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과 저축 열풍 몰고온 TV 프로 '김생민의 영수증'은 '그뤠잇!', 소비 일삼는 욜로 풍조는 '스튜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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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저축 열풍 몰고온 TV 프로 '김생민의 영수증'은 '그뤠잇!', 소비 일삼는 욜로 풍조는 '스튜핏!'
  • 부산시 사상구 한유선
  • 승인 2017.10.05 07: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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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사상구 한유선
KBS <김생민의 영수증> 프로그램 포스터(사진: KBS 제공).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열풍인 대한민국에 불현듯 나타나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원래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시작해서 총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돌파하고, 지금은 KBS2-TV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김생민의 영수증>이 바로 그것.

<김생민의 영수증>은 돈을 모으고 싶은 사람들의 카드 내역서를 분석, 돈이 새는 곳을 집중 탐색해 개그맨 김생민이 맞춤형으로 돈을 모으는 방법을 설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생민은 사연자의 영수증을 보며 좋은 소비나 착한 소비일 때는 ‘그뤠잇(great)'을, 나쁜 소비나 아쉬운 소비일 때는 ’스튜핏(Stupid)'를 외친다. 이처럼 절약의 아이콘이 된 김생민은 '통장요정'이라 불린다. 그리고 김생민처럼 절약에 익숙해지고 통장을 여러 개 갖게된 시청자들이 '나도 통장요정이 됐다'는 사연들을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유행어가 된 ‘그뤠잇’과 ‘스튜핏’을 비롯해서 ‘안 사면 100% 할인이다’, ’노래는 1분 미리 듣기면 충분하다‘, ’돈이란 원래 안 쓰는 것이다‘ 등 김생민의 절약 어록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웃음을 유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찰나의 즉흥적 소비를 추구하는 욜로 열풍이 휩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김생민의 영수증>이 인기를 끌면서 절약과 저축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욜로와 절약·저축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욜로는 현재를 즐기는 게 핵심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욜로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미래의 행복에 대한 보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고, 숨만 쉬면서 한 푼도 안 쓰고 몇 십 년을 일해도 내 집 하나 사기 힘들어진 상황이 이어지자, 젊은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번진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즐기자는 욜로 열풍이 대한민국이 불고 있다.

욜로 열풍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욜로와 함께 스트레스를 받아서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발비용(스트레스 받아서 '시발'이라고 욕하면서 홧김에 소비하는 비용)’과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이 즐겁다는 뜻의 ‘탕진잼’이 유행하는 등 무작정 소비를 쫓는 사회를 지탄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욜로 즐기다가 골로 간다’는 말도 생겼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욜로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욜로 열풍이 불기 전을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은 ‘헬조선’, ‘흙수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취직 못해 죄송합니다)’, ‘N포 세대’,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등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이 담긴 말들이 유행했다.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현실에 매번 좌절하고 힘겨워했다. 청년세대에게 하는 기성세대의 충고는 ‘노오력’이라는 말로 비꼬아졌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말로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 유행할 때는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했고, ‘욜로’가 유행할 때는 막막한 미래보다 현재를 즐겼다. 

그래서 나는 <김생민의 영수증>이 퍼트린 ‘그뤠잇’한 절약과 ‘스튜핏’한 소비의 인기가 유난히 반갑다. 저축은 지금의 행복을 나눠 미래의 행복을 모아놓는 것이다. 나는 요즘 저축을 해서 집을 사고 차를 살 것이라며 꿈을 꾼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저축할 수 없다. 그런 확신이 없어서 청년들은 헬조선에 좌절했고 욜로를 쫓았다. 지금 저축과 절약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미래를 꿈꾸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줬다.

단순히 저축과 절약을 통해서 미래의 행복을 꿈꾸고 희망할 수 있도록 한 게 <김생민의 영수증>이 인기를 끈 이유는 아니다. 기성세대의 ‘참고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청년들의 힘든 세태에 대한 공감은 없었다. 그들은 청년 세대를 꾸짖고 책망하기만 했다. 청년들에게 그들의 조언은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됐다. 하지만 김생민의 조언은 잔소리로 치부되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들은 김생민의 ‘그뤠잇’과 ‘스튜핏’이라는 충고를 듣기 위해 사연을 보냈고, 팟캐스트를 들었으며, 방송을 시청했다. 청년들이 그의 조언을 찾아듣는 이유는 그가 절약과 저축을 강조하면서도 '꼰대'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축은 하고 싶은 것을 참아서 돈을 모은다는 인식이 강했다.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쳐다보며 밤찬 없이 맨밥을 먹는 것처럼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행복을 꾹꾹 참고 저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김생민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젝스키스를 좋아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30대 여성에게는 젝스키스에게 돈쓰지 말고 아껴라, 돈 없는데 무슨 반려동물이냐고 핀잔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정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한 달 카드 값이 8만원, 지금까지 모은 자산이 2억이지만 인생의 목표가 없어서 고민인 30대 남성에게는 목표는 없어도 평범한 하루하루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통장요정 김생민은 '극약 처방 재무 상담'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청년들의 삶과 행복을 존중하며 그들이 절약하고 저축할 수 있게 청년들의 눈높이와 현실 속에서 돕는다.

헬조선과 욜로를 지나 절약과 저축을 유행하게 만든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상파 방송에서 이례적으로 15분 분량의 6부작으로 편성됐으며, 지난 9월 23일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탔다. KBS는 해당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9월 30일, 10월 7일 토요일 10시 45분에 비하인드 스페셜 방송을 추가 편성했으며, 추석 연휴에는 ‘영수증 몰아보기’가 방영될 예정이다. 여러분들에게 필수 시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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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2017-10-06 06:45:44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오타가 2017-10-05 23:27:58
문송합니다 뒤에 취직이 최직으로 오타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