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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해외여행이 한국, 한국인의 전기(轉機)가 되었으면/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미국 어디를 가든지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바닥에 휠체어 ‘표지’가 그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같다. 그런데 미국의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바닥 표지 말고도 휠체어가 그려진 '표지판'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왜 그럴까? 이걸 문화 차이를 배우는 사회학 과목의 수업 중 학생들에게 묻거나,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심심풀이 퀴즈로 내면, 대개 멀리서도 잘 보이라고 표지판을 세웠다는 대답이 주를 이룬다.

이 대답도 전혀 틀린 건 아니다. 바닥에만 표지를 그려놓으면, 멀리서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니까. 요즘처럼 아파트나 백화점 등 실내 주차장에서는 아마도 표지판을 세워 주는 게 장애인들에게 주차구역을 빨리 찾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정상인 누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라도 해 놓으면 바닥 장애인 표지가 가리니까, 우뚝 세워진 표지판이 불법을 막는 기능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유학 시절 눈이 내리던 어느 날 확실한 답을 찾았다. 눈 오는 날에 쇼핑센터에 가니 주차장은 거대한 하얀 눈밭이 됐다. 주차구역 경계선이 다 사라졌다. 적당히 세우기 좋은 곳에 차를 주차한다고 누가 뭐랄 일도 없어졌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멀리서도 보이는 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팻말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엉뚱하게 궁금했던 장애인 주차구역 표지판의 용도를 알게 됐다. 눈이 와도, 특히 야외에서는 표지판이 장애인 주차구역을 장애인에게 온전히 확보해 주는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미국을 오간 한국 사람은 수백만 명이 넘을 것이다. 공무원도 무수히 미국을 다녀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 장애인 주차구역에 '표지'를 깔라는 규정은 있어도 '표지판을 세워야 한다'라는 규정은 안 보인다. 남의 나라 편리한 제도는 보려고 노력해야 보인다. 나는 2003년에 유럽을 처음 가봤는데, 런던, 파리, 로마 등 어딜 가든지 가장 눈에 띄는 게 노천 카페였다. 아마도 맑은 날이 적은 유럽 기후 탓에 유럽인들은 노천에 테이블을 놓고 조금이라도 햇볕을 받으며 차와 술을 즐기려는 문화를 지닌 듯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장면처럼 참 좋아 보였다. 이게 왜 우리나라엔 안 들어오나 했더니, 노천을 활용하거나 벽을 통째로 창문으로 개방한 카페와 술집이 순식간에 국내에 수두룩해졌다. 한국 해외여행객들 눈에 미국의 휠체어 표지판은 안 보였어도 유럽의 노천카페는 보였던 모양이다. 돈이 될 것 같으니까.

이런 일도 있었다. 핀란드는 OECD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년 간 1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 공무원, 교사, 국회의원들이 핀란드를 해외연수, 해외시찰이란 이름으로 숫하게 들락거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핀란드의 한 교사가 자주 오는 한국 교육 관계자들은 올 때마다 사람은 바뀌는데 질문은 똑 같더라며 한심해 한다고 최근 한 국내 신문이 보도했다. 연수 간 자기만 핀란드 교육을 보고 갔지 그것을 사후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거나 현장에 반영하려고 공론화하지 않는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지역의 폭우에도 불구하고 해외연수를 갔다는 어느 도의원들처럼, 국내 각처에서 진행되는 해외연수나 해외시찰은 외유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눈뜨고 봐도 다른 나라의 좋은 제도가 보일 리 없다.

