져 있던 서구 사회에 던져진 새로운 화두가 됐다. 그해 9월 미국 뉴욕에서도 ‘제3의 길’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해 한 때는 새로운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제3의 길’을 처음 대중적 화두로 던진 이는 블레어였지만 원래 저작권은 영국 학자 앤서니 기든스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앤서니 기든스는 대표적인 저서 <좌우를 넘어서>에서 보호와 책임의 균형, 일하는 복지, 소외와의 투쟁과 경영주의 등을 주창한 바 있다. 대처리즘의 모토라 할 자유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견지하면서 복지제도의 개혁, 교육과 훈련, 기간 시설에 대한 정부 개입 강화, 국제주의를 통한 우파의 고립주의 타파 등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요약하자면, 신자유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자신이 ‘제3의 길’이라 주장한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제안한다. 제3의 길은 국가가 개인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전통적 사회 민주주의(복지 국가)를 반대하지만, 연대와 평등의 개념이 없는 신자유주의의 개인주의도 반대한다.

앤소니 기든스(왼쪽)와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수상. 1999년 촬영된 것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기든스의 ‘제3의 길’의 뿌리를 살피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다니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과학의 발전과 경제적 합리성 고양에 직면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음을 주장한 것이 1960년의 일이다. 호르크하이머의 <이성의 부식>,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공저인 <계몽적 이성의 변증법>도 마르크스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프란시스 후쿠마야도 <역사의 종언>에서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종말을 선언하고, 인간의 선택은 결국 자유주의밖에 없다고 주장해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1989년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동구권 사회주의의 붕괴로 현실화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제3의 길’은 기본적으로 좌파 이념을 부정하면서도, 신자유주의로 표상되는 우파 이념의 모순을 동시에 해결하자는 이야기일 터.

다니엘 벨 초상화(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영국에서 ‘제3의 길’이 제기된 배경은 따로 있다. 1980년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집권한 이후 오랫동안 영국은 보수당 천하였다. 대처는 복지를 축소하면서 강력한 노조를 무너뜨렸고, 국가 소유였던 48개 주요 사업과 기타 다수 소규모 사업을 민영화했다. 그 결과로 경영 합리화와 생산성 향상이란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실직자가 양산되는가 하면, 복지 수준이 후퇴하고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 등 후유증이 없을 수 없었다.

결국 소득도 없는 실업자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인두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대처가 물러났지만 그를 계승한 존 메이저는 보수당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1994년 5월 실시된 영국 지방의회 선거에서 보수당은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다. 당시 보수당은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제3당인 자민당보다도 200여 석 적은 888석으로 3위에 그치는 재앙에 가까운 참사를 당했다. 초상집 같은 보수당의 분위기와는 달리 노동당에선 새 얼굴이 등장했다. 1994년 당년 마흔한 살의 토니 블레어가 사상 최연소 노동당수로 당선됐던 것.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418석을 얻어 165석에 그친 집권 보수당을 압도하고 정권을 잡았다.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젊음과 패기를 가진 블레어는 새로운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름 하여 ‘제3의 길’. 블레어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중도좌파 이념인 민주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다시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인의 동등한 가치, 기회의 평등, 공동체와 함께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던 것.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느냐고? ‘제3의 길’은 블레어에게 세 번의 선거 승리를 안겨 줄 정도로 히트 상품이 됐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도드라졌고 노동 시장은 피폐해진 결과를 낳았다. 노조가 무력해진 공백을 차지한 기업과 자본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결정적으로 외교에서 ‘제3의 길’을 찾지 못하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적극 동참하면서 블레어는 치명타를 맞는다. 이라크 전쟁 후 그가 얻었던 별명이 바로 ‘부시의 푸들’이 아니었던가.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길’이란 명제 자체가 아직까지 오류로 판명된 건 아니다. 근년 들어 세계 경제 위기의 요인으로 국제투기자본이 거명되면서 ‘제3의 길’이 주창하는 국가 간 자본 통제 및 감독 강화론이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한 것.

세계화는 한편으론 금융 투기자본의 이동에서 보듯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세계 시민들이 국가 경제를 넘어서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것은 폐쇄적인 민족주의나 인종중심주의를 넘은 새로운 도전이자 가능성 있는 실험이다. 그렇게 보면, ‘제3의 길’의 효용성이 아직도 폐기된 것은 아니겠다.

