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이명박의 국정원, 이 괴물을 어떻게 우리 안에 가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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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이명박의 국정원, 이 괴물을 어떻게 우리 안에 가둘 것인가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11.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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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19) ‘국정원 적폐 수사’를 계기로 생각하는 국가정보기관의 길

1.

편집국장 강동수

이른바 ‘댓글 공작 사건’의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를 동원해 야권 정치인과 시민단체 등에 대한 비방 댓글을 인터넷상에 올리도록 지휘하는 등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노무현 정권 때 합참의장을 지낸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권 때는 국방부 장관, 박근혜 정권 때도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실장을 지내 ‘관운의 사나이’란 별칭까지 얻은 사람이다. 세 개의 정권을 넘나들며 노른자위 자리만 골라 옮겨 다녔던 그도 불법 정치 개입이란 함정은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단죄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김관진 뿐만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장이던 원세훈이 같은 혐의로 이미 구속된 데 이어 박근혜 정권 때의 국정원장 남재준과 이병호, 이병기 등도 ‘청와대에 대한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으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댓글 공작’은 사이버사령부보다는 국정원이 원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앞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계속될 거다.

2012년 12월 대선 며칠 전에 오피스텔에서 비방 댓글을 달고 있던 국정원 직원의 소재를 야당이 제보 받고 들이닥치자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걸어 잠그고 ‘셀프 감금’했던 이른바 ‘오피스텔 국정원녀’ 사건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터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는 TV 토론에 나와서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그야말로 적반하장격인 억지를 썼지만 국정원의 불법 댓글 사건은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 확정 판결이 났던 터다.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댓글 공작사건’을 수사 중인 칼날은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국정원이나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여론조작’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시작된 것이란 건 공지의 사실인 데다 구속된 김관진이 검찰 조사에서 그게 다 이명박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불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바레인에 강연인지 뭔지 하러 출국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항에서 기자들 앞에서 한 말씀했다. “저는 지나간 6개월 적폐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진 일이 감정 풀이인가 정치 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은 국론을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중차대한 시기에 안보 외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운. 글쎄, 박근혜만 유체이탈화법의 대가인 줄 알았더니 더한 고수가 여기 있지 않았나. 제가 벌인 짓은 시렁 위에 얹어두고 시치미를 뚝 떼고선 남의 일을 논평하듯 ‘감정풀이’니 ‘정치 보복’이니 뇌까리고 있는 건데, 아무리 깎아 봐준대도 사건의 당사자가 제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건 그걸 파헤치면 정치 보복이라니 참 편리한 사고 구조가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김관진이 이미 실토했으니 검찰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덮어버릴 수는 없게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조만간 검찰 포토라인에 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예상이기도 하다. 오늘 바레인에서 돌아오면서 또 무슨 소리를 할지 개봉박두!

그나저나, 국정원이 참으로 문제다. 창설된 지 56년 동안 이 정보기관이 사고 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느냐만 이번 사건은 국민 전체에 대한 불법 공작이니 그 유형이 다르다. 사고를 칠 적마다 “뼈를 깎는 개혁으로 환골탈태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이젠 깎아야 할 뼈나 남아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 ‘리바이어던’을 제대로 길을 들여야 할 텐데 이 끈질긴 괴물이 그물에 포획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2.

미국의 CIA, 구 소련의 KGB(현 러시아에선 SVR), 영국의 MI6, 프랑스의 대외안보총국(DGSE), 독일의 베엔데(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

구 소련 KGB의 엠블렘(사지니 구글 무료 이미지)

척 보면 한눈에 아시겠지만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의 명칭이다. 악명 높은 구 소련의 KGB는 물론이고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영국의 M16, 그리고 나치 유대인 전범자는 저승에까지 쫒아가서 잡아온다는 이스라엘 모사드 등등 유명한 정보기관이 많지만 아무래도 가장 명성(?)을 떨치고 있고, 조직 규모나 하는 일이 방대하기로는 미국의 CIA를 따를 곳이 없을 게다.

