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원전은 정말 지진과 상관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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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원전은 정말 지진과 상관이 없는가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11.2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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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수명 30년 넘긴 월성 1호기 등 괜찮다고만 강변 말고 빨리 폐쇄해야 / 편집국장 강동수

포항 지진이 발생하자 여러 가지 걱정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신화가 이미 깨진 마당이니 이러다 정말로 큰 지진이 덮쳐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지진 대비 태세가 충분한가 하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동남해안에 줄줄이 늘여 세운 원자력발전소는 정말로 괜찮은가 하는 묵은 걱정까지.

엊그저께 지하철을 탔다가 앞에 낮은 중년 신사 두 사람이 자기네끼리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다. “요즘 지진이 포항, 경주 일대에서 집중되고 있던데 이러다가 정말 큰 게 하나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그러게 말야, 지진이란 게 지각판의 에너지가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것이라던데 그쪽 바다의 깊은 땅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알겠어.”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나까지 걱정스러워졌다. 동시에 며칠 전의 기억도 떠올랐다. 한 건물의 3층에서 무슨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풍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지 않았던가. 한 10여 초쯤 계속된 그 진동에 회의 참석자들이 다들 얼굴이 질리던 모습도 떠올랐다. 진동이 지나가자 겨우 진정하고 회의를 계속하긴 했지만 느닷없이 닥친 지진의 공포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TV 뉴스에서 포항의 어느 대학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 외벽의 벽돌들이 주르르 쏟아지고 학생들이 아우성을 치며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 건물은 물론 포항에선 숱한 집들이 금이 쩍쩍 간 상태라 임시 수용소에서 난민처럼 생활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글쎄, 만에 하나라도 지금껏 일어났던 일이 앞으로 다가올 대재앙의 전주곡이라면 정말로 큰 일이 아닌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꼴이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심상찮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글쎄, 나 자신만 하더라도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바로 이 난에서 지진에 대한 걱정을 담은 장문의 칼럼을 쓰지 않았던가. 이번 지진은 지난해보다 규모가 다소 작았다고는 하지만 진앙이 지표면 얕은 곳이어서 피해가 그때 못지않았다고 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작은 사고와 큰 사고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1:29:300.’ 사소한 사고가 300번 발생하는 동안 29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그 연후에 엄청난 재해가 한 번 발생한다는 것.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인데,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거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꼼꼼히 살펴 대처하면 괜찮지만, 작은 문제라고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친다는 이야기이겠다.

그런데 그 하인리히 법칙이 혹시라도 지진에도 적용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 것은 지하철에서 그 신사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난 다음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인재(人災)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고 자연재해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그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에 관한 한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지진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게 원전 안전이다. 이번에도 월성 일대의 원전은 무사한가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던가. 이러다 대형 지진이 터지면 도대체 어떡할 거냐는 비판과 원전은 3중, 4중 안전장치가 부착된 초내진 설계를 거친 건축물이므로 걱정할 것 없다는 방어논리가 교차했다. 이번 지진에선 별 탈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글쎄 안전하다고만 계속 뭉개고 지나갈 일이기만 한지는 의문이다.

특히 설계 수명 30년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월성 1호기를 빨리 정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2년 11월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설계 수명 30년이 끝나 가동 중단 상태이던 2012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까지 가동 연한을 10년 연장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지진의 진원지에서 겨우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니 그 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더 컸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닥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어 국내 원전이 지진으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 마당이다.

원전 걱정을 하는 까닭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고 확률이야 낮다지만 한 번 사고가 터지면 그 결과가 상상할 수도 없이 치명적이란 건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나. 머리에 불화로를 뒤집어쓰고 있으면서도, 사고 확률이나 내진 설계 따위 이야기로 억지로 안심을 시킨대서 그다지 안심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원전이 밀집된 동남권은 인구나 적어야 말이지. 부산, 울산 등등을 합치면 물경 600만~700만 주민이 재앙을 입게 되지 않겠나.

그런 측면에서 따지면, 얼마 전 ‘원전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은 아쉽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를 일단 정지시켜 놓고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왕 건설 중인 원전은 공사를 계속하되 향후엔 원전 축소 정책을 쓰도록 권고한다’는 어정쩡한 결론이 나왔던 것은 다들 아는 바다. 1조 이상 들여 공사가 진행됐으니 이제 와서 그만두기도 어렵지 않느냐는 현실론에다 원전을 뜯어내면 향후 급증하는 전기 수요를 어떻게 감당하려느냐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의 주장이 먹혀들면서 공론화 위원으로 참가한 국민 다수가 공사 재개를 선택했던 것 아닌가.

