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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트럼프·김정은, 말폭탄 말고 직접 만나보라이젠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 아닌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 해법 찾을 때 /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사람들이 자주 드는 예화 중에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게 있다. 전자는 난마처럼 뒤얽힌 일을 과단성 있게 처리한 사례로, 후자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사고의 전환에 성공한 사례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마케도니아의 가난한 농부였다가 프리기아의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소달구지를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신전 앞에 묶어 두었다. 신탁은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소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불린 이 매듭을 마침내 푼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알렉산더는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고, 신탁의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됐던 것.

이탈리아 역사학자인 지롤라모 벤조니는 1565년 저서 <신세계의 역사(History of the New World)>에서 콜럼버스에 관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렸다. 몇몇 이들은 콜럼버스를 시기한 나머지 그의 업적을 두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폄하했다. 콜럼버스는 파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걀을 세워 볼 것을 요구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달걀 끝을 살짝 깨뜨려 탁자 위에 세웠다. 그러자 다시 사람들은 이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콜럼버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은 북핵 문제는 한마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 할 법하다. 그 동안 클린턴도, 부시도, 오바마도 이 매듭과 씨름했지만 아무도 풀어내지 못했다. 한국의 처지도 마찬가지. 김대중, 노무현 등 진보 정권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 정권 대통령도 매듭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매듭은 이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미국으로선 북핵이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다. 글쎄, 기세등등했던 이라크의 후세인도, 리비아의 카다피도 일거에 무너뜨린 미국에게 북한이 무어 엄청난 상대가 아니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 문제는 지정학적 요인이다. 동북아는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때린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북한이 마지막 발악으로 남한과 일본을 공격하면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 판국에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해 여차하면 미국까지 공격하겠다고 연일 위협하니 뒤통수가 서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속담에 ‘몽둥이 든 놈이 바늘 든 놈을 이기지 못 한다’고 했다. 미국이 그 우월한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 공격에 나선다면 결과야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몽둥이를 든 놈은 자칫 상대를 죽이게 될까봐 차마 내리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견주어 대기만 할 뿐이지만, 바늘 든 놈은 그 틈에 요리조리 상대를 찌르면서 괴롭힌다는 거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이란 ‘바늘’을 가지고 미국이란 거인의 뒤통수를 자꾸 찌르자 미국에서도 “이젠 더는 참을 수 없다. 몽둥이를 한번 휘둘러야 할 때”라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터 그렇다. 최근 유엔 기조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가 있지만,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로켓맨(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자신과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임무를 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준비돼 있고 의지와 능력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역대급 경고 멘트를 날렸다.

돌콩 같은 북한이 듣고만 있을 리 있나. 김정은은 유례없이 자신의 명의로 성명서를 내놓았다. 그는 트럼프의 유엔 총회 연설을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최고의 초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김정은은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며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무지막지한 미치광이 나발”, “정신병적인 광태”, “불망나니”, “깡패”, “늙다리미치광이” 등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리용호도 엊그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동원할 수 있는 악담을 다 동원했다. “갖은 권모술수를 가리지 않으며 한생을 늙어온 투전꾼이 미국 핵단추를 쥐고 있는 위험천만한 현실이 바로 오늘날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자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이며 미국 땅의 무고한 생명들이 화를 입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트럼프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북한 간에 말폭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고, 말싸움이 몸싸움이 되더라고 이렇게 치킨 게임을 계속하다가 진짜로 전쟁이라도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이 계속 군사 옵션을 만지작거리고 북한이 미국을 바늘로 찌르는 짓이 반복되다 보면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행여 미국 내 강경파들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려고 칼을 든다면 사태는 파국이 될 거다.

그런 판에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도 갈수록 옹색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마친 후 귀국길에 기자들에게 “북한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압박하는 것 외에는 지금은 달리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화를 하자 해도 북한이 콧방귀만 뀌고 있고, 약간의 대북 유화 체스처만 보여도 미국과 일본이 쌍심지를 켜니 중간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문 대통령의 처지가 그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한반도 비핵화 전략을 포기하고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자고 계속 조르고 있으니 대통령이 성가실 만도 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전술핵을 들여오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전술핵이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가 통제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술핵을 전폭기로 괌에서 실어오면 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 어차피 쓰건 말건 미국 마음인데 그게 괌에 있으나 한국 땅에 있으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반도 비핵화’라는 독트린도 사라지고, 중국의 엄청난 반발만 자초하지 않겠나. 그게 무슨 ‘콜롬버스의 달걀’ 해법이라도 되는 양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딱하다.