대표적 스파이 영화인 <007> 시리즈의 간판 배우 숀 코너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선 CIA의 약사부터. 미국의 국내 정보나 수사는 연방수사국(FBI) 소관이고 해외 정보 수집은 중앙정보국(CIA)의 업무 영역이란 건 상식에 속한다. CIA가 창설된 건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때인 1947년이다. 194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여러 정보 수집 기관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설립한 OSS가 전신이다.

1953년 강력한 반공 정책을 표방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명한 국장 앨런 W. 덜레스가 이 조직을 확대해 이후 30여 년 동안에 능력·자금·조직면에서 세계 최대의 정보기관으로 발전했다. 1953년 이란의 모사테크 총리 축출, 1954년 과테말라의 좌익 정부 전복 등은 당시의 CIA의 주요 활동으로 꼽힌다. 특히, 1960년대 칠레의 아옌데 정권 등 남미에 좌파 정권이 잇따라 들어서자 이의 와해 공작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1975년 칠레를 포함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6개국 정보기관이 공조해 좌파 세력을 척결하자는 이른바 '콘도르 작전'의 배후 세력으로도 알려져 있다. 좌익 게릴라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반체제 성향의 사회·노동 운동가, 지식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납치와 고문, 살해 등의 범죄를 자행했던 터. 17년 간 지속된 피노체트 군사 정권 때 불법 체포와 감금, 고문 등의 피해자가 3만 명이 넘고 사망·실종자는 3200여 명에 이른다는데 이런 인권 유린과 학살의 원죄는 CIA에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여튼, 제3세계의 쿠데타에서 CIA가 약방의 감초 격으로 안 낀 데가 없었다는 거다.

CIA는 1960년대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비밀 첩보 활동을 전개해왔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언론과 의회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활동이 위축됐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예산과 인원이 대폭 축소됐다. 특히 1973∼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CIA 전직 요원이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서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됐다.

미국 CIA 엠블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이 ‘정보원 신원공개금지법’ 등을 통해 국가기밀 및 CIA 요원의 활동을 보호하고 예산 증대, 신규 직원 채용 등으로 CIA를 활성화에 나섰는데, 1990년대 초반에는 동유럽의 민주화에 따라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CIA의 기능 전반에 관한 공개토론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3년 2월 CIA는 정치 첩보 활동에서 경제 첩보 활동으로의 역할 전환을 선언했다. 글쎄, 아직도 음지에서 국제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활약상으론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뒤지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이주시키기 위해서 1949년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산하에 현장 투입 및 암살팀인 '키돈'과, 통신 감청 전문기술팀 '야호로민', 해당 공작 지역에서 모사드를 도와주는 유대인들인 '캇차'와 '사얀', '사야님', 그리고 도처에서 운용하고 있는 각국 국적의 모사드 정보원들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모사드는 1979년 이전까지는 베일에 싸여있던 기관이었다. 일반인들은 모사드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일어났다. 대사관 직원들은 인질로 잡히기 전에 기밀문서를 파쇄기에 넣고 모두 파기했다는데 할 일이 없던 인질범들이 파쇄기에 갈아 넣은 문서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복원해 보다가 모사드의 존재를 알아냈다는 거다.

어쨌거나 모사드의 전력은 화려하다. 이라크의 핵 물리학자 야하 엘 메스하드를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방에서 암살하고 시리아의 대통령 군사보좌관 겸 핵시설 보안 책임자 무하마드 슐레이만을 암살하는 등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중동국가들의 핵 개발 저지에 나섰다. 칼릴 왈 아지르 등 숱한 PLO 군사 지도자 암살 공작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뿐인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설치해 학살을 지휘했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15년 동안 추적해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 국내로 납치해선 결국 교수대에 올렸다.

