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청주중학교 입학시험에 당당히 합격해서 음성-청주 간 기차 통학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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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청주중학교 입학시험에 당당히 합격해서 음성-청주 간 기차 통학생이 되다
  • 미주리대학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7.10.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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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 장원호 박사

남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도 면장 아들 친구처럼 3대 독자라고 해서 귀여움을 받았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사내아이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수영도 배웠고, 겨울에는 큰 저수지로 가서 집에서 만든 스케이트로 얼음판을 누볐습니다. 추운 겨울에 저수지 물에 빠지기도 했고, 여름에는 깊고 넓은 저수지를 수영으로 왔다갔다 했습니다. 나의 수영 실력은 어려서부터 익힌 솜씨라 서울로 대학 진학한 후 한강 인도교 부근에서 수영으로 두 번씩이나 한강을 왕복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한국전쟁이 다시 나서 한강 다리가 또 끊어져도 헤엄쳐서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했습니다. 한때는 물살이 심한 지금의 잠실 근처 뚝섬 수영장에서도 한강을 헤엄쳐 건너갔다 와서 친구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1940년부터 1950년 4월까지 10년을 별채에서 조부모와 지내다가 중2 때 청주로 유학 갔을 때는 우리나이로 14세였고, 그때 이후로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살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고향에 다니러는 자주 가지만, 이제는 그 국민학교 시절 천진난만하던 때의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는 시골에서 막내 동생과 함께 사셨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항상 손님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나는 이미 나이 세 살 때 어머니 품을 떠나 조부모 품으로 갔고, 그 후로 계속 타향살이를 한 끝에 이제는 외국에서 50년을 산 운명이 되었습니다. 내 사주대로 외교관은 되지 못했지만, 나는 외국에서 살 숙명을 타고 난 듯합니다.

음성 수봉 공립 국민학교는 1950년에 졸업한 내가 37회이니 1910년 경에 설립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전교생이 20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공부하려는 모든 학생을 수용하다보니 한 반에 60여 명씩 한 학년에 다섯 반이 있었고, 따라서 300여 명의 동급생이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음성에는 음성 농업고등학교가 있었는데, 해방 후 음성 중고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수봉국민학교 졸업생이 중학교로 진학하려면 대개는 음성중고등학교로 갔고, 극소수가 충북 도청 소재지인 청주로 갔습니다. 당시 음성에서 서울로 중학교를 진학한 동기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청주에는 사범학교, 상업학교, 농업학교, 고등학교 등이 있었지만 제일 경쟁이 심하고 전통있는 학교는 일제 때 제일고보였던 청주중학교였습니다. 청주중학교의 입학시험을 보려면 수봉국민학교에서 석차 20위 안에 들어야 했으며, 대개는 이 중에서 10여 명이 시험을 치렀고, 그 중에서 운이 좋은 해는 2명이 합격했고, 평균적으로 1명 정도가 합격했습니다. 운이 나쁜 해는 한 명도 합격을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나던 초봄에 10명의 동급생들이 선생님 인솔 하에 청주로 가서 여관에 합숙했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 중에서 나 혼자 만이 합격하니 나의 조부님의 기쁨은 표현할 수가 없이 컸습니다. 조부님은 당시 정미소를 경영하여 부유한 편이어서 돼지 200근짜리를 잡아서 수봉국민학교 교장 이하 많은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천막까지 치고 크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청주중학교의 현 인터넷 홈페이지(사진: 홈페이지 캡처)

13세의 어린 나이에 흰 테가 달린 청주중학교 교복과 모자를 쓰고 다닌 것은 음성에서는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일이다. 당시에는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하듯이 4월 초 개학과 함께 음성에서 청주로 기차로 통학하면서 나의 중학교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음성에서 청주까지는 불과 44km이지만, 당시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열차는 이 거리를 달리는 데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중간의 도안재 고개를 올라가려면 기차의 힘이 모자라서 언덕 아래로 다시 내려 왔다가 10분 이상 증기를 압축하여 고개를 넘곤 했습니다.

연대 미상의 외국 증기기관차9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아침 8시에 시작하는 학교 수업에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5시 반에는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매일 별을 보고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초저녁 6시 경에 돌아오는 고된 통학이었지만, 사범학교에 다니던 L 양, 여자상업학교에 다니던 K 양 등 국민학교 동기생들과 얘기하며 통학하는 재미도 있었고, 또 형이나 누님 벌 되는 선배 통학생들의 귀염둥이 노릇을 도맡아 해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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