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취업난에도 회사 박차고 나오는 '돌취생' 급증…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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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취업난에도 회사 박차고 나오는 '돌취생' 급증…왜?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10.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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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 38%가 직장 그만 둔 취업생..."배우는 것도 없고 발전 가능성도 없고 돈도 안 모여" / 정인혜 기자
취업난이 극심한 요즘 '돌아온 취준생'의 줄임말인 '돌취생'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신조어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IMF 구제 금융 위기 이후에는 명예퇴직한 사람을 일컫는 ‘명태족’, 남녀 간 성대결이 격화되던 때에는 허영심이 가득한 여자를 빗댄 ‘된장녀’라는 말이,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때에는 부모의 배경이 자식의 사회적 출세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의 ‘금수저’ 등의 단어가 유행했다.

2017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신조어에는 ‘욜로’가 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말로, 말 그대로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살자는 말이다.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극심한 취업난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신조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이유를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전문가들은 욜로 현상에 대해 ‘열심히 살아도 내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유행어’라고 진단한다.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 ‘돌취생’의 등장 배경도 욜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돌취생은 ‘돌아온 취업준비생’의 줄임말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를 택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돌취생 진모(29, 서울시 성동구) 씨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에 3년 경력을 뒤로하고 퇴사를 결심한 데 대해 진 씨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야근에, 주말 출근에 회사에서 쫓겨나기 싫어서 열심히 일했는데, 3년 일한 월급 통장에 500만 원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퇴사했다”며 “무조건 성공하겠다고 취업했는데 배우는 것도 없고 발전 가능성도 없고 돈도 안 모이니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공, 경력과 무관한 곳에 재취업해도 상관없다는 진 씨는 “어디에 취직해도 돈 모으는 건 힘들 것 같은데, 그냥 마음 편한 직장에 가는 게 현재 목표”라고 덧붙였다.

한 돌취생은 “무조건 성공하겠다고 취업했는데, 크게 배우는 것도 없고 발전 가능성도 없고 돈도 안 모이니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 직장에 사표를 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돌취생이 증가하는 현상은 통계 자료로도 입증됐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에서 구직자 성인남녀 3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8.8%가 돌취생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최근 직장은 중소기업이 53.3%로 가장 많았고,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각각 14.9%, 14%로 조사됐다.

이들이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더 나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35.3%)’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이어 ‘인간관계에 대한 트러블(16.0%)’이라는 답변과 ‘기대했던 업무 내용과 실제 업무 내용이 달라서(13.4%)’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급여가 맞지 않아서(8.4%)’, ‘복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각 7.6%)’ 등의 답변도 있었다.

이번 달에 사직서를 제출할 계획이라는 직장인 박모(26, 부산시 강서구) 씨는 “입사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배울 것 없는 회사에 계속 다녀봤자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며 “대학교 나와서 장사한다는 사람 보면 한심하게 보였는데, 다들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인크루트 이종서 홍보 담당자는 "직장인들이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알고 있음에도 돌취생을 선택하는 것은 당장 현재의 생계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투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며 ”(퇴사라는) 과감한 선택을 한 만큼, 기업이나 직무 선택에 있어 더욱 신중한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때 기성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방송인 유병재의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는 말에 20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공감이 뒤따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돌취생이 유행하는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기성 세대의 어설픈 위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일종의 반발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리상담 카페를 운영하는 상담사 강주영(37, 부산시 남구) 씨는 “해방 이후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세대는 지금 세대가 처음이라고 한다. 절망감에 휩싸인 젊은 세대가 취업난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돌취생이 되는 세태에 대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돌취생은 현재의 현실이 반영된 씁쓸하고 가슴 아픈 신조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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