요약하자면, 앞으로 닥칠지 어쩔지 모르는 재앙보다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일 텐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 결정에 아쉬움이 많다. 사고 확률이 낮다는 것과 확률이 ‘0’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사고가 터지면 어디 그 결과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말이지. 결국 싼 값에 전기를 펑펑 쓰는 혜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생명의 위협을 맞바꾼 꼴이다.

국가의 중요한 에너지 수급 정책을 자신의 책임 아래 결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공론화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일반 국민에게 의사 결정을 떠넘긴 문재인 정부의 태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미국의 배심제도처럼 일반인의 시각으로 유무죄를 결정하는 일과 같은 성격의 일일까.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 아닌가. 원전을 계속 짓건, 중단하건 정부 관료와 학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전후 사정을 꼼꼼히 따지고 토론을 한 끝에 나온 결론을 대통령이 책임지고 집행해야 할 문제다. 그게 바로 ‘대통령 중심제’의 헌법 정신이 아닌가.

대표성도 보장하기 어려운 국민 몇 백 명을 앉혀 놓고, 원전 찬반론자들의 주장을 듣게 한 다음 결정을 내리라니 그건 무책임한 떠넘기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 짓고 있는 건 지금까지 들인 돈이 아까우니 계속 짓되 앞으론 원전 건설을 자제하자’는 어정쩡한 결론을 받아든 정부가 ‘숙의 민주주의 성과’니 뭐니 자화자찬했던 것은 다시 생각해 봐도 꼴사나웠다.

글쎄, 지하철에서 들었던 중년 신사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지금 지구 밑바닥에선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주제에, 게다가 단층지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 뻗쳐서 “원전은 어떤 재난에도 절대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치기 전에 문명사적 결단은 필요하다는 게 많은 원전반대론자들의 생각인 만큼 흘려들을 게 아니라 대통령도, 정부당국자도, 학자들도, 국민들도 숙고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난해와 올해의 경주, 포항 지진이 혹시라도 하인리히가 말한 큰 사건이 터지기 전, 29개의 전조 중 하나가 아닌가 싶으면 머리끝이 쭈뼛 선다.

아참, 사족 한 마디.

그래도 이번 포항 지진 사고 때 내 개인적으로 희망적인 조짐 하나를 보았다. 대입 수능시험을 일주일 연기한 것 말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수능을 연기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학생과 학부모들의 스트레스는 물론 교사나 교육당국의 긴장도 그 만큼 커진다. 당장, 시험지를 일주일 동안이나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부터 포함해서 말이다. 대입 일정도 줄줄이 늘어지니 대학들도 비상이 걸렸다. 뿐인가. 대입과 관련한 각종 산업 종사자들도 부랴부랴 계획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시험 일정을 일주일 늦추자는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아마, 직선 돌격과 효율성을 앞세웠던 군사 정부 시절이나, 이삼십 년 전 정부라면 수능시험을 강행했을 게다. 소도시 학생 몇 천 명 챙기느라 국가대사를 늦출 수 있느냐고 외치면서…. 그래서 하루 정도이니까 괜찮지 않겠느냐며 벽이 금간 고사장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얼렁뚱땅 시험을 치르게 했을 거다. 이번엔 전국적인 혼란을 감수하면서 시험 일정을 늦추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나마 그런 정도로 우리의 안전 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이고, 지방 소도시 학생 몇 천 명을 배려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일 터이다.

불평하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국민들도 정부의 결정에 수긍하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안전한 세상은 결코 공짜로 오는 것은 아니다. 포항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선 국민들도 어느 만큼의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길이도 한 것이다. 글쎄,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우왕좌왕 생때같은 아이들을 수장시킨 우리가 ‘세월호’ 사고에서 그만 정도라도 배운 게 있었다고나 해야 할까.

어쨌거나, 원전 문제를 두고서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전기를 펑펑 쓸 것이냐, 생명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 세상에 이것에도 좋고, 저것에도 좋은 만병통치약이 어디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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