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 간 고락 함께한 다문화의 현장 부산 ‘차이나타운’과 ‘텍사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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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년 간 고락 함께한 다문화의 현장 부산 ‘차이나타운’과 ‘텍사스 거리'
  • 취재기자 손은주
  • 승인 2017.11.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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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차이나타운 특구' 지정 후 한중 문화 교류의 장 역할...텍사스 거리도 재단장해 관광객들 발길 / 손은주 기자

나는 '부산의 작은 중국'의 한 식당 앞에 걸려 있는 빨간색 등이다. 이곳에는 나를 비롯해 가족, 친인척까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차이나타운’이라고 적힌 동쪽 아치문 옆에 있는 첫 번째 붉은색 등이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인가 옆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공사가 한창인 모양이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유독 영어가 많이 보인다. 지난 10월 말쯤에야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내 옆에는 ‘텍사스 스트리트(TEXAS STREET)’라는 아치문이 생겼다.

부산시 동구청은 ‘상업지구 문화 관광 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역 맞은편 차이나타운 옆 일대를 ‘텍사스 거리’로 조성했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우리 동네 사람들은 빨간색을 정말 좋아한다. 중국에서 붉은색은 황제의 색이면서 최고의 행운을 뜻하기 때문이라지. 이렇게 우리 동네는 온통 붉은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반면, 옆 동네는 미국풍을 과하지 않게 재현했다. 특히 상점들의 셔터문은 독특하다. 마치 하나의 벽화를 연상케 한다. 우리 동네에 놀러왔던 사람들도 옆 동네 셔터 문을 보고는 하나같이 감탄했다. 영화에 나올만한 거리 같다나 뭐라나.

부산 동구청은 13억 원을 투입해 텍사스 거리의 상점 간판, 셔터문 등을 이국적인 느낌으로 개선했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이제는 부산 한복판에서 동·서양 문화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게 됐다. 한 발만 옮기면 바(bar) 문화가 있고, 한 발만 또 옮기면 중국식 먹거리가 즐비하다. 이곳이야 말로 동·서양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그 현장에 있는 나로선 매우 자랑스럽다. 또, 전쟁에서 근대화까지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내가 겪어온 역사의 상처를 지금은 우리 동네와 옆 동네가 함께 치유하고 있는 듯하다.

옆 동네 텍사스 거리는 새로 생긴 게 아니다. 우리 동네는 133년 전인 1884년 즈음부터 형성됐는데, 그로부터 66년 가까이 지난 1950년, 6·25 전쟁 이후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이 부산 중앙동에 ‘텍사스촌’을 형성했다. 그런데 1953년, 부산역 대화재로 인해 텍사스촌이 우리 동네로 이동해 일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미군 중심의 유흥가로 한창 번창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옆 동네가 그저 무서운 곳이었다. 텍사스 거리 대부분이 유흥가라, 밤이면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인은 출입 금지된 곳이었으니 말이다.

'텍사스 스트리트'라는 간판이 없을 땐, 외국 관광객들이 텍사스 거리도 우리 동네인 줄 알고 많이들 오해했다. 미군들이나 텍사스 거리를 알고 찾아오지, 그 외 사람들은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인 줄 안다. 그래서 텍사스 동네 사람들은 자신의 별도 거리가 조성된 게 오히려 잘 된 셈이라고 말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옆 동네 변화를 반기는 눈치다. 우리 동네에서 매년 한 번씩 ‘차이나타운특구축제’가 열리는데, 바로 맞은편은 축제 분위기와는 다르게 너무 음산했다. 이 때문에, 구청에서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힘쓴 모양이다. 요즘도 항공모함이나 미군 배가 들어와서 하선하는 날이면 유흥가 분위기를 띠긴 하지만, 해운대가 발전하고부터는 텍사스 거리 술집도 점점 잠잠해졌다. 그래서 내가 있는 동안 유흥가는 많이 없어지고 환전소, 휴대 전화 매장, 옷 가게, 이불 가게 등 다른 상점들이 입점했다.

