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타인 위해 한 끼 기부, ‘미리내 가게’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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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타인 위해 한 끼 기부, ‘미리내 가게’ 확산
  • 취재기자 강민아
  • 승인 2013.10.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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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대학 교수가 시작해 전국 곳곳 체인점.. '나눔의 미덕' 실천

서울에 사는 신혜림(23) 씨는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한 수제 햄버거 집에서 자신이 먹을 햄버거 세트를 하나 사면서 햄버거 두 세트 값을 계산한다. 신 씨가 추가로 계산한 햄버거 한 세트 값은 기부 쿠폰이 되어 쿠폰 박스에 넣어진다. 가게 주인은 수시로 그 쿠폰에 적힌 음식 기부 품목을 가게 문 앞 알림판에 적어 게시한다. 그러면 길 가던 ‘누구나’ 가게에 들어와 알림판에 적힌 햄버거 한 세트를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무료로 그것을 먹을 수 있다. 그러면 알림판의 그 음식 목록은 삭제된다. 결국, 신 씨가 추가로 계산한 햄버거는 가난한 사람이든, 배고픈 사람이든, 아니면 마침 햄버거가 먹고 싶은 사람이든 그 누군가가 한 끼를 해결하도록 기부된 것이다.

이와 같이 손님의 자발적인 기부로 남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의 가게는 ‘미리내 가게’라고 불린다. 미리내 가게란 ‘돈을 미리 낸다’는 말에서 따온 말로 돈을 미리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 나눔을 실천하는 가게다. 미리내는 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하기 때문에 미리내 가게 마크는 별 모양을 띠고 있기도 하다. 미리내 가게는 일종의 기부하는 업소들의 체인점 형태를 띠고 있다. 어느 가게나 미리내 홈페이지에 가입 신청을 하면 미리내 가게 가족이 된다.

▲ 미리내 가게에 가입한 식당 문에 붙은 미리내 가게 현판과 미리내 쿠폰 박스(사진 출처: 미리내 가게 홈페이지)

미리내 가게는 동서울 대학교 전기정보 제어학과의 김준호(41) 교수가 만들었다. 김 교수 혼자서 미리내 가게 캠페인을 기획했고 그 구조와 운영 방법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미리내 가게의 취지는 부담 없는 기부 문화 조성이다. 미리내라는 재밌는 이름과 독특한 참여 방식으로 기부하려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호 교수는 공학자이지만 기부와 나눔에 열정적이다. 김 교수가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에 적극적인 데에는 30년간 사회복지사 공무원 생활을 해온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김 교수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린 시절부터 기부와 나눔에 관심이 많았다. 나에게 나눔은 거창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생활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로 나누는 일은 공학이든 사회복지학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미리내 가게는 그 나눔의 대상이 꼭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미리내 가게의 나눔 대상이 노숙자나 독거노인 같은 어려운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에 대하여 처음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미리내 가게의 나눔 대상이 재정 형편에 상관없이 ‘모두’여야 한다는 생각을 이해시켰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 이유가 가게에 기부 음식을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인지의 유무를 판단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분들은 주변에 많다. 나는 누구나 서로 나누는 일에 참여하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나눔에 참여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 미리내 운동의 취지라고 했다. 김 교수는 “어려움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우리는 어려움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다. 어려움은 무엇이든 원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리내 가게는 운영 초기에 커피 전문점들로부터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미리내 가게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이태리에서 시작된 나눔 운동으로 손님이 커피 값을 미리 지불해 놓으면 노숙자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는 나눔 운동이다. 김 교수는 이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에서 착안해 미리내 가게를 생각해냈다. 김 교수는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자는 의도로 출발했지만, 미리내 가게 운동은 제한된 이 운동의 대상을 누구나에게 무엇이든 나누자는 참여와 신뢰 정신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현재 등록 업소는 커피 전문점은 물론 식당과 제과점 등 다양하다.

그런데 미리내 가게에 가입한 업소가 손님들이 기부한 쿠폰을 중간에서 고의로 없앨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가 대두됐다. 그러면 가게 주인은 그만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미리내 운동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한다. 대개의 미리내 가게에 가입한 가게들은 그 지역이나 마을에 기반을 둔 소상인들이므로 그들이 미리내 가게의 규칙을 어긴다면 손님들이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김 교수의 생각대로 미리내 가게 주인들은 단골손님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임무를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만약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노숙자들이 미리내 가게에 와서 기부된 음식을 먹는다면,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밥집이나 빵집에 노숙자가 들어오면 사실 냄새나 차림새 때문에 영업에 지장을 줄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아직까진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며 “주인과 손님들이 우려한 만큼 그런 약자들에게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운동에 동참하는 미리내 가게가 늘고 있고, 미리 내는 손님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쌓인 쿠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노숙자들은 인테리어가 말끔한 가게 출입을 꺼려하고 일반인들은 돈이 있으므로 남이 낸 돈으로 음식이나 음료를 공짜로 먹는 일이 무전취식하는 기분이 들어 망설인다고 한다.

울산시 무거동에 거주하는 원대연(24) 씨는 미리내 가게에 등록된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넉 잔이 기부되어 있는 알림판을 보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공짜로 마신 적이 있다. 원 씨는 과거처럼 앞으로도 남을 위해 커피 값을 기부하겠지만 무료로 다시는 먹고 싶지는 않다. 그는 “아무래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아닌 내가 모르는 사람이 기부한 커피를 얻어먹는 일은 민망하다”고 말했다.

부산 송정 해수욕장의 커피 전문점 ‘풍경커피’도 미리내 가게다. 가게 주인 김성훈 씨는 미리내 가게의 취지를 널리 홍보하면 많은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믿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서 남이 기부한 커피를 공짜로 먹는 일은 정말 낯선 일이다. 그래서 정말 먹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는 손님이 많다.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면을 많이 차린다. 미리내 운동이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리내 가게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이는 가게 주인의 기부 운동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리내 가게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미리내 가게 홈페이지(http://mirinae.so/)에 접속하거나 페이스북 페이지(http://www.facebook.com/mirinae.so)를 통해서도 신청하면 된다. 전화나 구두로는 신청을 받지 않는다. 등록 신청을 하고 나면 ‘미리내 맨’이라 불리는 미리내 가게 운영진이 신청 가게로 직접 방문한다. 미리내 맨의 가게 방문과 몇 가지 확인 절차가 끝나면, 가게에 미리내 가게 간판이 걸리고 그때부터 그 가게는 신뢰의 나눔에 참여하는 미리내 가게가 된다. 현재까지 전국의 미리내 가게는 99곳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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