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아주대학교 석좌교수: 70 나이에 강원도 홍천으로 학생들과 MT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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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아주대학교 석좌교수: 70 나이에 강원도 홍천으로 학생들과 MT를 가다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7.09.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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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보람 찾는 언론학 교수] / 장원호 박사

(17)-2에서 계속:

아주대 학보사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부 남학생들은 군대에 갔고 일부 여학생들은 그만 둔 가운데 박은경 양이 편집장이 되었고, 박 양은 어려운 사정 속에서 편집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 6명을 기자로 새로 채용했는데, 남자로서는 김 군과 이 군이 있었고, 여자로는 주영, 지아, 안나, 경아 등 새로 들어 와서 모두 6명이 편집장 박 양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박 편집장은 이들 6명을 지도하여 학보사를 잘 꾸려 나갔는데, 4월초에 학생들만 가는 MT에 나를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대명콘도에 큰 방 둘을 예약했습니다. 대명콘도는 홍천에서 서울까지 셔틀 버스를 운영했는데, 서울 잠실운동장 근처에서 손님을 태우고 홍천으로 운행하고, 올 때도 홍천 콘도에서 서울 그자리까지 데려다 주는 아주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홍천이라면 도로 사정이 나빠 수 시간 걸리는 여행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나는 서울에서 1시간 반 만에 홍천에 도착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했으니 10시도 되기 전에 도착한 우리에게 점심 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았습니다. 홍천의 대명콘도는 본래 스키장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이곳은 스키 시즌이 지나면 스키장의 일부에다 6홀 골프장을 만들고, 그 옆에 온갖 꽃을 심은 정원을 가꾸고 꽃 페스티발이라는 이벤트를 벌여 꽃 구경 오는 사람들을 유치한다고 합니다.

밖의 정원이 너무 좋아서 우리는 꽃구경을 하고 이곳 한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워터 슬라이딩과 보트를 타기로 했습니다. 워터 슬라이딩은 그렇게 경사가 심하지 않은 언덕에 잔디를 잘 가꾸어 놓고 플라스틱 판을 타고 그 잔디 위에서 밑으로 눈썰매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였습니다. 그런데 플라스틱 판이 잘 미끄러지도록 물을 품어 대는 통에, 사람들은 잘못하면 플라스틱 판이 뒤집어져 몸으로 굴러 내려오기도 하고 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스릴과 스피드를 동시에 즐길 수 놀이를 나는 어린아이가 된 듯 어린 학생들과 같이 즐겼습니다.

70 노인이 젊은 학생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 슬라이드 장 옆에는 축구장 만한 인공 호수를 만들어 놓고 노를 젓는 보트를 빌려주었습니다. 나는 내친 김에 학생들과 같이 보트를 타기로 했습니다. 둘 또는 셋이 타는 이 보트는 밑이 넓적하여 안전하기는 하나 속도가 나지 않는 보트였습니다. 나와 같이 보트를 탄 학생 중 노를 저어본 사람은 나뿐이었고, 다른 학생들 모두가 처음 노를 저어 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MT 여행의 첫 훈련은 나의 노 젖는 교습이었다. 역시 젊은 이들답게 빨리 배워서, 그런 대로 우리는 한 시간을 노 젖는 보트를 타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우리는 다시 콘도로 돌아왔고, 나는 이곳의 광대한 오락, 운동 시설에 놀랐습니다. 이곳에는 식료품 상점에서부터 선물 가게까지 없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곧이어 우리는 당구를 쳤는데, 요즘 학생들 중엔 당구를 제대로 배운 학생이 별로 없는 듯했습니다.

나는 1960년 경 당구 150을 쳤으며 그 당시에 '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다시 학생들을 상대로 당구 레슨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탁구도 쳤는데, 학생들 탁구 실력이 나보다도 못했습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대학 입시 때문에 당구니 탁구니 하는 놀이를 즐길 한가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답답하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워터 슬라이딩, 보트 젓기, 당구, 탁구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저녁으로 강원도의 버섯과 채소가 풍성하게 들어간 전골을 시켜서 먹었으며, 저녁 후에는 볼링을 하기로 했습니다. 내 볼링 구력은 30년을 자랑하는데, 학생들 대부분은 볼링을 한두 번 해 본 게 고작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던진 볼링공은 청계천(?)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볼링 치는 법마저 가르치게 됐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던 저녁 세미나 시간을 좀 일찍 시작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는 술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안주와 스카치 한 병, 그리고 많은 맥주를 사서, 사회 기성 기자들처럼 폭탄주를 돌렸습니다. 모두들 이 좋은 산 속에 와서 좋은 공기를 마셨고,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나니, 술맛이 좋은 나머지 폭탄주가 몇 순 배 돌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나는 학보사 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학생들에게 말 할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모두 일찍 일어나 라면을 먹고 한두 시간 거리가 되는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좀 무리한 듯한 등산을 마치고는 점심을 먹고, 다시 꽃구경을 좀 하다가, 우리는 3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서 각자 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모두들 지쳐서 별로 말이 없었으나, 각자는 이 꿈같이 보낸 1박 2일의 여행을 되씹어 보았을 것입니다.

나는 학생들과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놀았다는 즐거움을 가졌고,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내가 이들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고, 그 감명으로 이들의 창창한 앞날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를 항상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나이에 대학 학보사 주간이라는 일을 맡게 된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학보사 주간 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해야 하는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과 같이 일 하거나 놀면서 한 번도 성을 내지 않았으며, 항상 학생들의 좋은 면만을 보려고 노력했고, 조금이라도 잘 하면 그들을 최대한 칭찬해 주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이들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아주대학 학보사 주간 시절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17)-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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