외국에 잠시 살거나 여행하다 보면 배우거나 느낄 대상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새 우리나라는 청소년 폭력이 한창 문제다. 내가 1998년과 2002년 두 번을 미국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체류하면서 당시 어렸던 내 자녀들을 날마다 학교로 등하교시키다 보니, 미국의 특이한 교육 제도가 여럿 눈에 띄었다. 등교 시간에 경찰 1명이 학교 정문에 경찰차를 세워 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떡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미국 학교에 얼마나 폭력이 난무하면 저럴까 하면서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어느덧 우리나라가 그 지경이 됐다. 미국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고 집에 갈 때까지 단 1분도 교사나 학교의 눈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교사가 출근하기 전, 저학년 교실에는 미리 온 저학년생을 돌보는 당번 상급생이 있다. 교사가 출근해야 그 당번은 자기 교실로 돌아간다. 쉬는 시간에 교사는 교무실로 가지 않고 항상 교실에 머물며 다음 수업 준비를 한다. 우리 학교 폭력은 대부분 쉬는 시간에 벌어진다는데, 미국은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치고받는 싸움을 벌일 수 없다. 담임이 교실에 있으니까. 점심시간 운동장에는 2명의 당번 교사가 학생들을 지켜본다. 하교 시간에는 교장을 비롯한 전 교사가 바쁘다. 집까지 걸어가는 아이, 부모가 데리러 오는 아이, 스쿨버스 타고 갈 아이들로 건물 앞에 분류, 대기시키고, 학교와 부모가 정한 귀가 유형대로 아이들이 하교하는지 교사들이 일일이 확인한다. 교장은 무전기를 들고 이러저리 바쁘게 움직이면서 현장을 지휘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미국 중고등학교 여자아이 치마길이가 짧으면 학칙에 따라 단속하는데, 자로 재지 않는다. 교사는 치마가 짧은 학생을 보면, 반듯이 세우고, 팔을 차렷 자세로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 치마가 손끝 위로 올라가면 그게 짧은 치마의 단속 기준이 된다. 참 쉽고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교수인 나에게 유독 눈에 뜨인 것은 미국이나 유럽 대학생들은 하이힐을 신고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운동화나 랜드로버 형태의 신발 일색이다. 강의실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대학 캠퍼스에서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올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 가면 관광 온 한국 대학생들이 넘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나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도 한국말을 듣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국 대학생들의 패션은 전혀 유럽 학생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여행은 많이 다니는데, 그 여행 목적이 무언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작년 시빅뉴스 영상기자들을 유럽으로 특파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영상물 제작 주제는 '유럽의 젊은이들은 무슨 걱정을 가장 심각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취재 결과, 세계의 젊은이들 중 한국 청춘들만 취업을 가장 크게 걱정하고 다른 나라 학생들은 취업이 후순위였고 세계 평화, 가치 실현 등을 가장 중요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문제 의식이 있을 때만, 여행은 우리에게 문제를 보게 하는 것이다.  

미국 유학 중, 미국 대학 교육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시험 답안지든 리포트든 교수들이 일일이 빨간펜으로 점수를 주고, 수정하고, 코멘트를 달아 준다는 것이었다. 귀국해서 교수가 되자마자, 내가 가장 처음에 한 일은 미국식으로 학생들 답안지와 리포트에 빨간색으로 온통 벌겋게 채워서 되돌려 주는 일이었다. 나중에 어느새 내 별명이 '빨간펜 교수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일류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수들로부터 시험지 되돌려 받기 운동을 벌인다는 뉴스가 있었다. 학기가 끝나도 시험지를 안 돌려주고 점수를 받는 '깜깜이' 과목들이 아직도 있는 모양이다. 선진 문물을 먼저 소개해야할 교수들도 외국 제도 중 좋은 게 있어도 반영하는 데 주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 문화 중에서 외국 젊은이들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듣는 것처럼, 우리나라 학생들이 아델의 <Hello>나 샘 스미스의 <Stay With Me>를 듣는 것은 이해가 된다. 유럽 축구나 미국 야구 마니아도 국내에 많다. 문화적으로 세계는 많이 좁아지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 발렌타인 데이도 그렇고, 할로윈 파티가 국내에서 유행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패트릭을 추모하기 위해 녹색옷을 입는 성 패트릭 데이 축제가 우리나라에도 유행할까 두렵다. 