모사드의 성가를 국제적으로 알린 것은 ‘엔테베 작전’이다. 1976년 6월 27일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 소속 에어버스 여객기가 팔레스타인과 독일 적군파 테러 조직원들에 의해 피랍됐던 거다. 납치범들은 254명의 승객이 탄 이 비행기를 리비아를 거쳐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승객들을 공항 청사에 억류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과 서방에 수감돼 있던 자신들의 동지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엔테베 작전 당시 풀려난 인질(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스라엘 정부는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이는 체하면서 모사드를 가동해 인질범들이 억류한 이스라엘인 등 106명의 정확한 소재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장장 3840km나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선더 볼트(Thunderbolt)’로 불린 기습 공격이 시작된 시간은 7월 4일 0시. 인질 구출조는 공항 건물로 밀고 들어가 서독인 2명을 포함한 7명의 납치범들과 우간다 군인 20명을 사살하고 인질들을 구출해냈다. 이스라엘 특공대원 1명과 인질 3명이 목숨을 잃었을 뿐 완벽한 작전 성공이었다. 엔테베 발로 긴급 타전된 뉴스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고 모사드의 명성이 일약 천지를 진동했던 것.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엔테베 작전은 기발한 착상과 대담한 공격, 그리고 최소의 인명 손실로 후일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완벽했다. 

텔 아비브에 있는 엔테베 작전 기념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이런저런 암살 작전에 동원되면서 국제적으로 너무 호전적이란 비판에 직면했던 데다 1980년대 말~1990년 대 중반엔 각종 작전이 실패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던 터다. 2002년 국장으로 취임한 메이어 다간의 취임사가 인상적이다. “적의 뇌를 삼켜라.”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숨은 활동, 그 빛과 그림자를 자세히 설명하려면 한정이 없을 터이니 이 정도로 그치겠다. 어쨌거나 냉전 시절, 미국 CIA와 소련 KGB의 물밑 경쟁과 모략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고, 동독 첩보기관 슈타지도 서독 정치인의 동향을 염탐하고 매수하는데 혈안이 됐다. 영국의 M16과 프랑스의 대외 안보 총국(DGSE), 독일의 베엔데(BND)도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었을 테고.

 

3.

고대와 중세에도 첩보기관은 있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부터 천하를 쟁패했던 각 제후국들은 세작(細作)을 풀어 적국의 동태를 염탐했고, 중국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도 금의위(錦衣衛)란 첩보기관을 두어 정부 관리와 백성의 동향을 감찰하면서 공포 정치를 폈다. 유성용의 <징비록(懲毖錄)>에도 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간첩을 조선에 보내 실정을 살핀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그런데 청·일본·러시아 등 외세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구한말 대한제국 시절에 근대적 국가첩보기관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이름하여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다. 지금도 남아있는 ‘제국익문사 비보장정’이란 문서에 따르면, 광무 6년(1902년) 창설된 제국익문사는 사무소를 한성(서울)에 두고 매일 비보(祕報)를 작성해 고종께 바쳤다. 요즘으로 따지면 대통령에게 가는 국정원의 일일보고서인 셈. 운영비는 황실의 내탕금으로 충당됐다.

제국익문사는 조정 각 관아와 지방 관아, 외국 공사관은 물론 철도정차장, 나루 등 백성이 많이 모이는 곳의 사정을 염탐했다. 특히 부산, 인천, 원산 등 8대 개항지도 집중 정보 수집 지역이었다. 비보장정 제5조엔 ‘각 부(府), 부(部), 원(院) 대관의 회합 이동하는 사항’, ‘각 군영 장관의 회합 이동하는 사항’, ‘국사범의 친속 동정’, ‘자유민권을 주창하여 전제 정치를 비방하며 정부 득실을 평론하여 민심을 선동하는 자’ 등의 사찰 등이 주 임무로 기재돼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국정원, 국군기무사, 경찰 정보 부서의 기능을 종합한 기관으로 정부와 군부의 동향은 물론, 간첩 색출과 시민단체 사찰까지 맡았던 셈.

