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나에게 성장 호르몬, 늘 새롭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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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나에게 성장 호르몬, 늘 새롭게 자란다"
  • 취재기자 이채은, 허승혜
  • 승인 2013.12.16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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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경성대 특별한 인연#3>한국 취업 유학생들 이야기

한국은 내게 “성장호르몬”
“밥 안 묵일끼가?” “와이리 안 오노?” “와따, 억수로 많네!”
그는 부산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물론 표준어 구사도 문제없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얼굴.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용모다. 얼핏 보아선 한국인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다.

▲ 경성대 식품생명공학과 졸업생 다니엘 (사진: 다니엘 제공)

다니엘(27)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06년. 유학을 가고 싶어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 경성대를 알게 되었다. 그 때 당시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는데 다니엘은 그만큼 기회가 더 많을 거라 생각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어릴 때부터 식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경성대 식품생명공학과를 졸업해 현재 제일제당 품질경영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배울 것이 많아서 정말 만족합니다. 젊은 나이에 월급보다 배울 것이 많은 쪽으로 가야죠”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으로서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그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은 인도네시아어, 한국어, 영어 등 3개 국어에 능한 경쟁력을 가지고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면접을 볼 때는 업체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지금 취업한 곳은 그의 전공인 식품생명공학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이기에 경성대에서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취업했다고 모든 것이 탄탄대로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학교생활과는 다르게 직장생활에서는 계급이나 서열이 심하고, 일하는 방식이나 행정 처리도 인도네시아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한국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그는 꿈이 있기에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다니엘은 향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놓았다. 30세 전에 한 제품이나 한 업체를 맡고 40세 전에는 공장장이 되는 것이다. 또 다니엘은 다른 나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다니엘의 꿈은 이 세상에 배고픈 아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여러 가지 자원봉사도 하고 있고, GMO(유전자변형)기술이 아닌 안전한 식품 기술로 굶주린 아이들을 배불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다. 다니엘은 “직접 후진국에 가 낮은 가격이지만 고영양인 식품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가격이 낮으면 품질도 떨어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요소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 원료로 최적화된 기술을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다니엘에게 있어 한국은 꿈을 이루기 위한 대장정의 첫 출발지다. 다니엘은 “한국은 저에게 있어 성장 호르몬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기 나라에서 성장할 수 있지만 타국에서 생활하며 눈을 더 넓히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우리 성장 과정에 엄청난 효과를 주는 것 같거든요.”라고 말하며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한국에 온 목적을 잊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절대 멈추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후배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한국은 나의 “제 2의 고향”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에블린(23)의 고향은 인도네시아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그는 IT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이 컴퓨터를 배우기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유학을 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한국의 여러 대학 중 가장 빠른 답장이 온 경성대를 택하게 되었다.

▲ 경성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에블린 (사진: 에블린 제공)

에블린이 처음 한국에 온 것은 2008년. 그 당시의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이 지금처럼 알려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제게 한국은 그저 일본 옆에 있는 4계절을 가진 나라였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후 그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류와 아이돌이 유명한 나라, 편리하고 좋은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나라, 빠르고 넓은 인터넷과 통신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나라. 막연히 생각했던 모습들을 훨씬 뛰어넘는 나라. 이것이 에블린이 전에는 몰랐던 한국이다.

에블린은 여자지만 보통 남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프로그램 하나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컴퓨터의 매력이 무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블린은 그렇게 컴퓨터의 매력에 끌려 경성대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과는 여학생이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해에 같이 입학한 인도네시아의 여자친구가 2명 있어 서로서로 도와주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마음이 맞는 친구도 있고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도 해나갔지만 에블린씨는 한국어가 너무 어려웠다. 한국에 오기 전에 어학원에 잠깐 다녔지만 막상 한국인들과 바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표준어를 쓰는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왔기 때문에 사투리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그로 인해 한국친구를 사귀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이 먼저 에블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주어 한국 친구들을 무사히 사귈 수 있었다.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이 다가왔을 때 에블린은 그 누구보다 마음이 조급했다. 비자 만료일 전에 취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인보다 일자리가 많지 않아 취업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업에 지원을 할 때 “우리 회사 외국인 안 뽑아요.” 라는 말을 들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블린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곧바로 다른 기업을 찾았다. 그는 “외국인을 받지 않는 회사는 아직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꼭 그 곳이 아니더라도 한국엔 많은 회사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던 에블린은 마침내 서울에 위치한 통신 서비스 및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곳에서 미디어 통신 관리 및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꿈꾸던 일을 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지만 한국의 야근 문화는 아직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 모두가 의지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에블린도 그에 뒤지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의 그런 의지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에블린에게 한국은 특별하다. 그는 “20대의 청춘을 보내고 있는 한국은 저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한국으로 유학 오기 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제 에블린에게 있어 한국은 제 2의 고향이라 할 만큼 소중한 추억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그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있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회 및 경험들이니까요” 라며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후배들에게 조언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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