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의원의 "할복자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과격 발언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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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의원의 "할복자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과격 발언 철회하라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11.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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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에서 예조판서 김상헌은 인조 임금이 청나라 홍타이지 칸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리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화에서 김윤식이 분(扮)한 김상헌은 남한산성 자신의 처소 방안에서 도검으로 스스로의 배를 찌른 뒤 고꾸라져 쓰러지고 방바닥에는 한 줄기 선혈이 뿌려진다. 관객에게 할복자살을 연상시켜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다르다. 삼전도 굴욕 당시 67세였던 김상헌은 당시만 해도 매우 드물게 82세 나이까지 15년을 더 살고 자연사했다. 황 감독으로서는 영화의 흐름상 관객들에게 줄 강력한 임팩트가 필요했다. “끝까지 싸우고 싸우다 안되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창했던 척화파(斥和派)의 대표가 그렇게 오래 목숨을 부지한 사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면 감동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史實)과도 다르고 김훈의 원작 소설에도 없는, 이런 할복 장면을 연출해 넣었을 것이다.

올해 8월 23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영화 <남한산성>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가운데 김윤식 씨가 예조판서 김상헌을 열연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실제 김상헌이 자살을 시도하기는 했다. 기록에 따르면, 삼전도의 굴욕이 있은 뒤 그는 한양의 자택에 돌아와 엿새 동안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가족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대들보에 스스로 목을 매기도 했다. 하지만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는 일본 사무라이 식의 할복을 할 만큼 그런 결기는 없었다. 3년 뒤 김상헌은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압송된다. 이때 그가 남긴 시조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똥말똥 하여라”이다. 김상헌은 심양에서 3년간 구금생활을 마치고 올똥말똥했던 고국에 다시 돌아와 고향 안동에 낙향해 천수를 다한다.

할복자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에서 유래됐다. 막부시대 무사들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또 전국시대 전쟁에서 패한 장수가 자신의 군사와 식솔을 지켜내기 위해 적장 앞에서 스스로 배를 가르고 자결했다. 루스 베테딕트는 그의 명저 <국화와 칼>에서 하라키리(割腹, 할복)는 죽음조차 싹싹하게 받아들는 일본인 고유의 깔끔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할복은 그 어느 자살법보다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다. 사람은 복부만 절개해서는 금방 죽지 않는다. 배를 가른 뒤 스스로 목이나 심장을 칼로 찔러 마무리를 하는 것이 정식 자살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2차 자살 행위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또 즉사하지 않은 채 고통에 뒹구는 추태를 보이지 않도록 뒤에서 목을 베어 할복을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게 됐다. 바로 가이샤쿠(介錯)다.

에도시대(1850-1960) 한 무사의 하라키리를 묘사한 그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가이샤쿠는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한 번에 목을 쳐줘야 할복자의 고통을 줄여준다. 그런데 검에 미숙한 사람이 가이샤쿠를 할 경우 목이 한 번에 날아가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몇 번에 걸쳐 목을 치고 칼까지 손상당하는 일이 잦았다. 사무라이의 국화꽃 같은 죽음에 매료돼 있던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1970년 도쿄 육상 자위대 본부에서 할복할 때도 서툰 가이샤쿠 때문에 그런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미지마는 칼로 자신의 배를 일단 찔렀다. 하지만 정작 배를 가르지는 못했다.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이샤쿠 모리타 마사카츠가 미시마의 목을 내리쳤으나 실패했다. 칼까지 부러뜨렸다. 결국 미시마는 몇 십 분을 몸부림치며 뒹굴다 죽었다. 할복 현장인 자위대 통감 사무실은 그가 뿌린 피로 피칠갑이 됐다.

미시마 유키오가 1870년 11월 25일 할복 자살하기 직전 자위대 건물 발코니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영화로, 드라머로, 가부키로 리메이크되어 일본인의 삶 속에 녹아져 있는 일본 최고의 고전 소설 ‘츄신구라(忠臣藏)’가 있다. 18세기 에도 시대 아이코(赤穗)번의 사무라이 40인이 억울하게 죽은 주인의 복수를 한 뒤 쇼군의 명에 따라 집단 할복자살을 한다는 실화 바탕의 소설이다. 그런데 실제 이들 사무라이들이 할복을 할 때 방법을 몰라 막부의 막신들에게 별도의 예법을 과외로 배웠다고 한다. 또 쇼군은 이들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최고의 검객들을 가이샤쿠로 붙여줬으며 공포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할복자들이 칼을 배에 대는 순간 목을 내리치도록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공언해 국민들을 뜨악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의혹을 강력 부인하기 위해 그런 극단적인 말을 뱉어냈을 것이다. 그래도 할복의 의미와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의 충격을 생각했다면 그런 끔찍한 용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더욱이 자살 장소를 자신의 지역구로 잡은 것 역시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에 충분하다.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2016년 7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남윤호 기자, 더 팩트 제공).

지난 해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국면에서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했다. 절대 탄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박 전대통령은 국회 탄핵 절차를 거쳐 헌법 재판에서도 탄핵 판결을 받았다. 국회 탄핵 표결 후 기자들이 언제 손에 장을 지질 것이냐는 질문에 “조건이 탄핵이 아니라 대통령의 즉각 사퇴였다”며 말을 돌렸다. 그가 공언한 ‘손에 장을 지진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불에 지진다”는 의미가 함축된 점을 볼 때 매우 끔찍하고 고통스런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후 이 의원이 실제로 모종의 ‘지지는 행위’를 했다는 보도는 나오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 네티즌들의 조롱이 잇따르자, 이 의원은 주변에 “무슨 농담도 못하느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놨다고 한다.

최경환 의원이 할복자살의 전제로 제시한 국정원 특활비 수수 의혹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특활비를 직접 건네줬다고 하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증언, 또 증빙자료가 확보돼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검찰과 법원에서 이 의혹이 사실로 판정되더라도 할복자살의 공언은 지키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실행한다면 그 자신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할 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 악몽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 뿐 아니다. 보수 정치인들이 목숨을 카드로 내휘두르는 발언이 최근 잇다르고 있다. 지난 2015년 당시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사건과 관련, “돈을 받았으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고, 작년 11월 탄핵 국면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새누리당이 난파 직전이다. 난 그냥 여기서 죽겠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지난 4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도 “선거 못 이기면 강물에 뛰어들겠다”, “(성완종 사건에서) 유죄 판결 나면 자살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물론 우리 한국 사람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아파 죽겠다”, “미워 죽겠다”, 심지어 “기뻐서 죽겠다”, “좋아서 죽겠다”는 말도 쉽사리 말한다. 거의 부사구, 숙어처럼 사용된다. 순진한 외국인들에게 ‘죽겠다’는 부사구는 놀랍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왜 한국인은 죽겠다는 표현을 자주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적지않다. 그때마다 말문이 막혀 당황하곤 했다.

박사모 핵심 멤버로 태극기 집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는 지난 3월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 인용되면 제가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고 적었다. 이 글이 논란이 되자, “불의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걸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라면서 “누구 좋으라고 죽겠나”고 말을 바꿨다. 최경환 의원의 할복 공언 역시 이처럼 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하고 발언을 철회하는 게 어떻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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