어쨌거나, 문 대통령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북핵 문제에 대한 새 정권의 태도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쎄, 제재면 제재고, 협상이면 협상이지 ‘협상과 대화를 위한 제재’는 또 무슨 레토릭인지 잘 모르겠다. 새 정부의 북핵 해법의 방점이 ‘대화’인지 ‘제재’인지 국민을 헷갈리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론 북한에 대화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대북 송유관을 걸어 잠그라고 요구해선 북한이 대화에 응할 턱이 없다. 국제기구의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800만 달러를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건 또 무엇인지. 그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미국의 요구 때문에 제재 쪽에 서 있지만, 우리는 당신네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시그널을 보인 것일 터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너무 소심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무릇 제재란 상대에게 겁을 먹게 해서 대화의 테이블로 멱살 쥐어 끌고 나오는 방책이다. 그런데 제재를 하는 쪽에서 “우리가 재제에 동참하긴 하지만, 재제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고 대화에 나오게 하는 수단”이라고 먼저 깨버리면 상대가 겁을 먹을 리가 없다. 거꾸로, 대화를 해야겠다면 상대의 마음을 사야 한다. 어제는 경제적 숨통을 졸라매겠다고 위협해 놓고, 오늘은 800만 달러 주겠다고 한들 상대가 신뢰하겠나. 제재를 하려면 무섭게 하든지, 대화를 하겠다면 상대의 의구심을 녹이고 다독이든지 확실하게 하라는 거다.

이솝 우화에 이런 게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갔다. 어떤 마을을 지나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놀렸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도 다 있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텐데 그냥 끌고 가네.” 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자식을 태웠다. 이웃 마을을 지나가는데 노인들이 꾸중했다. “늙은 아버지는 걸어가는데 젊은 놈이 꺼떡거리며 타고 가네.”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게 하고 자기가 타고 갔다. 또 다른 마을을 지나가는데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아들은 걸리고 자기 혼자 타고 가네.”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타고 갔다. 당나귀가 무거워서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 처지가 난감한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소신 있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미국 눈치, 중국 눈치, 북한 눈치 본다고 왔다 갔다 할 때가 아니다. 미국 따로, 중국 따로, 북한 따로 헷갈리고 모호한 시그널을 보낼 게 아니라 명확하게 자세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 어차피 북핵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도 따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알렉산더가 아닌 것이다. 오래고 지루한 협상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촛불 정권’이면 ‘촛불 정권’답게 깡을 좀 보이란 이야기다.

그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콜럼버스의 달걀’은 있느냐고?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런 글이나 쓰고 있겠나. 그건 청와대와 외교안보 라인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할 일이다. 글쎄, 나라면 이런 제안을 해 보겠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3자 정상회담을 열어보면 어떻겠는가. 최대치 ‘북핵 폐기’, 최소치 ‘북핵 동결’ 정도를 목표로 삼아 협상을 벌여보라는 거다.

내 생각엔 김정은은 트럼프가 만나자면 틀림없이 만날 것이다. 미국이 상대 안 해준다고 지금 저러고 있는 것이니까. 트럼프로선 김정은을 만나는 것이 북한을 인정하는 꼴이 돼서 내키지 않을 거다. 그러나 대북한 군사적 옵션이 답이 아니라면, 다른 대안이 나와야 한다.

경제 제재도 궁극적인 답이 못 되고, 이전 부시, 오바마 정권이 취했던 ‘전략적 무시’ 역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면, 이젠 김정은을 만나 봐야지 어쩌겠나. 클린턴 정권 막바지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미수교가 거의 합의됐다가 부시의 등장으로 다시 틀어지지 않았나. 그때 문제가 해결됐으면 지금 이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폭탄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초강대국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어린애들처럼 말싸움이나 벌여서야 무슨 득이 있나. 3자 정상회담은 콜럼버스의 말마따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실행에 옮겨 보는 게 꽉 막힌 파이프를 뚫는 일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알렉산더 대왕은 소아시아를 제패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매듭을 차근차근 풀지 않고 일거에 끊어버렸기 때문에 그의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그의 사후 잘려진 매듭처럼 갈기갈기 다시 찢겼다고 한다. 북핵 문제에 ‘알렉산더 식 매듭 끊기’란 없다.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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