그렇다면 한국판 ‘제3의 길’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어야 할 터이고, 그걸 현실에서 정책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우나 고우나 그 중심엔 안철수가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의 안철수가 과연 좌와 우,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비전과 역량을 갖고 있다고 신임할 수 있을까. 내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내가 안철수에게 가장 실망했던 대목의 하나는 그의 ‘4차 산업혁명 대비론’이었다. 다가올 세계가 급속한 기술혁명의 시대라는 것,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론 안철수의 ‘4차 산업혁명 대비론’엔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 글쎄, 4차 산업혁명을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서,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거다. 처음 그가 ‘새 정치’를 들고 정계에 입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 정치는 좋다. 그런데 새 정치란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터다. 내 기억으론 안철수는 끝내 그 의문에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의 ‘4차 산업혁명 대비론’도 그랬던 거다.

더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계층은 누구인가’, ‘그 4차 산업혁명의 과실은 누가 가져 가는가’에 대한 답이 빠져 있었다는 대목이다. 글쎄, 그 주체를 재벌, 대기업에게 맡기고 그 과실을 재벌들이 독차지하게 한다면 결국 재벌 중심의 독점 구조를 강화하자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 프론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시민계급에게 그 역할을 맡겨야 한다, 그래서 그걸 위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고선 그의 주장은 위장된 신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유승민의 바른정당과 통합하겠다면, 왜 통합을 해야 하는지, 그 이후 어떤 이념적·정치적 지형도를 그리겠다는 건지를 명확히 밝혀야 할 일이다. 바른정당이 이러이러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또 이러이러하니 둘이 뭉쳐서 이러이러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라는 거다. 그런 것도 없이, 둘이 합치면 자유한국당보다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다느니 따위 섣부른 탁상공론를 내세워선 통합의 정당성도, 정치적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없지 않을까. 명분과 지향성이 결락된 통합은 야합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 안철수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한 통합보다는 통합의 이유를 설명해 국민의 동의를 얻는 일일 터다.

 

 

5.

이른바 ‘호남 중진’이란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 미안한 소리이지만 이 사람들에게 씌워진 이미지는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했지만 호남 지역주의에 기댄 기득권 세력’이란 거다. 모질게 말하자면 ‘진보의 서청원, 최경환’이란 게 세평이 아닌가. 호남 사람들은 저번 총선에선 문재인에 대한 불신과 대안 부재 때문에 이들에게 표를 줬지만 이들이 딱히 고와서 그랬던 건 아닐 터이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 다시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면면은 고책창연하게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들의 정체성은 ‘난닝구’란 별칭에 그대로 담겨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초인 2003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빽바지’와 ‘난닝구’의 충돌이 있었던 것은 다들 기억하는 바다. 당시 유시민이 ‘백바지’를 입고 국회에 첫 등원했대서 논란을 빚은 것에서 유래한 이른바 개혁파인 ‘빽바지’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맞서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호남 인사들인 ‘난닝구’들이 민주당 사수로 맞서면서 극한대립이 빚어진 거다. ‘난닝구’는 2003년 9월 민주당 해체를 결의하려던 당무회의장에 난입했던 옛 민주당 당원들이 러닝셔츠 차림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쨌거나, ‘난닝구’는 호남 지역주의에 기대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 ‘토호’처럼 군림해온 일부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가 담긴 상징어가 아니었던가.

국민의당 의원총회가 7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박지원 전 대표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사진: 더팩트 제공).

이들이 2015년엔 제2차 ‘빽바지’와 ‘난닝구’ 전쟁을 벌이다가 안철수와 손잡고 나가 창당한 게 국민의당이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더러 물러나라고 공세를 펴다가 말을 들어주지 않자 뛰쳐나가선 호남에 가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벌여 나름의 성과를 얻긴 했다. 이제 이들은 안철수를 상대로 제3차 ‘난닝구’ 전쟁을 벌일 기세다. 이 사람들,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2년가량 남은 총선 때는 호남에 달려가 “이번엔 안철수에게 까였다”고 읍소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받아주지나 않나 하고 더불어민주당 문전을 기웃거릴 수도 있을 게다.

정치란 게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지만, 정치적 신조보다는 국회의원 배지가 더 소중하다지만 호남을 볼모 삼아 몰려다니면서 패거리 정치를 계속했다간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주머니 속의 공깃돌’ 같았던 예전과는 달리 국민들이 이젠 똑똑해지고 영악해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안철수나 호남파 모두 대통령 자리나, 국회의원 자리가 눈앞에 어른거릴 게다. 전남지사 자리도 마찬가지. 이혼하든, 재혼하든 알아서 해라. ‘중도와 보수 대통합’도 좋고 ‘제3의 길’도 좋다. 하지만,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정치가 어디 장난인가. 가능하면 양비론을 펼치고 싶진 않지만, 안철수와 호남파, 둘 다 도긴개긴, ‘도토리 키 재기’ 같아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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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원 2017-11-29 09:54:37
지역, 이념논리에서 벗어나 현실정치개혁을 위한 당아니었습니까?
제발 어르신들 안철수의원에 따라주세요.
저같은 대다수 일반당원들은 전라도2중대당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제발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