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훈민정음 해례본 소유권 논란, 문화재청·소장자 법정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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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훈민정음 해례본 소유권 논란, 문화재청·소장자 법정 공방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10.1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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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법원 판결 속 판본은 10년째 오리무중…소장자 "억울한 옥살이 시켰으니 1000억 원 내라"/ 정인혜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국가 회수를 두고 정부와 소장자 간의 갈등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현재 상주본은 소장자 배익기 씨가 개인적으로 보관 중이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의 국가 회수를 둘러싸고 정부와 소장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문화재청과 소장자는 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상주본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북 상주시에 거주하던 고서 수집가 배익기 씨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가 상주본을 발견했다며 방송사에 제보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훈민정음 해례본은 단 한 권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터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지역 골동품상 조모 씨가 상주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조 씨는 공개된 상주본이 자신의 소유물이었으며, 배 씨가 이를 훔쳐간 것이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조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검사 측은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재판을 청구, 배 씨를 구속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소유권을 인정받은 조 씨는 상주본을 국가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조 씨가 배 씨에게서 상주본을 회수하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일이 꼬였다. 검찰은 배 씨의 집을 압수 수색하는 등 상주본 수색에 열을 올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사이 수감됐던 배 씨는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아 1년여 만에 감옥 생활을 끝냈다. 그는 무고하게 수감 생활을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로부터 위자료 4000만 원을 지급 받았다.

법원에서는 상주본은 조 씨의 것이 맞지만, 배 씨가 훔쳐간 것은 아니라는 애매한 판결을 내놓은 셈이다. 이에 정부는 숨진 조 씨가 기부 의사를 밝힐 만큼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입장이고, 배 씨는 절도 혐의를 벗었으니 소유권이 본인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그 사이 배 씨의 자택에서 불이 나면서 상주본이 훼손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모두 화재로 소실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다만 배 씨는 강제 압수를 피하기 위해 상주본을 낱장으로 뜯어서 숨겼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배 씨가 정부에 상주본을 넘기는 대신 ‘1000억 원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 큰 파문이 일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국가 변호인 측은 “배 씨가 원하는 금액을 적정하게 제시하면 검토해 볼 수 있지만 1000억 원이란 터무니없는 금액으로는 협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소장자 배익기 씨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실물 일부. 하단부가 불에 그을린 게 보인다(사진: 배익기 씨 제공).

반면 배 씨는 태도를 굽힐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금액 문제보다는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배 씨는 상주본을 회수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특정인들에게 위증을 교사, 자신을 감옥에 가뒀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4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화재청이 훈민정음 해례본 가치가 1조 원이라기에 1000억 원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주운 돈도 10분의 1은 준다고 들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지키는 건 나도 괴롭다. 일단 문화재청이 사람을 사주해서 나를 범죄자로 만든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주면 그때는 그걸 지키든지 팔든지 박물관에 보관하든지 하겠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여론은 대체로 배 씨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한 네티즌은 “1000억을 달라니 제 정신이 아닌 사람 같다”며 “원 소유주가 죽기 전 국가에 기증했다면 소유권은 무조건 국가에 있는 건데 왜 저런 억지를 부리나”라고 그를 비판했다.

이 밖에도 네티즌들은 “문화재는 절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정말 나쁜 사람이네”, “압수 수색해서 무조건 뺏어야 한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반면 배 씨의 입장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네티즌은 “문화재청이 개인 소유 문화재를 감정한다고 가져갔다가 국가 소유라고 강탈한 사례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라며 “결국 무죄 판결받은 배 씨가 1년여간 수감됐던 이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견에 공감한다는 또 다른 네티즌은 “1년여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는데, 별다른 해명도 없이 4000만 원에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나”라며 “배 씨가 터무니없는 1000억을 요구한 건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과 배 씨는 오는 23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에서 3차 조정을 갖고 법정 공방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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