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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 자전거 횡단에 K2 등반, 유라시아 원정, 히말라야 오지 탐험까지...오늘도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27세 모험가 이상구 씨 이야기 / 박상민 기자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만 닿으면 무작정 배낭을 싸서 떠났다. 어떤 때는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실은 채 끝없이 펼쳐진 몽골 대초원을 달렸다. 또 어떤 때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지구상 두 번째로 높다는 해발 8611m의 K2 등반에 도전하기도 했다. 남들은 일생 한 번도 하기 힘든 그런 경험과 모험들을 해내면서 지금도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는 27세 청년 이상구(27) 씨 얘기다.

산과 자전거를 좋아하는 27세 청년 모험가 이상구 씨(사진: 취재기자 박상민).

얼핏 보면 그냥 순박한 시골 청년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 속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모험심과 도전의식이 가득차 있다. 남들은 그의 이름 앞에 여행가, 등반가, 사이클리스트란 타이틀을 붙였다. 하지만 이 씨는 스스로 ‘모험가’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모험을 해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상구 씨는 어린 시절부터 산과 자전거를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난 상구 씨는 자전거를 이용해 통학을 하면서 자전거를 처음 접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가족이 경북 경주시로 이사하면서 자전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방과 후 늘 자전거와 함께 살았다. 커 갈수록 자전거를 타고 좀 더 넓은 곳을 신나게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중학교 3학년 인터넷에서 자전거 동호인들과 접촉했다. 여름방학을 이용, 그들과 함께 서울에서 완도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그는 “남들과 똑같이 방학숙제를 하는 등의 그런 시시한 방학을 보내긴 싫었다. 뭔가 남다른 방학을 보내고 싶었다”고 첫 도전의 계기를 설명했다.

2010년 한국 청소년 히말라야 오지 탐사대에 참가한 이상구 씨의 모습(사진: 이상구 씨 제공)

산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산악부였던 친구 지우철 씨의 권유로 함께 산악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동계 지리산 종주를 다녀오고 나서 산의 매력에 빠져 그 이후로도 우철 씨와 함께 대통령기 산악대회, 전국체전 등 각종 산악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던 중. 2009년 고등학교 3학년때 산악부 지도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UIAA(국제 산악연맹) 국제 청소년 연합캠프에 참가하는 기회를 잡았다. 상구 씨는 생애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 동유럽 루마니아에서 암벽 등반과 산행을 하며 넓은 세계를 보게 된다. 그렇게 상구 씨의 학창시절은 자전거와 산으로 가득 채워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소방관의 꿈을 안고 대구 보건대학교 소방 안전관리과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상구 씨의 산에 대한 열정은 계속됐다. 2010년 한국 청소년 오지 탐사대에 지원,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후 중국 탐사팀으로 중국의 미지 등반대상지를 탐험했다. 귀국 후 다양한 산에 대한 경험이 하고 싶어 대한산악연맹 활동을 틈틈이 함께 하며 산이라는 존재와 함께 더 큰 꿈과 도전을 그려나갔다.

2013년 자전거 몽골 횡단 당시 사용했던 자전거(사진: 이상구 씨 제공)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그의 도전은 더욱 가속화됐다. 그는 군 복무 중 모은 돈 100만 원을 가지고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 다큐멘터리 동영상으로 추천했던 ‘자전거로 몽골 초원 달리기’의 꿈을 실현했다. 2013년 7월 전역하자마자 상구 씨는 자신의 ‘애마’ 자전거와 함께 무작정 몽골로 떠났다. 그의 계획은 단순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무작정 동쪽으로 달려보자”는 것이었다.

첫날 하루 100km가 넘는 거리를 쉼 없이 달렸다. 그런데 학창시절 꿈꾸던 것과는 달랐다. 뭔가 이상했다. 이튿날 침낭에서 눈을 뜬 그는 깨달았다. “자전거를 타고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지 옆을 보고 주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 무슨 여행이겠나, 그냥 고역일 뿐이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음 날 상구 씨는 자전거를 돌려 다시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그제서야 그의 눈에는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보이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도로가 아닌 초원을 달렸다. 여행 도중 어떤 날은 우연히 몽골 악단을 만났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선뜻 음식을 건네주며 함께 얘기도 나누고 춤과 음악을 즐기며 잊지 못할 하룻밤을 선사했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영어와 온갖 몸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했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그날의 기억은 평생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당시 추억들을 회상했다.

30박 31일의 긴 여정 동안 상구 씨가 한국에서 챙겨간 식량은 신라면 25봉지, 미숫가루, 아이스티, 전투 식량과 현지에서 구매한 딱딱한 빵과 몇 개의 초코바와 물이 전부였다. 유난히도 춥고 배고픈 도전이었지만 몽골인들의 친절과 나눔으로 가장 행복했던 여정이기도 했다.

2015년 한국 청소년 히말라야 오지 탐사대에 참가한 이상구 씨(사진: 이상구 씨 제공)

몽골 자전거 여행 후 4개월 뒤 2009년 루마니아 청소년 연합 캠프 당시 인연을 맺은 김영식 대장의 권유로 히말라야 오지 탐사대 청소년 팀장으로 참여하게 됐다. 상구 씨는 오지 탐사대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바뀐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챙기며 이 프로그램을 스스로 즐기면서 참여한다”고 상구 씨는 설명했다. 이 특별한 감정을 못 잊어 그는 매년 오지 탐사대 청소년 팀장으로 참여한다.