원래 한 문화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문화는 다른 문화권과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서 유입된다. 음식, 종교, 매장 풍습, 언어 등 그 예는 숫하게 많다.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게 여행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곧 여행이었다. 아프리카 중앙에서 침팬지가 진화해서 생긴 최초의 인류 조상이 먹을 음식, 온화한 기후, 안전한 거주지를 찾아 수십 만 년 동안 이동했다. 그 결과,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로 퍼져 나갔으니, 결국 인류의 역사는 여행의 역사인 셈이다.

여행을 뜻하는 ‘travel’의 어원은 원래 문제, 일, 고뇌를 뜻하는 라틴어인 ‘트라바일(travail)’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행은 그렇게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으며 모험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집트,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의 캘커타까지 점령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험은 결국 '정복 여행'이었으며, 이를 통해서 헬레니즘 그리스 문화의 세계화 기초를 다졌다. 아랍과 아시아를 연결한 실크로드는 '무역 여행길'이었고, 칭기스칸에서 시작된 몽골제국의 중국, 이슬람, 러시아 지배는 유라시아의 문화 교류에 기여했다. 중국 명나라의 정화 장군, 유럽의 마르코 폴로, 콜럼부스, 바스코다가마, 신라의 고승 혜초와 해상왕 장보고는 여행으로 세계를 개척하고 인간의 이성을 눈뜨게 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자녀들을 여행을 통해서 풍부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게 관습이었다고 한다. 17, 18세기 유럽 사람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여러 나라 언어에 정통한 '세계인'임을 자랑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플레이보이의 대명사가 된 이태리 사람 '카사노바(Giovanni de Seingat Casanova)'는 여행 중 여성 행각을 <회상록>이란 기행문으로 남긴 탓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당당한 세계인 겸 저술가였으며, 그의 기행문은 18세기 유럽 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문서가 됐다고 한다. 유럽은 여행이란 교육 수단을 통해서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꺼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 사람은 관광객에게 영어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국어 능력은 프랑스에서도 교양과 학식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은 전환의 예술”이라고 했다. 책이나 여행을 통해서 모르는 것을 알고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게 곧 교육이며, 학생에게는 전환의 전기가 된다. 러시아의 포트로 대제는 유럽 여행으로 견문을 익혀 유럽보다 뒤처진 러시아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일본은 2009년에 네덜란드와 통상 400주년을 맞았다. 그러니 우리보다 먼저 조총을 갖게 됐으며, 유럽의 문물을 오래 전부터 가까이 했기 때문에,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고, 1871년에는 100명이 넘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독일 등 유럽 각국으로 파견했던 것이다. 구한말 우리나라는 1876년에 청나라로 영선사를, 1881년에는 일본으로 신사유람단을 보냈다. 그것도 선진 유럽이 아니었다. 그때는 이미 일본이 개화한 뒤였으니 일본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추석 명절 연휴 기간에 한국인 3000만 명이 이동한다고 한다. 해외여행객은 110만 명이 될 것으로 여행업자들은 추정하고 있고, 제주도에만 50만 명이 방문할 예정이란 보도가 있었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공항 출국장을 가득 채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여행 전과 후에 개개인의 변화가 있는 게 중요하다. 여행은 기회다. 어디 가서 푹 쉬고 재충전하고 오든지, 어디 가서 많이 보고 듣고 오든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록적으로 길다는 이번 추석 연휴에 무언가 배우고 느낀 것들이 있어서, 우리나라가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우리가 안에서 못 본 면을 밖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안 가진 것을 남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 디니면서 깨달았으면 좋겠다. 특히 요새 한반도가 전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세계 사람들이 북한과 남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어가 된다면 말이다. 명소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곳의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관심이 있어야 보이고, 보는 만큼 배울 수 있다. 교육이든, 정치든, 문화든, 사람이든 말이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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