그래서일까, 옆 동네 텍사스 거리에는 몇 대째 이어오는 오래된 장사 집이 없다. 그나마 30년 째 자리를 지켜온 집이 있긴 하다. 나랑 조금 떨어진 옆에서 옷이랑 가방 장사를 하는 김종갑(65) 할머니. 내가 매일 밤 붉은색 불빛을 밝히면서 가장 오래 본 할머니다. 할머니는 “30년 동안 필리핀, 러시아, 인도네시아, 미국 등 다양한 손님들이 왔었지”라며 옛 생각을 종종 하시더라.

부산 동구의 텍사스 거리가 조성되기 전 모습(사진: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부산 동구의 텍사스 거리가 조성된 후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할머니의 장사는 남편의 업을 이어받아 시작됐다. 할아버지가 공장을 하나 운영했는데, 미국 사람이 좋아하는 점퍼를 제작했다. 그래서 아주 옛날에 미군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가게를 얻어서 하루 장사하던 할머니를 본 기억이 난다. 이게 할머니를 30년 동안 보게 된 출발점이 됐다. 30년 전부터 아예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할 때는 할머니 가게가 정말 잘됐다. 그때가 아마 ‘부산시민공원’에 주한 미군 부대가 자리 잡고 있을 때지 싶다. 요즘은 그때만큼 벌이가 좋진 않나보다. 할머니 가게 주변이 한산하다. 그래도 할머니는 괜히 믿어보는 구석이 있다. “거리 발전도 됐으니, 세월이 흐르면 다시 활기를 찾지 않겠어?”

옆 동네가 이렇게 발전하고 변하는 동안, 우리 동네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원래 우리 동네는 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개관한 후 청국(중국) 사람들의 주거를 겸한 점포가 밀집 형성돼 ‘청관거리’로 불렸다. 이후 1993년 8월 24일 부산시와 상해시의 자매결연 이후에는 ‘상해거리’라고 부르게 됐다. 또, 우리 동네의 발전을 위해서 2007년 7월 24일에는 정부로부터 ‘차이나타운 특구’로 지정받았다.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 특구로 매년 한 번씩 우리 동네에서 ‘차이나타운특구축제’를 개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 동구 차이나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상징물. 하늘로 올라가는 천녀들을 표현했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덕분에 우리 동네는 한중 양국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교류의 장이 됐다. 동시에 다양한 중국음식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되기도 했는데, 특히 내가 있는 동쪽 아치문 입구에서 조금 들어오면, 차이나타운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집을 접할 수 있다. 주인 할아버지 말로는 “1950년대부터 70년 동안 5대째 이어왔다”고 하더라. 처음 가게를 시작했던 먼 조상의 형제의 자식의 형제, 이런 식으로 친인척끼리 세월을 이어온 모양이다. 지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화교 2세 셩리훠이(성여휘, 64) 할아버지도 먼 친척의 대를 이어받았다.

할아버지 가게는 향토문화전자대전에도 등록돼 있다. 이렇게 오래된 정통을 자랑하듯, 우리 동네에는 화교가 많이 산다. 그래서 내가 있는 곳 근처에는 화교 중·고등학교와 화교 유치원이 있다. 조금 더 가면 화교 소학교도 있다. 평일이면 화교 아이들과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인 아이들로 북적인다. 우리 동네와 옆 동네. 묘하게 닮은 점이 있으면서도 조금씩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이유는 같지 않을까? 다문화 사회인만큼 그들이 우리와 공존할 수 있도록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는 것. 내가 매일 밤 붉은색 등을 밝히는 이유기도 하다. 

*[편집자주]이 기사는 부산 차이나타운에 있는 정통 중국 요리 전문점 ‘원향재,’ 텍사스 거리에 있는 ‘OK. SHOP’ 대표 인터뷰 내용과 관광객 인터뷰 내용을 스토리텔링형 기사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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