2014년 원코리아 유라시아 평화 대장정 대원들과 이상구 씨(사진: 이상구 씨 제공)

오지 탐험 후 상구 씨는 졸업을 위해 복학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그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취업을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대학생들. 그런 대학생들을 보며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왜 다들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 지우철 씨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유라시아 대원 모집.’ 이 문자 한 통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 그는 다시 휴학을 결심하고 도전에 뛰어들었다.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원코리아 유라시아 평화대장정은 100일간의 기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독일에서 출발해 유라시아를 거쳐 서울에 도착하는 대장정의 자전거 횡단. 상구 씨는 각종 테스트를 거쳐 쟁쟁한 후보들 중에서 7명의 대원에 당당히 선발됐다. 상구 씨는 “대학 졸업이야 다음에 할 수 있지만 이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유라시아 원정길에 올랐지만 그는 처음 한 달 간은 현지의 새로운 도로 환경과 법규 등 적응해야 될 부분이 많아 적잖게 고생했다.

시간이 흘러 7대의 자전거가 하나의 자전거가 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추억들이 쌓여가면서 100일간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렀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우랄산맥을 통과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뉴라시아 평화원정대는 진정한 한 팀으로 똘똘 뭉치게 됐다. 상구 씨는 “우랄산맥을 통과하고 도착지에서 원정대뿐만 아니라 같이 참여한 안전요원들까지도 함께 서로를 안고 격려했다”고 말하며 그날의 감동을 전했다.

2016년 경북산악연맹에서 주최한 K2 원정대가 캠프를 구축하고 있다(사진: 이상구 씨 제공).
K2 원정대에 참가한 이상구가 등정 중 포즈를 취했다(사진: 이상구 씨 제공).

그렇게 무사히 유라시아 원정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상구 씨는 이번엔 K2 등반에 도전했다. 경북산안연맹의 박재석 대장으로부터 K2 등반 제의를 받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그곳을 등반한다는 그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그는 고민하나 없이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K2 등반 제안을 받고 약 1년여 간의 힘든 준비 기간을 거친 후 2016년 6월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당시의 등반 과정은 베이스캠프에서 시작해 A, B, C 전진기지, 캠프1, 캠프2, 캠프3, 캠프4, 정상 순으로 진행됐다. 2인용 텐트에서 성인 4명이 함께 자고, 90도가 넘는 얼음벽을 올라가는 등 힘든 난코스를 거치고 그렇게 원정대는 캠프3까지 도착했지만 기상악화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게 됐다. 상구 씨는 “캠프3를 올라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걸 생각하니 내려가면 다시는 못 올라 올 거 같았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로 기상예보와 달리 일주일간 계속해서 눈이 내려 원정대는 발이 묶이게 됐다.

눈이 그치고 얼마 뒤 다시 2차 등정을 나섰지만 야속하게도 또다시 내린 눈으로 발걸음을 뒤로 해야했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고 이튿날 아침 캠프4 부근에서 눈사태가 발생해 캠프3에 있던 13개 원정대 팀의 모든 산악장비들이 휩쓸려갔다. 이윽고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캠프3로 떠난 세르파로부터 날아온 무전은 ‘FINISH.’ 무전과 함께 상구 씨와 원정 대원들은 그간 고생한 훈련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K2 등반을 다녀온 뒤 원정 대원들 각자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상구 씨는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잠시 방황했다. 큰 도전을 마치고 나서 항상 다음 도전을 위해 준비를 하곤 했던 그지만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김영식 대장의 지인을 소개받아 목조로 집을 짓는 목수가 되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우유니 소금사막 자전거 횡단, K2 등반 재도전 등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이지만 현재는 새로운 도전과 꿈을 위해 잠시 쉬어가고 있다. 그는 “당장은 목표나 꿈을 정해놓고 있지 않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버킷리스트가 생기면 하나둘씩 이루어가면서 되는 대로 최대한 즐기며, 행복을 찾아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도전에서 그는 ‘포기’와 ‘후회’란 단어를 떠올린다. “어떤 일이든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순간을 참아낸다면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상구 씨. 그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았고 도전을 해낸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덧붙인다. “도전 앞에 두려움과 어떠한 장벽에 가로막힌다면 당장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세요. 그리고 마음을 내세요. 나는 이미 그곳을 여행하고 있고 그 도전을 실행하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모든 여행에서요.”

취재기자 박상민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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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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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있습니다! 2017-11-06 19:02:47

    기사에 잠깐 나오는 취업을향해서만 달려가는 대학생이라는 말에 뜨끔... 언제나 배울점이 많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시는 멋있던 분이셨지만 항상 끊임없이 도전을 하시는 모습에 다시한번 귀감받고갑니다!!!   삭제

    • 김경섭 2017-11-06 18:05:39

      기나긴 인생에 있어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을 젊은 나이에 용기 하나만으로 이루어낸 것을 보면 멋있으면서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앞으로 자주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모습 화이팅입니다!!   삭제

      • 익명 2017-11-06 17:03:05

        이상구씨의 길고 모험적인 인생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삭제

        • 김주현 2017-11-06 16:37:11

          장벽에 가로막히면 포기하지말고 도전하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좋은 기사 잘 봤어요 기자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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