제국익문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요원을 파견했다. 요즘 국정원장에 해당되는 독리(督理) 아래 1·2·3 차장에 해당하는 사무(司務), 사기(司記), 사신(司信) 등의 직제가 있었고 대략 60~70명의 요원이 있었는데, 8대 개항장은 물론,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고베,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홍콩,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까지 해외 요원을 파견했던 것.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된 외세와 그 외세에 빌붙은 정부 고관의 준동 앞에서 국체를 지키려던 고종 황제의 안간힘이 ‘제국익문사’라는 비밀 첩보 조직을 설치하게 한 셈인데 지금 생각해도 막힌 귀와 눈을 뚫어보려던 그의 노력이 애달프다. 제국익문사는 1905년 이후 일제에 의해 비밀리에 해산됐고 상해의 독일계 은행인 덕화은행에 예치된 비밀공작금은 일본이 무단 인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좀 멋쩍은 객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이 2010년 ‘제국익문사’의 활약상을 담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제국익문사>를 발표해 거의 최초로 일반 대중에게 알린 바 있다).

소설 <제국익문사> 표지(사진: 강동수 제공)

4.

이제 오늘의 본론인 ‘국가정보원’에 대해서 일별해 보자.

다들 알다시피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 5·16 박정희의 쿠데타 직후 ‘반혁명세력’과 간첩을 색출하고 국가안보 관련 정보활동을 전개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을 모방하되 그 두 기구의 역할을 묶은 조직이었던 것. 정보기관의 특성에다 박정희의 음모적 통치술에 힘입어 정부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이 된 것도 다들 아는 사실. 중앙정보부장이라면 하늘의 새도 떨어트린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위세를 자랑했던 터다.

쿠데타 세력의 브레인이자 초대 부장이었던 김종필의 주도로 설치된 중앙정보부는 설립 초기부터 온갖 구설수에 올랐다. 이른바 ‘4대 의혹’이 그것. 중앙정보부가 증권회사를 설립해 주가를 조작한 사건, 미군 상대의 위락 시설 워커힐을 세우며 대량의 자금을 유용한 사건, 재일교포와 담합해 일본에서 불법 수입한 자동차를 국내에 팔아 큰 폭리를 취한 새나라 자동차 사건, 불법 도박 기기인 파칭코를 국내에 밀수했던 사건 등이다. 이 사건은 모두 중앙정보부가 공화당 창당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그 시절답게(?)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묻혀버렸다.

글쎄, 중앙정보부가 전두환 정권 때 국가안전기획부, 김대중 정권 때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벌였던 숱한 공작 중에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어디 한 두 개였겠나. 그것만 언급하려도 수백, 수천 쪽이 필요할 게다. 중요한 사건을 이름만 열거해 봐도 숨이 찬다. 인혁당과 동백림 간첩단 조작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 수지 킴 간첩조작 사건, 야당의 창당대회에 조폭을 동원한 용팔이 사건, 비밀 도청공작을 했던 미림팀 사건,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등……. 그 와중에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간첩 누명을 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간 사람은 또 얼마였던가.

그런가 하면 1972년 10월 공화당 내 세력 다툼 중 야당이 발의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 건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 등 공화당 4인방이 중정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김성곤은 당시 코털을 뽑히는 수모 끝에 정계를 강제 은퇴해야 했고 길재호는 고문 끝에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권력자의 번견 노릇을 마다 않았던 게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업보이지만, 권력 보위를 위해선 자기편도 끌어다가 개 패듯 팼던 게 국정원의 화려한(?) 전력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중앙정보부의 활동의 극치(?)는 1979년 10월26일 당시 부장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니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지만, 어쨌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국가원수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전 세계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을밖에. 글쎄, 유신 독재에 대한 김재규의 ‘의거’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숨어서 일해야 할 정보기관에게 과도한 권력을 쥐여 준 박정희의 업보라고 할까, 고삐 풀린 정보 권력의 해악이 어느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일 터. 맹견을 함부로 쓰면 종국엔 주인을 문다고나 해야 할는지.

