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를 읽는 시간, 시인과 시민이 함께 가을을 낭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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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를 읽는 시간, 시인과 시민이 함께 가을을 낭독하다
  • 취재기자 안소희
  • 승인 2017.10.30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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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낭독서점 시(詩)집’...주인장 이민아 시인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슴 뜨거워지는 시를 나눠요" / 안소희 기자

“저는 여기 오시는 분들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책을 만나길 바랍니다.”

요즘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젊은 층에서부터 기성세대까지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용한다. SNS의 특성상 긴 글보다 사진, 동영상 위주의 게시물을 자주 접하면서 사람들은 글을 피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시를 읽으며 글의 가치를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부산 서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낭독서점 詩집’이다.

부산 서구 보수동에 위치한 '낭독서점 시집'(사진: 취재기자 안소희).

지난 18일에 찾은 서점은 저녁에 있을 ‘시인의 식탁’ 준비로 한창 분주했다. 이 서점의 주인 겸 시인인 이민아(38) 씨는 혼자 좁은 책방 안에 어질러진 책들을 정리하고 쌓여있는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 혼자 일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서점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시인의 감각을 배우는 시간이고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독서 프로그램, 앞으로 진행할 프로그램들이 그 의미를 더 깊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마흔이 넘어서 서점을 열 계획이었지만 부산일보 1면에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30년 동안 운영됐던 책방이 달세를 못내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난 것을 보고 더 늦으면 겁이 나 못할 것 같아서 2년 전인 서른일곱에 서점을 열었다고 말했다.

서점 밖 가로등이 켜지자 시인의 식탁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그들은 모두 손에 시집과 함께 김밥과 사과와 같은 주전부리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시집과 주전부리는 일종의 입장료”라고 얘기했다. 시민들은 짐을 내려놓고 당연하다는 듯이 사과를 깎고 식탁을 정리하는 등 프로그램의 준비를 도왔다. 진짜 가족인 줄 알았다는 말에 이 시인은 시원하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녀는 여기 모인 이들처럼 추억을 만들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을 더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시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인 '시인의 식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앞자리 오른쪽부터 이민아 시인, 최원준 시인, 그리고 참여자들(사진: 취재기자 안소희)

이날 최원준 시인과 함께한 ‘시인의 식탁’은 예정된 100분을 훨씬 넘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 시인은 가장 최근 시집인 <북망>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탐식 기행을 다녔을 때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줬다. 두 시간 동안 시민들은 서로는 물론이고 최 시인과도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편한 분위기 때문인지 참석자들도 생기 도는 모습으로 시인과 대화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왜 굳이 ‘시인의 식탁’이라고 이름을 지었느냐는 물음에 이 시인은 “요즘 책방은 가족, 이웃, 어렵고 힘든 사람 누구든 앉혀 줄 수 있는 식탁과 같다는 생각”이라고 답했다. 또, “가계부를 쓰거나 부부싸움 이야기를 하는 등 다양한 공간”이라며 낭독서점 시집도 손님들이 식탁처럼 다양한 용도로 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문학을 읽고 우리의 무뎌진 감성과 사회의식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고 이오동 시인의 유고 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의 <시를 어떻게 써야 합니까>와 <아이들과 까치 새끼>를 추천했다. “저는 청년들이 말초적인 즐거움이 아니고, 머리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시를 읽기를 원해요.” 그녀는 “지금 우리 사회가 시가 쓰인 20~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며 왜 사람들은 이전 보다 더 많이 배우고 돈을 버는데 인간성은 더 미개의 세계로 가는가 하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했을 때, 시가 자신을 더 들여다보게 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과 식탁 정리를 하고 있던 낭독서점 시집 단골 김은숙(50, 부산 서구) 씨는 “나에게 시인의 식탁은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작품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이라며 책에서 얻는 것보다 오늘처럼 직접 시인을 만나는 현장에서 얻어가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프로그램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서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부산 보수동 작은 책방골목에서 문학의 소중함을 알리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지닌 서점, 낭독서점 시집에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낭독서점 시집은 11월 20일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시인의 식탁' 이후에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시를 읽는 시간, ‘시집을 안 낸 시인의 식탁(가제)’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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