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돌며 부산 현대사의 상념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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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돌며 부산 현대사의 상념에 잠기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3.09.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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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산복도로 미니버스투어' 동참기
▲ 부산 산복도로 미니버스 (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60여년 전 한국전쟁이 터지자 고단한 피난 열차를 타고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은 부산역 일대에 판짓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구 수정동 산등성이에 자그마한 판자촌이 형성됐으나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중구 영주동, 서구 동대신동까지 산의 사면(斜面)이란 사면은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으로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판잣집 주민들은 주로 좁은 계단식 골목길을 통해 산아래로 내려오곤 했으나 그 판자촌을 사이로 차들이 다닐만한 도로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60년대 산 등성을 따라 수정동, 영주동, 동대신동 등을 옆으로 이어주는 신작로가 생겨났으니 바로 부산 산복도로다. '산의 배(腹)를 가로지르는 도로'라는 뜻이다.

부산시 동구청은 지난 14일부터 부산 산복도로를 달리며 근현대사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미니버스 투어'를 운행하고 있다. 개통 이튿날인 15일 오후 2시 부산역 광장.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 차 타면 되나요?"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좀 태워주이소!"
 

20대 커플, 초등학생 꼬마부터 그의 할아버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 모두 새롭게 단장된 산복도로에 관심을 가지고 버스투어를 찾아왔다. 손자와 함께 찾은 진구 양정동 김형구(64) 씨는 "내가 젊었을 때랑은 부산 모습이 완전히 달라. 우리 손자한테도 이곳저곳 내가 살던 곳이 어떤 데였는지 설명해주고 싶어서 같이 왔어"라고 말했다.

투어버스에는 문화해설사가 함께하는데, 이번 투어에는 부산시 행복마을만들기 사업 코치 변강훈 씨가 해설을 맡았다. 변 코치는 마을만들기 재생사업으로 재작년부터 초량동, 영주동, 아미동, 범천동 등을 계속해서 개발해왔고 내년에는 수정동, 좌천동까지 개발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개발사업은 보통 재개발이라 해서 원래 있던 건축물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건물들을 건설하는 것인데 반해, 부산 산복도로 개발은 원래 있던 것을 고치고 더해 재생하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역을 출발한 버스는 변 코치의 마을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매축지마을과 안창마을로 향한다. 매축지마을은 피난민들이 몰려와 살 곳이 없자 마구간을 칸칸이 막아 집으로 사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구경 왔나보네. 그래 이런 것도 해야 동네가 발전도 하고 사람도 오고 그렇지"라고 동네 아주머니가 길을 비켜가며 혼잣말을 한다.

▲ 매축지마을, 관광지로 보존하고 있는 마구간 (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안창마을을 구경한 관광객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만든 오디 염색 손수건을 기념품으로 받아갈 수 있다. 염색 체험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미리 염색된 손수건을 받는데 각자 안창마을 도장과 이니셜 도장을 다르게 찍어서 자기만의 손수건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산복도로 미니버스투어를 이용하려면 탑승 전 체험비 5000원을 내야하는데, 그 체험비는 이곳 안창마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된다고 동구청 관계자는 전했다. 연인과 함께 투어를 신청한 해운대구 우동에 사는 정지은(26) 씨는 "버스에서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려서 마을 안을 구경하기도 하고 기억될만한 기념품도 가져가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안창마을을 지나서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초량의 '유치환의 우체통'에 가면 특별한 우체통이 하나 있다. 이곳의 우체통에 편지를 붙이면, 1년 뒤 우편에 적힌 주소로 발송되어 1년 후 자신이 보낸 편지를 부모님이나 연인이 받아 볼 수 있다. 남구 대연동 김은중(12) 군은 1년 뒤 집으로 엽서를 보냈다며 "편지가 오면 할아버지랑 왔던 일이 기억나고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산복도로 투어 홍보물의 코스 설명

이렇게 투어버스는 산복도로를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둘러보는데 부산역을 출발해 동구의 매축지 마을, 안창마을, 유치환의 우체통, 그리고 168계단을 둘러보고, 중구의 김민부 전망대, 디오라마와 금수현의 음악살롱, 서구의 아미동 비석마을까지 둘러본 후 남항대교와 부산대교를 통과해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온다.

북구 화명동 박용호(52) 씨는 산복도로가 멋진 곳으로 바뀌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해설을 들으며 구경하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고 참 좋았어요. 다음번에 가족끼리 한번 더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진구 부암동 김순희(53) 씨는 "체험비 5000원이 아깝지 않아요. 이 정도면 좀 더 받아도 되겠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산복도로가 3개 구를 포함하기 때문에 투어버스로 2시간 안에 모든 곳을 자세히 둘러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산복도로를 잘 알지 못하는 시민에게 홍보하는 맛보기로는 훌륭하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버스투어는 매주 토, 일요일 1일 3회 운행한다. 운행 시각은 오전 10시, 오후 2시, 그리고 오후 7시이다. 주간 투어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복도로 곳곳을 둘러볼 수 있고, 야간투어는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을 버스를 타고 편히 둘러볼 수 있다.

▲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부산(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미니투어버스는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탈 수 있다. 동구청 홈페이지(www.bsdonggu.go.kr)나 동구청 건축과(051-440-4611), 이바구 공작소(051-468-0289)로 전화해 예약하면 된다. 작은 홍보에도 많은 관심이 모아져 9월 예약은 이미 마감되었고, 현재는 10월 예약을 받고 있다. 미니투어버스 사업은 내년 3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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