앞에서 열거한 국정원(혹은 전신인 중앙정보부)이 일으킨 굵직한 사고 가운데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대통령에 대한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과 더불어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고 책임자의 처벌이 이뤄져야 할 터.

 

5.

전 CIA 부국장 마크 로웬탈에 따르면, 정보란 비밀을 그 속성으로 하는 것으로 국방, 대외정책 등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그 수요가 제기되고, 수집, 분석을 통해 국가안보 정책에 유용하게 반영될 수 있는 하나의 투입 변수다. 또 국가 정보 활동은 국가안보에 중요한 첩보들이 요구, 수집, 분석, 생산되어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되는 과정으로서 여기에는 이러한 활동과 방첩활동에 의하여 생산된 첩보의 보호는 물론, 합법적인 기관에 의해 요청된 비밀공작이 포함된다는 거다.

글쎄, 현대 국가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겠다.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정보의 수집과 분석은 통수권자의 정책 결정에 필수적이다. 나아가, 국제사회가 ‘총성 없는 경제 전쟁’에 돌입한 요즘, 중요한 경제 정보를 획득하고, 국내의 산업 기술을 보호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기관이 정권을 위해 정치인, 관료는 물론 일반 국민의 동향을 감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민주 정치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가 아닌가. 나아가, 국익을 위해 수집한 정보를 특정 정권을 위해 흘리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금기 중의 금기다. 게다가 정보 활동에 쓰라고, 영수증 첨부도 요구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특수활동비를 ‘부엌데기 국솥 푸듯’ 대통령에게도 상납하고, 저희들끼리도 멋대로 나눠먹은 짓은 도덕적 파탄 그 자체가 아닌가.

역대 정권이 국가 정보기관을 손보려다가 실패했고, 국정원은 그때마다 ‘뼈를 깎는 개혁’을 외쳤을 뿐 못된 버릇을 전혀 고치지 못했다. 글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마음이 달라져서 무소불위한 국정원의 권능을 정권의 보위에 써먹었던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이 가장 크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부메랑이 돼 버린 거다.

지금 국정원을 손보려고 작심한 문재인 정권이라고 다를까. 글쎄,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가 정보기관을 대통령의 사설 흥신소로 써먹으려는 유혹부터 뿌리쳐야 할 게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게 옛 중앙정보부의 부훈이었다던가. 이제부턴 음지에서 일하지 말라. 이 말은, 아무런 공작도 하지 말란 게 아니라 법 밖의 일은 아예 할 생각도 먹지 말란 이야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두선처럼 들먹여 꺼내기도 민망하지만 문재인 정권에게 다시 부탁 한마디.

제발 국정원이란 이름의 ‘리바이어던’의 입에 재갈을 똑바로 채우라. 그리하여 우리 안에 집어넣어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할 때만 끌어다 써라. 제도 개혁도 좋고 인적 물갈이도 좋다. 개혁하려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

첩보학의 원조 교과서라 할 손무의 <손자병법> 중 ‘용간(用間)’편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긴 글을 마치겠다. ‘사람을 분별하는 뛰어난 지혜가 아니면 첩자를 쓸 수 없고,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아니면 첩자를 부릴 수 없으며, 미묘한 통찰력이 아니면 첩자를 부리는 이익이 없다. 미묘하고도 미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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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2017-11-26 22:29:29
기자님 죄가 있어야 가두죠
법원판결이 지들 좋으면 잘할 닐이고 지들 나쁘면 못하는 겁니까?
괴물이라고 지칭하는건 너무 편견적인 시각입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건 당연하나 재판도 전에 중범죄자를 만들다니요
그런 시각과 기자님의 글 때문에 세상이 현혹되고 어지러워지는겁니다 부디 준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보고 기사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