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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의 발자취 더듬는 '명사 여행', 파독 간호사 석숙자 씨를 만나다'한 30년, 꿈 30년' 파독 간호사 석숙자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 / 김예지 기자

도시의 사람 숲을 벗어나 오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색다른 여행이 있다. 사람과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명사 여행'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은 14개 지역, 14명의 명사와 함께 지역을 다니며 그들의 삶과 지역의 역사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홍천과 평창, 영양과 정선, 당진과 전주를 지나, 지난 25일에는 남해로 떠났다. 남해에서는 파독 간호사 석숙자 씨의 '한 30년, 꿈 30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파독 간호사들의 설움이 석숙자 씨의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났다. 석 씨는 간호사들의 말과 당시를 회상하며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했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라이힐링앤(Leiclingen)'이라는 독일의 자그마한 도시에 온 첫 동양 여성은 석 씨를 비롯한 5명의 파독 간호사였다. 1973년 23세의 어린 간호사는 독일에 첫 발을 내딛고 '빨간 지붕에 흰 집, 초록 잔디'가 마치 그림책에 나오는 풍경 같았단다. 그러나 그의 삶은 마냥 그림책 같지는 않았다. 

생소한 독일 문화에 오해를 하기도 했다. 처음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저녁밥으로 독일의 수프 요리인 ‘아인토프'가 나왔다. 독일은 원래 평일에 먹고 남은 음식으로 토요일마다 아인토프를 만들어 먹는다. 그 사실을 몰랐던 5명의 파독 간호사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손님이라 대접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석 씨는 "첫날 5명이 끌어안고 서러움에 펑펑 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요일은 생선을, 토요일은 아인토프, 일요일은 풍족한 식사를 하더라"라고 말했다.

처음 그에게 다가온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이었다. 기초적인 독일어를 배우고 갔지만 '구텐탁'이란 기본적인 인사도 나오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죽음을 앞둔 중환자를 돌보거나, 시체 닦기 등 힘든 허드렛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고된 하루하루에 통하지 않는 언어, 냄새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 한국 음식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은 더욱 깊어갔다. 석 씨는 "그럴 때면 다 같이 작은 섬으로 (1년간 모은) 휴가를 가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냄새가 심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다.

석 씨는 낯선 땅 독일에서 서러움을 느낄 때면 마음속으로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파독 전시관에 걸린 석 씨의 글)고 항상 외쳤다. 특히 석 씨와 동료 파독 간호사들이 보낸 외화는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석 씨는 750마르크를 받아서 730마르크를 한국으로 보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750마르크의 월급은 당시 한국에서 받는 월급의 10배가 넘는 거액이었다. 석 씨와 같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외화 벌이와 독일 차관은 한국의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장에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노력이 있었다. 그걸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자랑스러운 건 지금 독일인들이 한국 핸드폰을 많이 쓴다. 너무 행복하고 좋다"고 말했다.

석 씨는 남은 여생을 고국에서 보내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석 씨의 마음을 경남 남해군이 받아들였다. 당시 남해 군수였던 김두관 의원의 형이 파독 광부였다. 그래서 남해군은 독일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남해 독일마을의 빨간 지붕 흰 집은 하나 둘 모인 파독 간호사 가족들이 손수 만든 집이다. 2002년부터 15년 째 독일 마을에 거주 중인 석 씨가 1호 거주자다. 그는 "남해 독일마을 축제에 11만 인파가 왔다"며 한 관람객이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을 살리고, 남해에 와서는 남해를 살리고 있다고 말해줬다며 기뻤다"고 말했다.

독일마을의 가게 '베를린 성'에 살고 있는 부부. 아내가 파독 간호사였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베를린 성에서는 커피, 독일 맥주, 소시지를 맛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남해 파독 전시관에는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을 다녀온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고, 독일 마을 관광안내소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하루 3번 무료로 해설을 해준다. 또 남해 독일마을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예쁜 집과 독일 맥주, 소시지 등 맛있는 먹거리로 가득했다. 특히 유자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취재기자 김예지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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